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SK 건설
댐 붕괴 현장을 다녀와서
웬만한 4륜 SUV 차량이 아니면 통과하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손상된 진흙 도로가 끝없이 보였다. 나름 아스팔트가 깔린 라오스 메인도로를 벗어나 2시간 이상 달렸다. 곳곳이 파이고 물이 차올라 시속 10킬로 내외로 조심스레 운전하지만 덜컹거림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다.
깊게 파인 물웅덩이를 지날 때면 의자에서 몸이 붕 떠버려 강한 연쇄 충격을 받아 몸과 머리가 따로 놀아 머리가 멍해지기도 했다. 그 와중에 실어놓은 장비 짐들이 고장 나지 않도록 손으로 단단히 눌러야만 했다.
진흙에 바퀴가 빠지면 장정 여럿이 앞에서 밀고 뒤에서 밀고를 몇 번이나 반복해야만 육중한 차를 겨우 빼낼 수 있었다. 물이 넘쳐흐르는 곳에서는 차를 멈추고 통과 여부를 확인해야 했다. 워낙 물살이 세서 조심스레 발을 담가보며 수심을 체크했다.
세피안-세남노이 수력발전 보조댐이 무너진 지 5일째이자 현지 취재 사흘째인 7월 28일, 최악의 환경에서 취재를 이어가는 우리 모두는 몸과 마음이 지쳐있었다. 이때 전날 SK건설 측에서 사고 난 댐까지 접근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알려왔다.
산사태로 통제되었던 길목을 겨우 뚫었다는 것이다. 이에 현지에 급파된 한국 취재진들은 동이 트자 각자 마감시간에 뉴스를 데기 위해 서둘러 출발하였다. 차량이 댐 어디까지 접근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최대한 가능한 곳까지 달려야만 했다.
댐 안내 표지판이 보였다. 표지판 이후부터는 길이 더 좁아지고 험난해졌다. 산 골짜기를 막아놓은 댐이라 경사도 점점 심해졌다. 어느 순간 선두에서 안내하던 차량이 멈춰 섰다. 밀림 속에 공사를 위해 만든 길이라 주변 상황 파악이 어려웠다.
차가 갈 수 있는 곳까지 다 온 것인가 생각하고 모두들 차에서 내렸다. 웅성거리고 있는 선두 대열로 가보니 우리를 안내하던 도요타 픽업트럭 본네트가 열려있었다. 엔진 이상인지 더 이상 운행이 불가한 것같았다. 여기서 운전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엔진 열을 식히는 것뿐이었다.
출발할 때 예상한 것보다 훨씬 멀고 험난한 여정이었다. 퍼져버린 선두 안내 차량을 뒤로하고 다시 댐 현장으로 달렸다. 이날 장비가 많아 4륜 픽업트럭을 놔두고 밴을 타고 온 우리팀은 점점 마음이 불안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붉은 진흙으로 덮인 난코스의 언덕길이 보였다.
입자가 너무 고운 데다 물을 한껏 머금고 있어서 밴이 치고 올라가기에는 불가능할 것 같은 길이 나타난 것이었다. 다른 픽업트럭들은 굉음을 내며 흙탕물을 사방으로 튀기며 올라갔다. 시계를 보니 벌써 한국 시각으로 2시가 넘었다.
촬영을 마치고 송출이 가능한 지역으로 가려면 적어도 3시간은 잡아야 했다. 출발 전 오늘 하루는 수월하게 취재를 마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나의 어설픈 낙관적 예상은 100% 빗나갔다. 초조와 긴장만이 감돈 채 최소한의 장비만 챙기고 차에서 내려 무작정 걸어야만 했다.
날은 덥고 습했다. 볼라벤 고산지대에 위치해 있어서 한국보다는 기온이 낮다는데 위안을 삼으며 묵묵히 걸어갔다. 다행히 한 고개를 넘으니 드디어 댐 현장이 멀리서 보였다.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메인 댐이 아닌 물이 차오를 경우 흘러넘치는 것을 막기 위해 골짜기에서 골짜기를 막은 새들댐(보조댐)이었다.
그러나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으로 짐작컨대 무너지기 전에는 꽤 거대한 보조댐이었을 것이다. 어마어마한 수압으로 댐에 틈이 생기고 윗부분이 쓸려나가면서 결국에는 자연의 힘을 이기지 못했다.
단단하게 밑에서부터 사다리 모양으로 댐을 다진 후 그 위에 도로로 이용하기 위해 아스팔트를 깔아놓은 형태였다. 하지만 아스팔트는 16미터 아래로 조각나 부서져 있었다.
당시 쏟아졌던 1100mm 비의 양은 서울의 1년 강수량과 맞먹었다. 아직 원인을 명확하게 밝힐 수는 없지만 이 어마어마한 대자연의 수압이 대한민국 건설사가 시공한 16m 댐을 처참하게 붕괴시켜 버린 것이었다. 인근 마을 주민들의 목숨과 생활터전 모든 것을 순식간에 집어삼켜버렸다.
주변국으로 전력 수출을 하여 외화벌이를 하겠다는 라오스 국가의 대계획으로 인해 평온했던 수천 명의 삶의 터전이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다.
이것저것 꼼꼼히 따져가며 촬영하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하였다. 쉼 없이 움직이며 촬영해 기록했다. 동시에 무수한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전날 수몰된 마을을 어렵게 다녀왔었다. 그곳에서 주민 한 명을 마주쳤다.
아직까지 물이 다 빠지지 않아 안전상 위험구역으로 정해져 군인이 통제했다는 곳이다. 민간인이 접근하지 못한다는 그곳에 살림살이 하나라도 건져보기 위해 목숨을 걸고 다시 돌아온 것이었다. 집안 곳곳을 찾는 라오스 주민. 너무 많이 울어 눈물이 말라버린 눈동자. 서둘러 댐 촬영을 마치고 차에 올라타 돌아오는 길에 내 머리 속에서 그의 뒷모습이 아른거리며 잊히지 않았다.
배문산 / 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