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1143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폭설과의 사투, 72시간...


# 반갑다, 눈아!!!

내가 태어나고, 자란 산업수도 울산은 겨울에도 눈이 잘 내리지 않는 도시이다. 변변한 패딩조차 없던 내게, 눈이라는 존재는 신기하고 반가움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이번 1월 4일에 내린  25.8cm의 기록적인 폭설은 카메라기자에게 눈(雪)이란 그리 즐겁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 1일차,

이불을 거푸집 삼아 꿀맛 같은 잠을 자고 있는 월요일 새벽, 핸드폰이 울렸다. 눈이 많이 내리고 있으니 출근을 서둘러달라는 선배의 다급한 전화였다. 정신을 차리고 창밖을 보니 세상은 온통 눈 천지였고, 뻥튀기같은 함박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다. 회사로 향하는 길은 이미 10cm정도의 눈이 신발을 집어삼킬 기세로 쌓여 있었다.

장비를 챙겨 나간 곳은 회사와 멀지 않은 목동 일대 이면도로였다. 미처 제설이 되지 못한 골목길에서 낙상이나 차량사고를 커버하기로 했다. 가파른 골목길 아래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길 1시간 째, 사람들의 통행은 많았지만 넘어지거나 미끄러지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손발은 얼고 온몸에 눈이 쌓여 내 모습은 마치 눈사람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출근길 스케치를 위해 간선도로로 나갔다. 제설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고 나온 차량들이 미끄러지고 느림보 걸음을 하면서 왕복 6차선 도로는 주차장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여느 강설 때처럼 눈이 내리다 그칠 것으로 생각한 시민들이 자가용 차량을 이용해 출근하면서 빚어진 해프닝이었다.


# 2일차, 봉천동 대량 낙상.

6시 30분, 비장한 각오로 회사를 나섰다. 전날 찍지 못한 그림을 반드시 찍으리라 다짐하고 캡이 지시한 목동일대가 아닌 봉천동으로 향했다. 최준식 선배가 찍은 자동차 미끄러지는 모습, 그 곳이 바로 봉천동이다. 출근 시간이 가까워지자 사람들의 통행이 늘어난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점이다. 발걸음을 따라가다보니 넘어지는 사람들이 하나둘 보인다. 소지품을 들고 오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넘어지는 중년 남성, 내리막길을 거의 다 내려와서 넘어지는 젊은 여성 등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빙판길에서는 약자였다. 발길이 뜸해져 버스정류장 근처로 장소를 옮겼다. 인도 저편에서 사람들이 넘어지는 모습이 보이자 달려가 얼른 자리를 잡는다. 이럴 때는 꼭 굶주린 야수같다. 그늘진 상가 앞 인도, 미끄러울 것이라 생각하지 못한 행인들이 그대로 넘어진다. 어떤 할머니는 얼굴이 땅바닥에 닿을 정도였다. 뉴스를 보면서 다치지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다. 우리에게는 일이지만 낙상을 당한 당사자에게는 아픔이며 수치일 수 있다. 오전 내내 봉천동 일대에서만 8명의 낙상자를 촬영했다. 눈이 오면 가장 먼저 가야할 곳이 바로 봉천동임을 이번 취재를 통해 알게 되었다.


# 3일차, 지하철 No, 지옥철 Yes.

눈이 그친지 이틀이 지났지만, 계속된 강추위에 눈은 녹지 않고 미끄러운 도로를 피해 많은 시민들이 지하철로 몰렸다. 그런데 그 눈이 지하철 출입문에 들어가 얼면서 출입문이 열리지 않는 사고 등이 늘어났다. 문제는 영상취재였다. 사고 상황을 알고 현장을 가더라도 이미 상황이 종료돼 촬영을 할 수 없었다. 일단 구로역에서 뻗치기를 시도했다. 출퇴근 시간이 지났지만 계속된 연착으로 탑승구는 만원이었다. 인터뷰를 시도하자 시민들의 반응은 분노에 가까웠다. 취재도중 만난 서울메트로 노조원은 이 사태가 정리해고에서 출발한 인원 감축-정비시간 지연으로 인해 발행한 인재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인터뷰는 마무리했지만 문제는 고장난 출입문을 어떻게 촬영하느냐였다. 고장난 출입문을 보더라도 그냥 보낼 수 밖에 없는 상황. 취재기자와 상의해 전동차에 직접 타기로 했다. 맨땅에 헤딩, 아니 언땅에 헤딩이었다.

천안행 전동차에 몸을 실었다. 10량 이상의 전동차 중 고장난 출입문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처음부터 끝까지 소위 ‘마와리’를 돌기 시작했다. 카메라를 머리에 이고, 인파속을 뚫으며 찾기 시작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4번째 칸에서 한 여성을 만났는데 우리를 보더니 다급한 목소리를 옆 칸 출입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말 그랬다. 열릴 것 같던 출입문은 2~3cm 정도 열리다 말고 그런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줬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었다. 출입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다 안 열리자 옆 칸으로 가는 승객들, 플랫홈에서 열차를 타지 못한 승객들, 승하차가 가장 우선인 그들에게 ‘당황’은 사치였다. 취재를 마치고 안내방송을 들으니 수원역이었다. 다른 아이템의 사례 취재를 위해 현장에 왔었는데 의외의 성과였다. 취재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가는 길이 멀었지만 내심 뿌듯함을 느꼈다.

3일간의 눈 취재, 손발이 얼고 몸은 고생스러웠지만 많은 것을 배우게 해 준 기회가 된 것 같다.

김태훈/SBS영상취재팀

※ <미디어아이> 제71호에서 이 기사를 확인하세요
미디어아이 PDF보기 바로가기 링크 ▶▷ http://tvnews.or.kr/bbs/zboard.php?id=media_eye&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938

  1. 고단했지만 활력이 된 설악산 빙벽 등반 교육

    고단했지만 활력이 된 설악산 빙벽 등반 교육 고영민 / KBS 보도영상팀 지난 1월 23일부터 7일 간 설악산 일대에서 고산지대 취재능력 향상을 위한 위탁연수를 받았다. 외부 위탁연수여서 KBS 선후배 동료들도 있었지만, 사회에서 각자 다른 일들을 하다가 모...
    Date2010.02.23 Views11391
    Read More
  2. 지옥보다 더 끔찍했던 아이티 참사

    지옥보다 더 끔찍했던 아이티 참사 신봉승 / KBS 보도영상팀 아이티는 가는 길도 멀었다. 서울에서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까지 가기 위해서 비행기를 네 번 갈아탔고, 여섯 번의 기내식을 먹어야 했으며 도미니카공화국 공항에서 육로로 10시간을 달려서...
    Date2010.02.23 Views10279
    Read More
  3. 바다에 잠길 운명의 섬나라, 투발루

    바다에 잠길 운명의 섬나라, 투발루 필자: “Hi, nice to meet you. Thank you for letting me in this cockpit. 만나서 반가워 그리고 이 비행기 조종실에 날 들여보내줘서 고맙고. 조종사: So, I'm going to be on TV, right? 그럼, 이제 내 얼굴이 텔레비전...
    Date2010.01.13 Views13386
    Read More
  4. 3D 시대는 오는가? CES쇼를 통해본 3D시대

    3D 시대는 오는가? CES쇼를 통해본 3D시대 최근 아바타란 영화가 우리나라의 외화 흥행역사를 쓰고 있다고 해서 화제이다. 그 중 3D로 상영되는 영화관의 경우엔 일반 2D 영화보다 비싼데도(12000원) 불구하고 연일 매진을 기록 중이다. 아바타는 3D로 봐야 ...
    Date2010.01.13 Views11335
    Read More
  5. 폭설과의 사투, 72시간...

    폭설과의 사투, 72시간... # 반갑다, 눈아!!! 내가 태어나고, 자란 산업수도 울산은 겨울에도 눈이 잘 내리지 않는 도시이다. 변변한 패딩조차 없던 내게, 눈이라는 존재는 신기하고 반가움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이번 1월 4일에 내린 25.8cm의 기록적인 폭설...
    Date2010.01.13 Views11431
    Read More
  6. “백야의 잠못드는 밤 코펜하겐”

    42박 43일간의 세계일주취재,참으로 가슴 벅찬 일정이었다. 3대륙 12개국을 돌아다닌다니 처음엔 너무 좋았던 기억이 난다. 해외취재에 이골이 난 몸이라 자신을 했건만 그 기대는 첫 날 런던에서부터 깨지기 시작했다. 급체! 첫날 과식을 한 탓인지 하루종일...
    Date2010.01.14 Views10628
    Read More
  7. 쉽게 허락없는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

    나는 사실 다사다난했던 날들을 뒤로하고 산이나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에 히말라야 원정을 지원했다. 하지만 등산화를 신고 오르는 두 번째 산인 안나푸르나는 나에게 그렇게 호락호락한 산이 아니었다. 네팔 히말라야 중앙부 간다크지구에 위치...
    Date2009.12.15 Views10317
    Read More
  8. [인도취재기]인도는 지금 변화로 몸살을..

    인도(印度, India). 대학시절, ‘해외여행을 가게 된다면 어느 나라에 가고 싶은가?’에 대해 질문을 하면 친구들은 배낭여행의 성지 유럽을 가장 많이 꼽았고 그 다음은 인도를 선택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나에게 떠오른 인도의 이미지는 아침이면 논두렁에 ...
    Date2009.12.15 Views10638
    Read More
  9. No Image

    스타 없는 대표팀의 거침없는 질주

    이집트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U20 FIFA 월드컵’(20세 이하 청소년 월드컵)대표팀 선수 명단을 확인한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미안한 얘기지만 아는 이름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홍명보號 스타급 선수의 부재’ , ‘죽음의 C조’(대한민국, 독일, 미국, 카...
    Date2009.11.13 Views6556
    Read More
  10. 금강산, 눈물과 감동의 2박 3일

    금강산, 눈물과 감동의 2박 3일 - 추석계기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다녀와서 공교롭게도 작년에 이어 다시한번 금강산에 다녀올 기회를 얻게 되었다. 지난해 615공동선언 8주년 행사가 금강산에서 치러진지 한 달 만에 박왕자 씨 피격 사망사건이 발생해 ...
    Date2009.11.13 Views9706
    Read More
  11. No Image

    경비행기 추락, 다시 있어서는 안될 일

    9월 어느 화창한 일요일 오후. 바람은 좀 불었지만 청명한 가을 날씨다. 그래 오늘 인천 도시축전에서 글라이더와 경비행기 축하 비행이 있다고 그랬지. “그림 좀 되겠다. 가자!” 그렇게 취재가 시작됐다. 미추홀 분수대 위에 하늘하늘 휘황한 연들이 떠 있고 ...
    Date2009.11.13 Views7299
    Read More
  12. 히말라야 낭가파르밧 취재기 - 故 고미영 대장을 추모하며

    ‘고미영 대장이 제 2캠프 도착 바로 전에 실족해서 생사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게 무슨 소린가! 산소 부족으로 가뜩이나 머리가 띵-했는데 옆에서 전해오는 본부의 무전 소리를 들으니 정신이 멍해지며 아뜩해졌다. 바로 몇 시간전에 낭가파르밧 정상을 ...
    Date2009.10.16 Views11944
    Read More
  13. 나로호 발사 순간을 기억하며..

    나로호가 발사되기 10분전.. 남열 해수욕장에는 대한민국의 우주 시대를 개막하게 될 나로호 발사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일반인들이 구비하기엔 비쌀 것 같은 길다란 망원경을 보는 사람, 여기저기 기념 사진 찍기에 바쁜 가족 및 연인들.. ...
    Date2009.10.16 Views9666
    Read More
  14. 쌍용차 평택 공장 잠입기

    쌍용차 평택공장 옥쇄 파업 취재 후기를 써 달라는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얼떨결에 승낙해버렸다. 그로부터 벌써 3주가 흘렀다. 일반적인 취재 후기를 써야 하나? 문득 후배들이 공장 안으로 어떻게 들어갔냐고 물었던 기억이 났고, 공장에 들어가기까지의 ...
    Date2009.10.16 Views10529
    Read More
  15. 인도네시아 다문화가정 취재기 - 엄마의 나라를 찾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행 비행기를 타기 전 인도네시아 여행 책을 사기 위해 서점에 들렀다. 그러나 서점 어디에도 인도네시아 여행에 관련된 책은 찾아 볼 수 없었다. 휴양지인 발리에 관한 책만 몇 권 있을 뿐이었다. 필리핀, 말레이시아뿐만 아니라 도시국가...
    Date2009.10.16 Views10724
    Read More
  16. '카메라기자 수난시대’ 쌍용차사측, 기자폭행…경찰은뒷짐

    “쏵 다 밀어 붙여!~” 멀찌감치 에서 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급히 카메라 렌즈를 격앙된 함성에 초점을 맞추며 앵글을 잡았다. 곧 마스크, 복면, 모자 등으로 얼굴을 가리고 한 손에는 각 각 쇠파이프, 빗자루, 나무막대기, 물병, 돌을 움켜 쥔 겉보기에 수백 ...
    Date2009.10.16 Views10122
    Read More
  17. 동아시아 농구 선수권 대회 취재기 (Bizhard 사용기)

    제목 없음 지난 6월10일부터 15일까지 난 허재 감독이 이끄는 한국남자농구대표팀과 동아시아 농구 선수권대회를 동행 취재했다. 6월10일 아침 9시20분 출발 비행기에 몸을 싣었다. 비행시간은 약 1시간 50분정도가 걸리는 짧은 비행이었지만 긴 일정의 시작...
    Date2009.07.16 Views11002
    Read More
  18. 한 점의 빛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촬영

    제목 없음 칠흙같은 어둠속에서 ENG로 촬영을 해야 할 경우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 물론 렌즈에 아스트로스코프(Astro Scope-주변의 미약한 불빛을 증폭해서 어두운 곳에서도 볼수 있도록 만들어진 장비. 적외선을 감지하기 때문에 녹색을 띠고 있음) 를 장착...
    Date2009.05.18 Views11521
    Read More
  19. 따뜻한 방에 앉아 ENG로 닭 잡아먹는 삵 찍는 법

    제목 없음 “민가에 야생 동물들이 밤마다 내려와 닭을 잡아먹는다.” 이 이야기는 오래전 할머니 무릎 위에서 듣던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실제 상황이다. 그럼, 닭을 한 마리라도 더 먹으려는 야생동물과 밤마다 닭을 지키려는 주인의 치열한 전쟁(?)을 영상취...
    Date2009.04.14 Views11518
    Read More
  20. WBC 그 '위대한 도전'의 현장을 가다

    제목 없음 “몸과 마음은 힘들었지만, 너무나 행복했던 시간” 제1회 WBC 출전 선수들보다 투타에서 한 수 아래로만 여겨졌던 제2회 WBC 선수들이 전대회의 4강 신화를 넘어 준우승이란 엄청난 결과를 가지고 금의환향했다. 나는 운 좋게도 그들이 준우승 신화...
    Date2009.04.14 Views10389
    Read More
  21. 2009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취재하고```

    제목 없음 2009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취재하고 경쟁보다는 취재원의 입장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200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지난 11월 13일에 실시됐다. 시험 전날 사회팀장으로부터 휘문고에서 수능을 취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리고 고사장 출입증 ...
    Date2009.01.15 Views10611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7 8 9 10 11 12 13 14 15 16 ... 18 Next
/ 18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