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남북정상회담 취재기>
"우리 민족의 기록입니다"
벌써 18년의 세월이 흘렀다. 파인더 속에서 맞잡은 두 손을 추켜올리며 환하게 웃던 남북의 두 정상은 이제 고인이 됐다. 방 한 구석의 상자를 뒤적이며 당시의 기억을 더듬는 기자도 이제는 환갑의 나이. 한참만에야 상자 안에 갇혀 있던 시간을 찾아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첫 만남(2000년 6월 13일 평양순안공항)
만세! 순안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약속대로 취재 포인트를 찾아 움직이던 내 눈에 함성과 함께 붉은 물결이 들어왔다. 순간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나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빨리” “빨리”라는 재촉에 쫓겨 급히 순안공항을 빠져나와야 했다. 방북 후 내가 맡은 첫 취재는 지붕이 뚫린 무개(無蓋)차를 타고 행렬의 선두를 맡는 것이었다. 공항 바깥의 취재 장소에 도착하자, 색색의 조화를 들고 도열해 있는 평양 시민 사이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판문점 취재 때 보았던 북측의 촬영기자다. “형님,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건네니, 주변의 상황 때문인지 반가워하면서도 쑥스러운 모습이다. 행렬을 기다리며 마땅히 볼 것이 없던 군중들의 시선은 자연히 우리를 향했고 그들의 추측대로 우리는 그렇게 친근한 형님, 동생 사이가 되었다. 북측의 기자와는 얼굴이 낯익은 정도의 사이였지만 나는 왠지 그들 앞에서 호형호제 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잠시 후 마음의 여유를 찾고 고개를 돌려보니 연도의 북한 주민들은 모두 낯익은 우리의 모습이었다.
본대가 출발했다는 연락이 오고 선두의 무개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일제히 붉은 물결이 출렁인다.
만세! 우렁찬 함성 속에 분단 55년 만에 열린 첫 남북정상회담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평양 시내를 가르고 언덕을 넘어서도 환영 인파는 끝이 없고 함성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남아 있는 몇 장의 사진과 대표단 신분증을 만지작거리니 마치 먼 시간의 일인 양 아득하게 느껴진다.
▲사진 좌측부터 KBS이희엽, SBS김홍식, YTN조항윤, SBS김영창(필자), KBS전한옥, YTN하성준, MBC김경배, MBC이문로
신문, 방송을 합해 총 50명으로 구성된 방북기자단 중에서 TV 영상취재기자는, 당시 청와대를 출입 중인 KBS, MBC, SBS, YTN에서 각각 2명씩 총 8명이 공동취재단의 이름으로 취재활동을 했다. 남측의 기자단이 머문 숙소는 평양 시내에 위치한 고려호텔이었고 사전에 협의한 대로 송출시설도 호텔 내에 설치했다. 평양 시내의 교통 사정은 차량이 드문드문할 정도로 한산했지만, 최대한 빠른 송출을 위해 취재한 테이프를 수송하고 송출팀을 상황에 따라 바꾸면서 특집방송에 대비하기로 약속을 했다.
일반적으로 대통령 해외순방 취재는 나라별, 일자별, 시간대별로 행사 일정이 사전에 출입기자단에게 배포된다. 그런데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방북 전에 기자들에게 통보된 일정은, 평양의 순안공항 도착 때 공항 영접과 본대의 근접, 행렬의 선두 취재 뿐이었다. 모든 건 그때 그때 정부 관계자에게 연락을 받고 1~2시간 전에 동행 출발해, 취재 장소에서 대기를 해야 했다. 방북 전에 상호 간 사전 협의가 있었겠지만 유동적인 상황과 경호 문제 등 보안 유지가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취재 테잎은 고려호텔로 도착하는 즉시 편집 없이 원본을 그대로 송출했다. 분단 이후 첫 정상 간의 만남이니 매 순간이 뉴스였고 역사였다. 현장과 송출실을 바삐 오가다 서울 소식을 전해 들었다.
순안공항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두 손을 맞잡는 장면이 들어오자,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 마련된 프레스센터 안의 내⋅외신기자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고 한다. 당시 프레스센터 내에는 기자들을 위해 북에서 보내는 영상을 대형화면으로 볼 수 있게 해놓았다고 들었다.
또 다시 취재를 나갔다 오니 이번에는 송출한 영상이 편집 없이 TV에서 실시간으로 방송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우리는 촬영에서도 NG 컷이 없도록 신경을 썼고, 체제 선전이 우려되는 만수대 창작사 등의 취재는 촬영 분량을 크게 줄였다. 산수화 등을 제외하고는 정치 선전물 일색이니 안내원의 정성과 우호적인 분위기를 감안하더라도 전 국민이 시청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대로 내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는 한편으로 북이 감추고 싶은 부분 역시 배려를 했다. 당시 고려호텔에서 건너편 아파트를 보면 깨진 유리창을 비닐로 막고 테잎으로 마무리한 모습들이 보였다.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지만 카메라를 들지 않았다. 호텔 앞에서 거리 스케치를 할 때도, 이동 중에도, 행색이 남루한 사람들이나 광경에 앵글을 돌리지 않는 등 정상회담의 분위기를 흩트리지 않기 위해 뜻을 모았다. 취재진 모두 한마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이 잘 되기를 바랐고 희망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의 기록이에요. 이대로는 안됩니다. 우리 청와대 대변인을 불러주세요.”
6월 14일 오후 7시. 모란각에서 열린 남측의 답례 만찬에서 행사 앞 부분을 취재하고 만찬장을 나왔다. 대체로 대통령의 오찬이나 만찬 행사의 취재는 대통령 입장과 모두 발언, 건배까지 취재를 하고 빠지는 것이 일반적인 순서이다. 이날도 건배까지 마무리 했으니 아무런 이상할 것은 없었다. 그러나 남북이 공동선언문에 합의했다는 모두 발언과 건배 취재 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서 잠깐 생각한 끝에 만찬장 밖의 북측 경호원을 붙들고 우리 대변인을 불러줄 것을 요청했다. 이런 경우 성사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포기할 수가 없었다. 한참을 실랑이한 끝에 마침내 북측 경호원이 박준영 당시 청와대 대변인을 불러주었다. “분단 이후 처음 만난 남북의 정상이 공동선언문 합의까지 이끌어냈는데 그림이 너무 밋밋하다, 손이라도 한 번 잡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를 들은 대변인은, 이를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전했고 결국 나는 만찬장에 다시 들어갔다.
다시 연단 앞으로 나온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
김대중 대통령 - “우리 둘이 손잡고 하는 장면을 사진 찍는 분들이 못 찍었다고 다시 한번 해달라고 해서 김 위원장께 우리 배우 노릇 한번 합시다 했더니 좋다고 하셔서 합니다. 우리 두 사람이 공동성명에 대해서 완전히 합의를 봤습니다. 여러분 축하해 주십시오!”
▲남북공동선언 합의 발표(2000년 6월 14일 모란각)
환한 웃음과 함께 두손을 번쩍 든 두 정상의 유쾌한 모습에 만찬장 내의 남북 주요 인사들은 기립 박수로 화답을 했다. 출연료를 받아야겠다는 농담을 하면서 흔쾌히 응한 김정일 위원장, 불편한 몸이지만 기꺼이 연단 앞으로 나온 김대중 대통령. 한껏 가까워진 두 정상은 이날 밤 늦게 6.15 공동선언문에 서명을 마치자, 자연스럽게 만찬장 때와 똑같은 모습을 연출했다. 이번에는 기자들 누구의 요청도 없었다. 뭐든 처음이 어려운 법이다.
▲6.15남북공동선언문 합의서명(2000년 6월 14일 백화원 영빈관)
이번 2018년 남북정상회담은 회담 장소가 판문점이라는 특수성과 남북의 정상이 군사분계선을 넘고 또 이를 기다렸다 맞이한다는 극적인 상황이 생중계될 예정이라 벌써부터 세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남북화해의 기반을 구축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던 1차 때와는 달리 4차 남북정상회담은 완전한 비핵화라는 분명한 과제가 있다. 또한 이 과제는 남북 간 합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연계된 북미정상회담에서 완결된다는 어려움을 안고 있어 회담 전망도 불투명하다. 취재진의 노력만으로 회담의 결과를 어찌할 수는 없겠지만, 현장을 지키고 있는 영상취재기자들이 최선을 다해 줄 것을 기대한다. 우리가 보고, 느끼고, 기록한 것은 그대로 우리의 역사가 되고 미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SBS / 김영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