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수장자 OBS 기경호. 최백진 기자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회장 한원상․아래 협회)는 지난 1월 26일 한국방송카메라기자상 심사위원회를 열어 기경호․최백진 기자의 <OBS 창사 9주년 특별기획-세월호 그 후, 트라우마는 누구의 것인가>를 대상으로 선정했다.
협회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사회는 피해자들의 트라우마에 주목했으나 트라우마의 치유와 환경에 대한 조명은 부족했다”며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미래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 해법을 모색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밝혔다. 협회 시상식이 열린 지 이틀 뒤인 지난 2월 24일, 서울 염창동 골든서울호텔에서 기경호(50․사진) 기자를 만났다.
- 2016년 12월 방송기자연합회 보도부문상, 2017년 4월 한국YWCA가 뽑은 ‘좋은 TV프로그램상’ 생명평화 부문상에 이어 한국방송카메라기자상 대상을 수상했다.
“이번에 협회에 출품된 작품을 보면, 어떤 작품이 대상을 받아도 전혀 문제될 게 없는 훌륭한 것들이 많았다. <세월호 그 후…>가 50분짜리 특집 프로그램이다 보니 다른 작품에 비해 더 고생했다는 의미에서 주신 것 같다.”
처음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
“세월호를 취재하면서 알게 된 잠수사가 있는데, 세월호 사건 이후로 잠수를 못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사람에게는 먹고 사는 문제가 달린 ‘업’인데 무엇이 잠수사를 물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할까 생각해 보니 ‘트라우마(외상 후스트레스 장애)’가 있었다. 재난에 대한 치유 프로그램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데,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2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세월호 얘기냐’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모두의 무관심 속에서 트라우마를 견디지 못한 채 조용히 소중한 생명을 놓는 사람이 생기고 있었다. 비단 세월호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대구지하철참사 같은 재난으로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에 대한 치유가 절실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 취재 시점이 박근혜 정부 시절인 데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언론을 극도로 불신하는 분위기라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프로그램에 나와서 이야기를 해 줄 사람을 섭외하는 과정부터 힘들었다. 피해자 가족들은 ‘나를 두 번 죽이려는 거냐’며 취재를 거절했고, 트라우마 전문가는 거의 없는 실정이었다. 당시 미수습자 가족 가운데 한 명인 조은화 학생의 어머니를 찾아갔는데, ‘언론이 나한테 해 준 게 뭐냐’며 문전박대하시더라. 그 마음이 이해가 되어 촬영 장비를 다시 차에 모두 싣고 나서, 은화의 얼굴이 담긴 플래카드를 다는 걸 도와드렸다. 이튿날도 찾아가 이런저런 일을 도와드리고 가려고 했더니 ‘인터뷰하러 왔는데 왜 가느냐’면서 마음을 열어주셨고, 취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잠수사의 이야기를 취재하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고 들었다.
“밤만 되면 아이들이 나를 잡는 것 같고, 물 속에 있던 참혹한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라 죽고 싶다고만 했다. 그런데 취재 도중 또 다른 잠수사가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사건 직후 취재하던 잠수사는 연락을 끊었다. 특히 내가 이 특집을 좀 더 일찍 시작해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빨리 치유해줬더라면 하는 생각 때문에 힘들었다.”
- 우리 언론이 사회문제 고발과 비판에 그치지 말고 이를 해결하는 대안과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재난을 경험하면 개인은 물론 공동체가 파괴된다. 사건 직후엔 여기저기서 관심과 지원의 손길을 보내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만 좀 해라’라는 얘기가 나오는 게 우리나라다. 지역사회, 민간 단체, 정부가 연계해 피해자와 유가족에 대해 지속적인 지원과 관리를 해 줘야 하는데, 손발이 맞지 않다 보니 늘 보여주기에 그친다.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자신이 겪은 악몽같은 일에 대해 움츠려들지 않도록 지역 공동체와 국가가 나서야 한다.”
- 2016년 11월30일 작품이 방영됐다.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혹시 아쉬운 점은 없나?
“막상 상을 받으니 조금 더 열심히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프로그램이 방영된 뒤 일부에서 ‘해결 방안이나 정부가 해야 하는 역할의 구체성이 희미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당시로서는 해외 사례를 통해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것들을 제시했다고 생각했는데, 취재한 것을 모두 담아내지 못한 부분이 있다.”
- 방송이 나간 몇 개월 뒤 조은화 학생이 어머니 품으로 돌아왔다는 보도가 있었다.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은화 어머니가 정말 걱정이었다. 그동안 은화 어머니가 그나마 삶의 끈을 잡고 있었던 게 은화를 찾겠다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는데, 은화를 찾은 지금 어떤 심정일까. 지역 공동체와 정부가 은화 어머니의 마음을 끌어안고 치유하는 데 적극 나서주길 바란다.”
- 방송 카메라 기자들도 여러 사건‧사고를 접하다 보니 트라우마가 있을 것 같다.
“우리라고 트라우마가 없겠는가. 당시엔 몰랐지만 위험했던 순간들이 지나고 난 뒤 내가 ‘미친놈’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한 번은 야근을 하는데 강화도에서 바닷물이 넘쳐 논밭은 물론이고 집으로까지 바닷물이 들어온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급하게 차를 몰고 마을로 갔는데, 벌써 집안에 무릎까지 물이 차 올라 있었다. 취재를 하다 보니 바깥 상황에 신경을 쓰지 못했는데, 밖에 나와 보니 벌써 물이 허리까지 올라오고 순식간에 가슴, 어깨까지 차오르더라. 카메라가 물에 젖지 않도록 머리 위로 받쳐 들고 물살을 가르며 간신히 걸어 나왔는데, 그 뒤로 바닷물이 무서워 잘 가지 않는다.”
- 기획 단계부터 촬영, 편집까지 직접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OBS만 해도 직접 취재하고, 촬영하고, 리포팅하는 능력을 가진 영상 기자들이 많이 있다. 또, 영상 기자가 기획이나 연출을 원할 경우 회사 차원에서 믿고 기회를 주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모든 기자들이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 협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카메라 기자들도 많은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데, 지금으로선 아무 방법이 없다. 이 문제를 협회 혼자서 해결하기는 어려우니, 카메라 기자들도 트라우마를 치유받을 수 있도록 정부에 지속적으로 요구했으면 한다. 또, 정부 차원에서 카메라 기자의 특성에 맞는 교육과 연수 프로그램을 지원하도록 목소리를 내 달라.”
취재 및 정리 / 안경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