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도시 ‘타클로반’을 가다.
겹쳐 쓴 마스크 사이로 시체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사라져버린 마을을 멍하게 바라보다 다시 길을 걷는데 거리마다 널브러진 주검들이 눈에 들어온다. 거적때기라도 둘러놓은 것은 그나마 참을만했다. 다리를 벌리고 석고상처럼 굳어버린 송장들은 현실감마저 상실케 했다. 폭우가 내리는가 싶더니 다시 폭염이다. 그 습한 공기에 또 헛구역질을 나온다. 여기는 죽음의 도시 ‘타클로반’이다.???
전화벨이 울렸다. 야근을 마치고 단잠을 청하려던 순간이었다. 캡의 번호다. 내가 무슨 사고를 쳤나?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필리핀행 일주일치 출장 짐을 싸야겠다.” 수화기 너머 캡의 지시는 나를 잠시 멍하게 만들었다. “알겠습니다.” 라고 힘차게 외쳤지만 나는 쉽사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 못했다. 급하게 짐을 꾸려 회사에 도착하니 선배들이 출장 짐을 챙기느라 분주했다. 3시간 뒤에 공항으로 가는 차를 타야한다는데 모든 것이 어리둥절했다. 경험이 풍부한 황인석 선배를 따라 2진으로 가는 것이었지만 혼자서도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있어야한다는 마음으로 출장 준비를 했다. 정신없이 시간은 갔고 어느새 비행기는 한국 땅을 떠났다. 나의 첫 출장이자. 첫 출국이었다.
취재에 대한 계획은 세부공항에 도착하는 것까지였다. 그다음부터는 순간순간 상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판단해야했다. 제일 큰 과제는 타클로반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타사들은 외교부 신속 대응팀과 함께 미군 수송기를 타고 들어간다는 소식을 접했다. 하지만 탈 수 있는 인원이 한 명뿐이어서, 취재팀 세 명에 짐이 열개였던 우리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결국 가이드 역할을 해주시던 목사님께서 알려준 ‘올목’행 배편을 택했다. 일단 레이테 섬에 들어가 육로로 이동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것 역시 가능한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예정은 모두 빗나갔다. 1시에 도착한다던 배가 3시 반에 ‘올목’에 도착했을 때 뉴스를 어떻게 제작할지 눈앞이 깜깜해졌다. 시차 탓에 7시 뉴스를 준비해야했던 우리는 늦어도 6시까지는 송출을 마쳐야 했다. 급하게 섭외한 현지 운전기사도 타클로반까지 최소 4시간이 걸린다고 말해 절망감을 보탰다. 황 선배가 결단을 내렸다. “오늘은 ‘올목’에서 취재를 마친다.” ‘올목’도 태풍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었기에 가능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다. 이곳 역시 전기가 끊겼다는 것이다. 취재를 하는 것 보다 전기를 찾는 게 더 절박했다. 특종이 있어도 송출을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기적같이 전기가 있는 공장을 찾았다. 전기도 고마운데 인터넷 선까지 내어주었다. 그렇게 첫 번째 뉴스를 겨우 막았다. 진이 빠질 틈도 없었다. 우리 팀은 곧바로 아침뉴스 제작에 돌입했다.?
아침 리포트 송출을 마친 새벽 3시, 우리는 타클로반으로 달려갔다. 무너진 감옥에서 탈옥한 죄수들이 길을 막고 강도질을 한다는 소리를 들은 직후였다. 불안과 공포 끝에 해가 떴고 우리는 타클로반에 안착했다. 다른 사람은 어땠을지 몰라도 내게는 눈앞에 지옥보다 하루하루 뉴스를 어떻게 보내야할지가 더 큰 스트레스였다. 우리는 인말셋 장비를 이용해 송출을 했는데, 높이와 각도, 시간에 따라 급변하는 전송속도에 얼마나 울고 웃었는지 모른다. 우림 팀은 정윤식 취재기자와 황선배가 취재를 하는 동안 내가 송출을 전담하는 식으로 워크 플로우를 짰다. 촬영과 동시에 송출을 하는 시스템이 타클로반에서는 최적화된 방법이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버티고 넘기다 보니 조금씩 이 극한 상황이 익숙해졌고, 그제야 취재의 대상이 아닌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죽음 속에서도 피어나는 아이들의 웃음 같은 것 말이다.
갑자기 돌풍을 동반한 폭우가 들이닥쳐 온몸으로 장비를 지킨 일, 방송시간 직전에 정전이 되어 빛만 보고 뛰어갔던 일, 인말셋이 고장나 휴대폰으로 송출되는 곳을 찾던 일 지금 생각해보면 뉴스가 나간 것 자체가 기적 같던 순간이었다. 만신창이가 되고도 뉴스 잘나갔다는 소식만 들리면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환희했다. 이곳이 아니었으면 도저히 경험하기 힘들 일들이 계속 벌어졌고, 이러한 상황이 신입 카메라기자인 나에겐 최고의 훈련이 되었다. 7박 8일의 출장을 마치고 한국 땅을 밟았을 때 제일 먼저 그동안 나간 우리 뉴스를 찾아보았다. 모니터를 하며 나의 직업이 카메라를 들고 현장에 가는 일이라는 것에 자긍심을 느꼈다. 수습 때부터 타클로반까지 나에게 아낌없는 가르침을 주시는 황인석 선배와 힘든 고난을 함께 극복했던 동기 정윤식 기자, 그리고 이런 값진 경험을 할 수 있게 허락해주신 많은 선배들께 감사한다.
김승태 / SBS 영상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