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잠길 운명의 섬나라, 투발루
필자: “Hi, nice to meet you. Thank you for letting me in this cockpit.
만나서 반가워 그리고 이 비행기 조종실에 날 들여보내줘서 고맙고.
조종사: So, I'm going to be on TV, right?
그럼, 이제 내 얼굴이 텔레비전에 나오는 거야?
필자: Yes, you're gonna be famous, just like TV star.
그렇구말구, 이젠 넌 유명해지는 거야 텔레비전에 나오는 스타처럼.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좁은 조종실 안, 기장과 부기장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기장이 알려준다. “저기, 구름 뒤에 보이는 작은 V자 모양 보여? 저게 투발루야.” 피지를 떠난 비행기가 2시간 30여분을 날아서야 남태평양 한 가운데 자리 잡은 투발루를 만날 수 있었다. 조종실 창 너머로 카메라 렌즈를 대고 천천히 줌인 해본다. 구름너머 옥빛 바다 한 가운데 정말로 V자 모양의 투발루, 아니 투발루의 수도 푸나푸티 섬이 뷰파인더에 들어왔다.
애~앵, 애~앵. 비행기 착륙을 알리는 사이렌이 온 동네에 울려 퍼지면 주민들은 다 공항 활주로 주변으로 모여든다. 일주일에 두 번 피지에서 날아오는 이 항공기가 사람과 물자를 나르는 유일한 창구다. 기상사정으로 결항이라도 될라치면 사람은 발이 묵이고 물자는 떨어져 곤욕을 치러야한다. 비행기는 1시간 정도 머물면서 섬 밖으로 내갈 물건을 싣고 사람을 태운다. 쌍발 프로펠러가 힘차게 돌아가면서 비행기가 떠나고 나면 남은 활주로는 바로 주민들의 운동장이 되어버린다. 피구 비슷한 전통경기를 하거나 한 쪽에선 배구도 하고 아이들과 개들이 뛰논다.
투발루에는 민관을 통틀어 모든 주요 건물들이 공항 활주로 주변에 모여 있다. 담장 없는 운동장 같은 활주로를 지나 공항청사 건물을 나서면 바로 뒤에 정부청사 건물이 있고 그 건너편에는 이 섬의 대부분의 전력을 공급하고 있는 디젤발전소, 기상청 등이 있는 식이다.
우선 섬을 한 바퀴 돌아보기로 하고 나섰다. 사람이 사는 9개의 섬으로 구성된 투발루에서 제일 큰 섬이 ‘푸나푸티’고 그래서 수도가 됐다. 섬 끝에서 반대편 끝까지 걸어서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도착하기 전 자료를 읽으면서 야자나무 너머로 푸른 바다가 펼쳐진 아름다운 광경만 상상했었는데, 막상 하늘에서 내려 보니 기도 안찬 풍경이 펼쳐졌다. 섬 곳곳에 쓰레기로 가득한 웅덩이가 널려있는 것이다. 사연인즉, 2차 대전 당시 미군이 일본군 점령지역 폭격을 위해 이 섬에 활주로를 건설했는데, 해발고도가 낮아 산이 없는 섬에서 흙을 구하려다보니, 그만 섬 여기저기 평지에서 포클레인으로 흙을 파온 것이다. 주민들에게는 그 대가로 몇 푼의 달러나 군용식량 등이 주어졌다. 그렇게 생긴 구덩이(보로피츠)에 바닷물이 차올랐고, 미군들에게서 받은 코카콜라와 크리넥스 티슈가 쓰레기로 변해 그 웅덩이에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한 것이다. 활주로가 처음 생겨 섬과 문명화된 사회가 연결되었을 때 주민들은 분명 축복처럼 온갖 편리한 문명의 이기를 맛보았을 테지만, 지금은 서구화된 생활이 만들어낸 쓰레기가 재앙이 되어 그들의 주거지를 위협하고 있었다.
학생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거리 한 쪽에 모여 바비큐를 해먹고 있어서 들렀다. 닭고기를 간장소스 같은 곳에 담가놓았다가 널찍한 철판위에 놓고 굽는데, 이채롭게도 그 연료가 말린 코코넛껍질이었다. 촬영협조를 구하고 몇 커트를 찍어나가는데 눈이 벌게진 청년 하나가 정체불명의 하얀 음료를 먹으라고 얼굴에 컵을 들이댄다. 투발루 사람들은 코코넛 나뭇가지를 자르고 그 끝에 유리병을 매달아 즙을 모으는데, 이것을 설탕대용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발효시켜 술로도 먹는다. 정체불명의 하얀 액체는 ‘카오’라고 부르는 코코넛 술이었다. 투발루에는 USP(University of Southern Pacific: 남태평양 대학)분교가 있어서 몇 과목을 들을 수 있는데, 나중에 피지에 있는 USP본교에 가서도 학점으로 인정받는다고 한다. 지역특성상 기후나 해양생태, 항해관련 학과가 있다. 방학을 맞아 다 함께 일종의 축하파티를 열고 있는 이들이 투발루의 미래를 이끌고나갈 인재들인 것이다.
다음날 아침 호텔 뒤쪽에 있는 간이 부두시설로 산책을 나가봤다. 아이들이 바다에서 연신 자맥질을 하고 있다. 몇 번의 자맥질 끝에 한 아이가 부두로 올라와 손에 쥐고 온 니모(애니메이션 영화 ‘니모를 찾아서’에 나오는 주황색과 검정색의 세로띠를 가진 귀여운 열대어) 비슷하게 생긴 생선의 살을 한 쪽씩 벗겨서 먹는다. 투발루는 이런 곳이다. 목마르면 주변에 널려있는 야자나무에 올라 코코넛을 따 마시고, 단백질이 부족하면 앞 바다에 나가 어릴 때는 니모 같은 작은 고기를 잡아먹거나 나이가 좀 들면 먼 바다에 나가 지나가는 참치를 잡아먹는다. 이런 자급자족하던 사회가 문명을 만나고 서구적인 소비를 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지속가능한 개발 모델은 투발루에선 이제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현지 식으로 발음하자면 ‘래인바스’라는 말이 있다. 영어로 쓰자면 ‘Rain bath'인데 비가 오면 그 물에 샤워를 한다는 말이다. 이들의 생활상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단어다. 투발루의 모든 건물에는 경사진 슬레이트 지붕아래에 집 뒤뜰에 있는 물통과 연결되는 작은 플라스틱 수로가 설치돼있다. 비가 오면 그 물을 받아 생활용수로 사용하는 것이다. 필자가 머물던 호텔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 이틀 비가 안 오더니 급기야 잠자리에 들기 전 더위를 식히려고 화장실 샤워기의 꼭지를 여는데 물이 안 나왔다. 하나밖에 없는 국립호텔에서.
지구온난화와 그로인한 기후변화로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투발루는 현재 바다에 잠기고 있다. 지구상 어느 지역보다 그 변화속도가 빠른 곳이란 점에서 투발루가 처한 문제의 심각성이 더해진다. 국제사회에도 그 위험성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막상 투발루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은 그 위험을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투발루인들이 주변국가인 호주와 뉴질랜드 등으로 이민을 원하며 실제로 절차를 추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유는 곧 섬이 바다에 잠겨서라기보다는 자녀들의 미래를 위한 교육과 경제적인 문제가 더 컸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온도의 상승이 바다 속 생태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보기 위해 배를 빌려 바다로 나갔다. 어설퍼 보이는 작은 배에 몸을 싣고 주변 섬들을 돌아봤다. 배의 키를 잡은 톰은 원래 투발루 출신의 외항 선원이었지만, 지금은 가족과 함께 휴식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몇 년 전만해도 그는 주말이면 가족과 함께 가까운 무인도로 건너가 바비큐도 해먹고 수영도 하며 쉬었다오곤 했는데, 지금은 그 섬이 안 보인다고 했다. 해수면 상승으로 바다에 잠긴 것이다. 투발루 정부가 정한 산호 국립공원 지역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가 봤다.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바다 속에서 산호가 하얗게 죽어가고 있었다. 손으로 살짝만 건드려도 산호는 하얀 먼지를 일으키며 금방 그 뿌리를 드러내고 쓰러져버렸다. 수온상승은 바다 속 생태계도 파괴시키고 있었다.
18세기 산업혁명이후 모든 문명화된 국가들은 줄곧 대량생산을 위해 공장을 가동시키면서 지구를 데워왔다. 그 열로 빙하가 녹아내리고 바닷물 분자가 팽창해 해수면은 계속 상승하고 있다.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본 투발루는 쑤나미가 아니더라도 제법 센 풍랑 한 번이면 잠길 것처럼 위태로워보였다. 하지만, 이 섬은 천 몇 백 년 전부터 인간이 살아오면서 특이한 남태평양 도서문명과 전통을 이어온 곳이다. 인류가 가진 아주 독특한 문화유산이라고 생각하니 투발루가 처한 위험에 대해 그 안타까움이 더했다. 투발루 기상청의 힐리 여사는 기상관련 전문성과 고귀한 인품으로 국제적으로 존경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녀는 전 지구적인 이 거대한 문제를 푸는 방법은 산업화를 진행해서 앞서간 선진국들의 결심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고 전했다. 해마다 6mm가량 해수면이 상승하고 있는 투발루, 이 상태라면 수십 년 안에 분명 바다에 잠기게 된다. 문제를 일으킨 나라들이 어떤 식으로든 책임 있는 행동을 취하고 나서야한다.
박진경/KBS 영상취재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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