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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23일 부산 사직구장
전날 내린 비로 인해 하루 연기되었던 2011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5차전,
정규리그 2위팀 롯데와 준플레이오프에서 기아를 물리치고 올라온 SK의, 한국시리즈를 위한 막판 승부. 이 두 팀 중 이기는 팀만이 대구행 티켓을 받겠지만 난 이미 한국시리즈 1,2차전 취재를 예고 받은 터인지라 그라운드의 선수들 보다는 마음이 편하다고 해야 하나?


#1 슬픈 갈매기

나는 부산 갈매기다.
어려서부터 뼛속까지 갈매기인 본 기자는 완전히 객관적인 취재는 힘들 거란 생각으로 부산 사직구장에 도착했다. 롯데의 99년 이후 12년만의 한국시리즈 진출의 기쁨을 내 카메라로 담고 싶었다.
사직구장 만원관중의 응원 속에 시작된 롯데의 1회 말 공격. 김주찬의 3루타에 이은 전준우의 적시타로 롯데가 앞서갔다. 분위기는 롯데의 여유로운 승리가 예상되었으나 추가점이 안나왔고, 불안한 1대0의 리드를 지키던 4회 초. SK의 박정권의 타석. 딱 소리와 함께 나의 카메라는 반사적으로 타구를 따라갔다. 보통 뷰파인더로 타구를 타이트하게 따라가다 보면 이 공이 홈런이 될지 플라이가 될지 예측이 힘들다. 그 순간 들리는 함성으로 판단할 뿐이다. 그러나 관중들의 함성이 탄식으로 바뀌며 홈런임을 예감할 수 있었고, 공의 떨어지는 궤적을 따라가며 관중석이 보이자 예감은 현실이 됐다.
2011 시즌, 카메라로 담았던 수십 개의 홈런 중에 가장 따라가기 싫었던 홈런이고, 야구 취재를 하면서도 슬플 수 있다는 것을 느낀 순간이었다.  

#2 변태로 오해받은 팬티스타킹 사건

군복무시절 혹한기 훈련에 꼭 필요했던 팬티스타킹. 이제 40이 넘어서 다시 팬티스타킹을 입을 줄은 몰랐다.
한국시리즈 1차전이 열렸던 10월25일의 대구는 때 이른 추위가 찾아와 그라운드의 선수와 관중들을 힘들게 했다. 물론 9회까지 한자리에 앉아서 뷰파인더만 보고 있어야 하는 카메라 기자들이야말로 가장 힘들겠지만.
가벼운 가을 차림으로는 이 추위를 버틸 수 없겠다 싶어 편의점에서 팬티스타킹을 구입하는 순간 20대 초반의 앳된 아르바이트생이 날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난 괜히 후배에게 큰소리로 말을 걸었다 “이거 정말 따뜻해?”
혹 추위를 대비해서 팬티스타킹을 착용할 기자들에게 드리는 한 가지 팁.
팬티스타킹을 그냥 양말 신듯이 입으면 사타구니까지 올라가야 될 부분이 무릎에서 멈춘다. 그때는 작은 걸 샀구나 하지 말고 처음부터 꼼꼼히 당겨서 입으면 다 올라간다.

#3 오승환의 돌직구에 건 도박

추운 날씨만큼이나 점수도 나지 않았다.
삼성과 SK는 정규시즌 평균자책점에서 나란히 1,2위를 차지했던 강한 마운드를 한국시리즈에서도 선보였다. 두 팀은 4회 초까지 팽팽한 투수력을 세우며 투수전으로 경기를 이끌었다.
4회말, SK 고효준의 제구력 난조를 신명철이 놓치지 않고 적시타로 연결해 2점을 뽑아내며 리드를 잡았고 8회 초 투아웃, 끝판왕 오승환이 등판했다. 마운드에 올라서는 오승환의 눈빛에서 이 경기의 결과를 예상할 수 있었다.
그래서 기자는 도박을 하기로 했다. 홈런 하나로 승부가 결정 날수도 있는 박빙의 승부라 경기장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서 경기 흐름을 따라 가야 했지만, 오승환의 마무리를 좀 더 가까운 모습으로 카메라에 담고 싶어졌다. 오승환의 돌직구는 묵직하게 매서운 추위를 깨뜨리며 포수미트를 강타했고, 그 순간 나의 기자적 예감이 맞았다는 생각에 강렬한 쾌감을 느꼈다. 또한 이번 한국시리즈는 ‘오승환시리즈’가 될 것이란 예감이 드는 순간이기도 했다.
SK의 마지막 타자 이호준을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포수 진갑용과 세러머니를 하는 오승환을 마지막으로 촬영한 후, 요즘 들어 자리 잡기가 더 힘들어진 인터뷰를 위해 카메라를 들고 그라운드로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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