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남아공 월드컵
인천에서 두바이를 경유해 24시간 만에 도착한 요하네스버그는 서울보다는 조금 서늘한 날씨였다. 낮엔 반팔 차림도 가능하지만 저녁이면 쌀쌀해졌다. 그래도 겨울이라기보다는 늦가을정도로 구름 한 점 없는 파란하늘에 태양이 눈부셔 선글라스를 껴야했지만 땀이 나지 않아서 좋았다.
개막식전 북한과 나이지리아 평가전을 요하네스버그 인근 빈민촌 안에 있는 탬비사지역에서 개최했다. 안 그래도 불안한데... 일단 현지 흑인기사와 함께 미니버스로 내비게이션에도 나오지 않는 경기장으로 출발했다.
2시간이 지나 결국 현지 경찰의 도움으로 마쿨롱 경기장에 도착했다. 경기장은 벌써 마을 입구에서부터 길게 늘어선 줄로 휘감겨있었다. 도저히 국제적 경기가 열릴 것 같지 않은 빈민촌에선 입구에 즐비한 사람들과 경찰들이 입장권을 확인하며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구경하러온 관중은 3만 명이 넘는데 1만6천장의 입장권을 판매했으니 당연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몰려든 사람들에 밀려 정문이 열렸고 밀려드는 인파에 넘어지고, 깔려서 부상자가 속출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그리고 경기 중엔 관중석 난간이 파손되어 경기가 중단되는 사태까지 발생했지만 경기는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2:2 무승부)
며칠 후 북한팀 공개훈련 및 기자회견 취재차 도착한 탬비사에서는 같은 Korea라는 이유로 북한축구에 대한 평가와 정대세선수에 관한 질문을 외신으로부터 많이 받았다. 나도 북한 팀을 취재 온 기자인데, 북한팀 공식기자회견이 끝나고도 많은 시간동안 외신들의 질문공세를 받은 나는 지칠 정도였다.
요하네스버그에서 1600Km가 넘는 거리로 비행기로는 1시간 40분 정도로 소요되는 포트엘리자베스는 구름이 잔뜩 낀 흐린 날씨였다. 호수를 끼고 있는 넬슨만델라 베이 스타디움은 아름다워보였다. 한국의 예선 첫 경기인 그리스전 경기 당일 매일 구름이 잔뜩 껴 있던 하늘은 모처럼 파란하늘에 동그란 태양이 수평선 너머로 올라오고 있었다. 너무도 동그란 태양을 한참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조벅에서 차량으로 18시간 만에 도착한 교민들은 꽹과리와 태극기를 앞세우고 붉은악마응원단과 함께 넬슨만델라 베이 경기장을 향해 현지인들의 박수를 받으며 대한민국의 12번째 선수로서 향하고 있었다. 비록 필드는 아니었지만 선수들 보다 더 많은 열정을 쏟아냈다. 전반 7분 이정수의 골에 환호하던 관중들은 4만 7천이 입장하는 경기장을 붉은악마로 만들어 버렸다. 웅웅거리던 부부젤라 소리도 꽹과리 가락에 맞춰 대한민국을 응원했다. 51분 박지성이 골이 터지면서 경기장은 승부를 떠나 모두가 하나가 되었다. 침묵하던 그리스 응원단도, 16강을 간절히 바라던 대한민국 응원단도 서로를 위해 모두 함성을 질렀다. 종료 휘슬이 울리자 경기장은 한국의 홈구장이 되었다. 꽹과리를 앞세운 농악대와 그 뒤를 따르는 흑백의 물결들... 경기장 앞에서 한바탕 놀고 호수를 끼고 행군을 시작했다. 이 순간 포트엘리자베스는 한국이었고, 희망의 땅이 되었다.
도착 후 갑자기 추워진 요하네스버그가 얼마나 추웠던지 쫄쪼리와 장갑을 껴입어야 할 정도로 엄청 추웠다. IBC내에서는 얼음이 얼었다. 우리는 따뜻한 남쪽나라라고 하지만 여기는 북쪽으로 가야 따뜻해진다. 남반부와 북반부의 차이일까? 낮은 언덕이 몇 개있는 사커 시티 주변은 스탠딩을 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한국 8시가 낮1시 위치에 따라 다르지만 가까운 스탠딩 포인트는 항상 역광이었다. 해는 경기장 우측에서 좌측으로 졌다. 차를 타고 나가면 되는데 주위엔 사커시티가 잘 보이는 거리엔 높은 건물이 없었다. 언덕조차도 찾기 힘든 평지는 여기가 정말 해발 1700m 고지인가 했다. 오후 5시면 어두워져 버린다.
8만8천명이 모인 경기장은 아르헨티나의 파란색으로 물들었다. 5층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한국응원단은 너무 초라해 보였다. 관중석 좌우로 나눠져 있고 가끔 중간 중간 빨간 티셔츠가 섞여있었다. 입구에서 무료로 나눠준 붉은 티셔츠를 입고 있는 외국인도 가끔 보였다.
경기장에서는 벌떼소리(웅웅)에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경기장에 들어선 태극전사들도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한국 팀은 어처구니없이 실점을 당했다. 한국응원단의 허탈한 모습과 환호하는 아르헨티나 응원단을 번갈아 보여주는 전광판을 부셔버리고 싶을 정도로 미운하루였다. 사커시티는 말 그대로 악몽의 현장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16강을 갈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나이지라아를 이기거나, 이기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비기면 되 모든 국민의 소원인 원정 16강의 희망은 있었다. 우리는 그런 희망을 품고 더반으로 향했다.
더반은 남아공화국에서 제일 따뜻한 곳으로, 겨울인데도 낮 기온은 26도 까지 올라가는 해양 관광지이다. 더반은 인구의 1/3이 인도출신이고 아프리카에서 제일 다혈질인 나이지라아인들이 제일 많이 모여 사는 곳으로 남아공에서도 '더반은 곳 나이지리아다' 할 정도로 현지 경찰들도 조심하는 곳이다. 한국 원정응원단도 만일을 위해 최소인원으로 줄였다. 해안선을 끼고 있는 더반 경기장은 아름다운 곳이다.
결전의 날 더반 저녁 8시 30분(한국 새벽3시 30분)
경기 시작 후 한국 골망을 가르는 첫 골에 ‘어’ 소리 한 번 못 지르고 붉은악마들은 주저앉았다. 하지만 침묵도 잠시였다. 붉은악마들은 '괜찮아'를 외치며 다시 열렬히 응원하였다. 잠시 후 동점골과 역전골이 터지자 경기장안의 붉은악마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 웃었다. 그때의 붉은악마의 모습은 진정한 12번째 태극전사였다. 김남일의 반칙으로 만들어진 나이지리아의 페널티킥에서는 정성룡을 외쳤고, 동점상황에서 남은 15분 동안은 정말 모두 하나가 되어 모두 골대를 지켰다. 야쿠부의 실수가 응원단의 힘이 되었고 시끄럽던 부부젤라 소리를 잠들게 만들었다. 종료휘슬이 울린 순간 잠깐의 정적후 곧이어 터진 함성소리는 내가 이 순간 새로운 역사의 순간에 있다는 것을 만끽하게 하였다.
우리의 16강 상대는 우루과이로 킴벌리라는 조그만 시골마을에서 훈련중이였다. 보통의 기자회견장은 감독과 선수가 동시에 같이 나와서 질문하고 대답했다. 하지만 우루과이는 감독혼자 하고 들어간 후 선수를 불러주었다. 그래서 인터뷰보다 선수를 기다리는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포를란과 수와레즈는 처음 보는 선수였다. 수와레즈는 명색이 공격수라는데 체격이 작아서 부딪히면 넘어질 것 같아보였다. 주전이라기보다는 후보선수정도로 보였다. 그런 선수에게 2골을 내주며 대한민국의 8강꿈이 깨져버리다니 너무나 아쉬웠다.
비록 8강은 가지 못했지만 한국축구의 가능성을 보여준 월드컵이었다. 지금도 월드컵 4강이 아닌 결승전에서 웃는 날을 위해 어린 태극전사들은 열심히 뛰고 있다. 언젠가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ps) 흑인들은 가발과 사진을 최고로 친다. 카메라를 잡고 있으면 사진을 찍어달라고 포즈를 잡는다.
심지어는 ENG를 보고 반대쪽도로에서 자기를 찍어달라고 온갖 제스처(?)를 한다.
나도 똑같이 손가락으로 인터뷰를 하자고 부르면 시커먼 흑인들이 2~3명씩 넘어와 부드럽게 이야기를 한다.
너무 솔직담백하고 진솔한 우리가 듣던 다른 세상을 느낄 수 있었다.
강동철/SBS 영상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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