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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은 멀다

 지구라는 작은 별에서 한국 사람이 비행기를 타고 갈 수 있는 곳 중에서 가장 먼 곳은 어디일까요? 바로 브라질이 아닐까합니다. 서울에서 땅을 끝까지 파면 반대쪽에 나오는 나라가 브라질이란 우스갯소리도 있으니까요. 시차도 정확히 12시간이라서 손목시계의 시간을 변경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미국을 거쳐 가나 유럽을 거쳐 가나 걸리는 시간은 똑같습니다. 기름이 부족해서 한 번에 갈 수 있는 여객기도 없습니다. 환승시간을 제외한 비행시간만 24시간. 그렇습니다. 브라질은 정말 멉니다. 하지만 남미를 언제 또 가보겠습니까? 게다가 월드컵이라니! 쌈바~! 회사파업도 끝나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라 24시간 비행이 그리 길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브라질은 위험하다

 저에게 주어진 임무는 월드컵 외곽취재였습니다. 시쳇말로 사스마와리였죠. 이과수폭포도, 예수님 동상도, 아름다운 해변도, 아마존 밀림도..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브라질까지 와서도 시위대들 쫓아다니고 그랬습니다. 그래도 한국에선 사스마와리가 마음은 편하잖아요. 하지만 브라질에서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우리 팀은 다행히 별일 없었지만 KBS 모 예능 팀은 공원에서 촬영도중 무장 강도를 만나 ENG카메라를 빼앗겨 결국 귀국했다는 비보를 들었습니다. 반대시위 또한 격해서 아침마다 시위대와 경찰들이 충돌하여 몇 명이 다쳤다는 뉴스를 보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모 신문 사진기자가 묵던 호텔방에서는 화재가 발생하여 한국기자들이 대피하는 소동도 있었고요. 그렇습니다. 듣던 대로 브라질은 위험합니다. 브라질 공식 가이드북에서조차 강도를 만나면 주머니에 손을 넣지 말고 강도가 직접 돈을 꺼내갈 수 있도록 양손을 머리위로 들고 있으라고 할 정도니까요.

브라질은 가난하다

 그렇다면 브라질은 왜 치안이 좋지 않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지나친 빈부격차도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극빈층들이 몰려 사는 마을을 ‘파벨라’라고 하는데요, 브라질 말로 ‘들꽃’이라는 뜻이랍니다. 낭만적이죠? 우리네 달동네처럼요. 하지만 그들의 삶은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강력범죄가 주로 일어나는 동네가 바로 파벨라이고, ‘들꽃마을’ 출신들이 브라질에서 성공하려면 축구선수 아니면 갱스터, 두 가지 밖에 없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비운의 축구영웅 네이마르도 파벨라 출신입니다. 이것은 외곽취재팀이 취재하기 좋은 소재입니다. 다행히 현지코디가 축구선수라서 3다리정도 건너 아는 사람 소개로 파벨라 지역을 무사히 취재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축구는 우리에게 ‘고시’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브라질 축구의 힘은 역설적으로 ‘가난함’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순간입니다.

브라질은 넓다

 외곽취재팀의 또 하나의 미션은 브라질 한인들과 붉은악마 원정응원단 취재였습니다. 상파울로 한인회는 한국경기를 응원하기 위해 버스 응원대장정에 돌입했습니다. 왜 대장정이냐고요? 상파울로에서 한국경기가 열리는 쿠이아바까지 버스로 25시간 걸리는 일정이기 때문입니다.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옥수수 밭이 3시간동안 계속 되고, 옥수수 밭이 끝나면 또 3시간동안 목화밭이 펼쳐지고, 목화밭이 끝나면 또 3시간 동안 사탕수수 밭이 펼쳐졌습니다. 그렇습니다. 브라질은 정말 넓었습니다. 왕복3000km의 여정 속에서 한인들의 피로를 풀어준 것은 버스에 싣고 간 육O장 사발면과 김치였습니다. 라면은 정말 최고의 음식입니다. 라면 먹고 불꽃 응원! 한국 사람들 정말 대단합니다.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응원만큼은 우승후보!

 비록 16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붉은 악마의 응원열기는 대단했습니다. 2002 한일 월드컵 이후로 대형현수막 응원이 우리에겐 매우 익숙한 풍경이지만, 실상은 불법이었습니다. 대형 현수막을 커다란 백팩에 최대한 작은 부피로 접어 넣어 응원석에 가져간 뒤, 애국가가 나올 때 다 같이 힘을 모아 펼치는 광경을 가까이에서 보니(촬영하니) 저도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하지만 뭉클함도 잠시, 현수막을 걷자마자 FIFA에서 불법이라며 압수해가버리더군요. 그렇게 준비해간 북이며 꽹과리며, 확성기며 모두 다 압수당하면서도 마지막까지 태극전사들을 열렬히 응원하는 열정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요? (라면의 힘?)

브라질에게 축구란?

 브라질 사람들에게 놀란 점은 축구를 ‘정말’ 좋아한다는 점입니다.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나라간의 경기임에도 관중석이 꽉 찰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고, 각자 원하는 팀들을 열정적으로 응원해주었습니다. 축구강국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외곽취재를 담당하여 국가 대표 팀이나 유명 축구선수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는 없었지만,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일정과 동선 덕에 브라질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다양하게 느껴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함께 땀 흘리며 취재했던 다른 스포츠 선후배님들께도 이 자리를 빌려 고생 많으셨다는 말씀 함께 전합니다. Obrigado(고맙습니다)!



이재섭 / KBS 보도영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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