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지진, 쓰나미 피해현장을 가다 - 우리는 행복한 곳에서 산다
일본 대지진, 쓰나미 피해현장을 가다
2011년 3월11일 15시30분쯤, 회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 어디냐??” “지금 인터뷰하러 서강대에.....” “너 지금 일본가야 하니깐 그냥 빨리 들어와.” “네!...지금요?” 허걱!!
일본에 대지진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그때서야 알았다. ‘얼마나 심하길래...!!’
저녁 21시 비행기라서 장비를 챙긴후, 개인짐도 없이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집에 전화하니 황당해하는 와이프!! 다행히 비행기가 결항이 되어 다음날 출발하게 되었다.
출장팀은 2팀(촬영기자-이승환,이승준/취재기자-윤경민,최명신)으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선배, 일본은 선진국이에요....
일본에 도착하기전 같이온 이승준(촬영기자)기자 떠나기전에 한말이 있다.
내가 사고지역은 모든 것이 부족하니 철저히 준비해야한다고... 후배왈 "선배, 거긴 선진국이에요...!! ""그런가...!!" 일본에 도착하니 모든 상황이 어려움을 단번에 느낄수 있었다.
우리팀은 하네다에서 국내선을 타고 북쪽으로 이동, 야마가타를 거쳐 센다이로 향했다.
야마가타에서 렌트후 출발할 당시 주유소마다 차들이 몇백미터씩 줄서 있었다.
사고 현장으로 들어갈수록 문을 연 음식점과 주유소는 찾을 수 없었다. 우리는 보이는
마트, 가게 등을 돌며 물자확보에 힘을 쏟았다. 여기서 굶어죽기 싫어서....
도쿄에서 부터 올라온 승준팀은 가까운 피해현장들을 취재하며 20리터 기름통을 6개나 사서 가는 곳마다 기름을 채웠다고 한다. 음식 또한 길거리에서 직접 해먹었다고 한다. 센다이에서 만났을 때 내가 한마디 한다. "선진국이라며...!" / 승준왈 "그러게여...!!"
나중에 우리도 확보 못한 기름통을 하나 얻어 쓰고 밥도 얻어먹었다.
*이곳이 피해가 크다는 지역 사람들의 모습인가!!
3월13일 저녁 센다이에 도착, 한국 영사관으로 향했다. 센다이시 미야기현 청사를 지나는데 자위대 소속의 재난 구호트럭 수십 여대가 미야기현 청사를 빼꼭히 에워싸고 있었다.
청사는 피난 나온 이재민들을 수용하는 시설로 바뀌어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계단 밑이건 화장실 앞이건 다리를 뻗고 쪽잠이라도 청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사람들로 넘쳐났다.
사고현장의 취재시작...일본사람들은 참 침착하면서도 담담한 모습이었다. 소란스럽고 어수선한 분위기는 찾아볼 수없고 그저 자신에게 필요한 일들만 묵묵히 찾아서 하고 있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국민성, 이런 재난상황에서는 힘을 발휘하는 듯하다.
청사를 뒤로하고 한국 영사관에 도착했다. 그곳 역시 많은 한국 유학생들, 이 지역 주민들이 강당에 빈틈없이 모여 있었다. 영사관에서 준비한 밥과 두가지정도의 반찬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는 사람들, 연락을 못했던 가족들과 전화를 하는 사람들... 유선인터넷은 연결이
안되고, 전화와 전기는 우리가 도착하기 전날 들어왔고, 음식도 주변의 도움으로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영사관 직원들은 버스를 확보해서 사람들을 이곳으로 부터 벗어나게 하는 일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차량은 확보했지만 기름이 없었다.
어수선한 상황들 속에서 무선인터넷을 이용 화상연결과 제작을 마치고 나서야 종이박스와 신문으로 자리를 깔고 하루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 쓰나미 경보와 지진의 공포...
14일 우리는 쓰나미 피해지역 센다이해안마을로 향했다. 센다이시에서 30여분, 도심을 벋어나 해안으로 접근하자 무너진 집들과 목조주택의 잔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배는 집위에 또는 도로위에 올라와 있었고 자동차들은 지붕위며 신기한 모양으로 작품을 보는 듯 했다. 시내중심 소방지휘본부가 있는 육교앞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을때 싸리렌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센다이해안 5키로 지점 10미터 쓰나미 경보가 내려졌다.
하늘에는 헬기가 쓰나미 경보를 알리는 방송을 반복하고 있었다. 소방대원들은 우리를 육교위로 대피시켰다. 사람들은 뛰기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이 육교위와 높은 건물옥상에 대피하는 모습을 볼수 있었다. 해안가에서 작업을 하던 소방차20여대가 싸리렌 소리와 함께 줄지어서 대피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거 빨리 피해야 하는게 아닌가하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아싸, 특종을 하겠군'하는 생각도 스쳐갔다. '요기 앞까지만 밀려오다 말아라...' 한국에 있는 가족들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간다. 50분의 시간이 흘러갔다. 시간이 갈수록 안도의 마음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렇게 쓰나미 경보는 조용히 마무리됐다. 마음을 가다듬고 해안으로 전진...
시내까지는 파괴된 집들과 잔해들등 많은 것들이 쌓여 있었다면 해안가쪽은 이곳에 집이 있었던가 할정도로 시야가 탁트였다. 군대군대 콘크리트나 벽돌집이 서있는 것으로 마을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줄뿐.
일본은 지진이 많아서 목조건물을 많이 지었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지진에 강하고 안전하다고...하지만 쓰나미는 예상을 못한것 같다. 수천채의 집들은 집터만 남겨두고 사라졌다.
한 노인을 만났다. 앨범으로 보이는 찢어진 한장의 가족사진을 들고 집을 찾아가고 있었다.
이곳이 과연 복구될수 있을까? 다시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사람사는 동네로 돌아갈수있을까?
의문을 뒤로하고 복귀하던중 시신들을 수습하는 자위대원들을 보았다. 시신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었다. 나중에 안사실이지만 쓰나미로 인해 사망,실종자는 2만7천여명이 넘었다.
영사관으로 돌아온 우리는 리포트제작과 간단한 식사, 찬물로 세수후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무언가 요동을 치는 것을 느꼈다. 지진이었다. 로밍해간 휴대폰을 지진을 알리는 경보가 울렸고 20초동안 많은 떨림을 느꼈다. 여기온 뒤로 가장 큰 지진의 흔들림 이었다.
정말 이런것이구나...!!
* 119구조대-방사능 비를 피하라...
15일 바람을 타고 방사능이 센다이방향으로 올라오고 비도 내린다는 예보가 들려왔다. 다행히 아침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 오늘은 대한민국 119구조대가 처음 활동하는 날이다. 일본측에서 119구조대 활동모습을 언론에 공개하기를 꺼려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린 일단 숙영지로 가기로 했다. 공설운동장 주차장에 마련된 숙영지...새벽4시에 기상, 출발부터 영상에 담고 이후일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출동하는 모습을 담고, 구조대 버스를 따라갔다. 경찰서에서 구조활동지역을 배정받은뒤 출동. 미야기현 해안마을, 맥주 물류센타가 있는 곳이다. 일본경찰들이 5~6명의 구조대마다 배치되었다. 조금 긴장을 했다. 혹시 취재를 막지나 않을까! 기우였다. 이곳은 목조건물보다는 단단한 건물들이 많았다. 하지만 집들은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고 역시 차량들은 폐차장을 연상시키듯 뒤엉켜 있었다.
캔맥주 자체가 하천의 물을 대신하듯 사방에 널려있었다. 일부 젊은 남성들은 승합차를 가져와서 맥주를 박스째 가져가는 모습도 보였다.
119구조대는 건물내부및 부서진 잔해 밑을 꼼꼼히 살피며 인명을 구조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시신만이 구조대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길거리에는 시신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방사능 측정기를 휴대한 구조대원에게 방사능 측정을 부탁했다. 다행히 평균치라는 답이 돌아왔다.
한참동안 구조활동을 취재하는데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곧이어 잠시 철수한다고 한다. 방사능 비라서 방호복을 입으러 간다고... 우리는 점퍼에 있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방호복을 입는 구조대원을 영상에 담았다.
우리는 이들의 무사 귀환을 당부하며 취재를 마치고 현장을 떠났다.
* 수돗물, 채소가 오염되면 뭘 먹으라고...
일주일간의 현지 취재를 뒤로하고 방사능이 바람을 타고 퍼지면서 안전지대로의 철수 명령이 떨어졌다. 영사관에 있던 언론사들은 하나 둘씩 떠나기 시작했다. 미혼의 기자들은 더욱더 두려움이 컸을 것이다. 나도 그런데....
승준팀과 함께 있었던 우리는 같이 북상해 아키타로 향했다. 가는도중에 본사로 부터 한팀은 철수하라는 소식을 접했다. 우리팀이 남기로 했다. 18일 승준팀 복귀.
우리는 도쿄로 향했다. 도쿄지국에는 야구 전지훈련차 오사카에 왔던 취재팀이 특파원을 돕기위해 몇일전부터 취재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 팀도 19일 귀국. 특파원과 함께 시작된 도쿄생활은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이어지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방사능비를 비롯, 수돗물오염에 채소의 방사능 물질 오염까지....수돗물 방사능물질 오염발표전날 라면도 끓여먹고 커피도 타먹었는데...! 마트에는 생수를 찾기가 힘들어졌고, 그나마
1인당 1병씩 팔기시작했다. 도쿄인근에 대규모 지진이 또 온단다.
이젠 점점 무덤덤해진다. 지진도 일상화되고 이젠 피할곳도 없고... 우리야 있다가 떠나면 그만이지만! 특파원선배는 아이들이 4월이면 학기가 시작된다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국을 떠나온지 17일만에 철수명령이 떨어졌다.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 안도의 한숨과 걱정의 한숨이 순간적으로 나왔다. 회사로 돌아가는 차안에서 서울하늘을 보았다.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밝은 느낌, 평온한 느낌 이랄까!
우린 행복한 곳에 산다는 생각이 마음 한켠에 자리잡는다.
정치적인 이념을 떠나서 이번 재앙으로 목숨을 잃은 분들과 가족들께 조의를 표하며, 일본국민들이 이 위기를 잘 극복하기를 기원한다.
이승환 YTN 영상취재1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