미얀마 싸이클론 피해 취재기
“절망의 땅에서 희망의 땅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싸이클론이 휩쓸고 간 미얀마. 외신을 통해 전해오는 미얀마 피해는 수 만명의 희생자를 낳으며 국제적 관심이 모아졌다. 5월 6일 갑작스런 미얀마 출장 지시를 받았다. 다음날 현지로 출발하는 일정으로 취재기자 한명과 촬영기자는 신봉승선배를 1진으로 두 명. 출발당일 아침 우리는 미얀마대사관에서 급행으로 비자를 신청했다. 보통 2박3일이 걸리지만 신청비를 더 내면 당일 오후에 받을 수 있었다. 드디어 20:50분 방콕을 거쳐 미얀마 양곤으로 출발...
과거 버마로 불리던 미얀마는 군부독재 국가이다. 미얀마 사람들 앞에서 정치이야기를 하는 것은 과거 우리나라 군부독재시절의 서슬퍼런 보안사나 안기부의 악명처럼 현지인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미얀마 역시 정보 분야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미얀마의 보안대 MI는 소수 엘리트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미얀마 사람 10명이 모여 있으면, 그 중에서 2~3명은 MI이거나 그 끄나플이라고 한다. 이런 정치적 환경을 지닌 국가로의 재난취재 출발은 조심스러움과 철저한 준비가 필요 했다.
출발전날 외신을 통해 전해 온 미얀마공항에서 BBC기자의 추방소식은 가뜩이나 아무런 정보나 현지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를 더욱 난감하게 만들었다. 상황이 안 좋을수록 더욱 계획적인 준비로 대응하는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우리의 신분을 노출시킬 만한 장비(핸드마이크, 로고택, 심지어 명함까지)는 가져가지 않았다.
양곤과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예상 시나리오를 짜야했다. 전날의 BBC기자 추방사건으로 외국인과 취재진에 대한 미얀마 당국의 태도를 예상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일행이 아니고 개별적으로 입국한다. 모두 성공적으로 들어간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호텔에서 픽업 나온 사람을 찾아라. 미입국자는 방콕에서 대기 또는 서울 복귀.
양곤공항의 분위기는 우리 스스로 위축되지만 않는다면 여느 동남아공항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 모두 다행히 성공적으로 입국 후 호텔 미니밴에 올랐다. 공항에서 시내에 있는 호텔까지는 30여분 남짓. 차창 밖으로 보이는 뿌리채 뽑힌 거목들과 부서진 집들은 당시의 상황을 짐작하고도 남게 했다. 현지 국영방송인 MR TV뉴스는 온통 군부정권 장군들이 구호품을 전달하는 화면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군경의 눈을 피해 아주 조심스럽게 양곤시내 취재를 마친 우리는 자신감과 더불어 현지에 최초로 들어간 한국언론으로써의 책임감이 느껴졌다. 싸이클론 피해의 중심부인 미얀마 남부 이라와디 삼각주로 들어가자. 그러나 현실은 현지코디도 구할 수 없었고 도움을 구할 사람은 현지호텔의 한국인직원이 전부인 상황이었다. 이때 신봉승선배의 아이디어로 한국에 있는 ‘버마민주화동맹’이란 단체를 통해 ‘oo’라는 예명을 사용하는 아웅산수지를 지지하는 단체의 사람을 현지코디로 구할 수 있었다. 참고로 미얀마사람들은 예명을 주로 쓴다. 이유는 이름이 길고 외국인이 따라부르기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이제는 어떻게 그곳으로 갈 것인가? 각 지역마다 이동 할 수 있는 미얀마의 도로는 오로지 하나. 우회로가 존재하지 않는다. 길이 막히면 돌아서 갈 길이 없다. 목적지까지의 예상시간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반정부인사들의 도움으로 차량과 현지사정에 정통한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서울서 준비해간 라면과 생수 그리고 호텔에서 구입한 빵을 싣고 가장 피해가 크다는 이라와디 삼각주 보걸리시로 출발. 목적지로 가는 길에 펼쳐지는 상황은 양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피해가 컸다. 출발 전 서울에서 봤던 외신 화면보다 더욱 심각했다.
우려했던 대로 보걸리시 입구에서 우리는 경찰들에게 출입통제를 받았고 여러 수단(?)으로 들어가 보려 했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군부정권 서열3위의 장군이 현지에 와있었다. 보걸리시 입구까지의 상황만으로도 안의 피해정도가 얼마나 심각한지 추정이 가능했다. 해가 지면서 어쩔수 없이 빠뽀라는 도시로 나와 1박을 했다. 다음날 수소문 끝에 또 다른 피해 지역인 꽁창곤시로 이동했다. 이번에는 현지취재가 가능할지 긴장감 속에 도착한 마을은 취재 이전에 자연 앞에 인간이 얼마나 무력해 질 수 있는지, 도움의 손길이 미치지 못했을 때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이 나약해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라와디 삼각주 취재를 마치고 양곤으로 돌아오는 길은 촬영기자로, 그 전에 한 명의 사람으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했다. 취재기간 동안 라면 한 끼와 빵 몇 조각으로 끼니를 때운 것을 마치 훈장처럼 생각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많은 천연자원과 동방의 정원이라 불리는 아름다움을 갖고 있는 나라 미얀마. 싸이클론 피해의 현장에서 숨쉬고, 보고, 느꼈던 KBS 촬영기자로서 절망의 땅에서 희망의 땅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김상민 / KBS 보도본부 영상취재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