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기고 - 미디어의 속도와 책무감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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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의 속도와 책무감에 대해서

 

 

 알타미라와 라스코 동굴 벽화는 인류의 역사를 기록한 최초의 흔적이다. 이와 동시에 동굴 벽화라는 미디어가 발생했다. 아마 구석기에서 신석기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사용한 역사 기록 미디어는‘ 동굴 벽’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수메르인들은 오천년 전부터 석판을 이용해 자신들의 역사를 기록했다. 오랜 해독기간을 거쳐, 그들이 기록한 역사는 점차 생명을 얻었다. 석판 미디어의 대를 이은 것은 파피루스였다. 그리고 좀 더 건조한 지역에서는 양피지를 이용해서 이야기와 역사를 기록했다. 동양에서는 파피루스와 동시대에 갑골(胛骨)이 역사기록에 이용되었을것이고 죽간(竹簡)은 거의 파피루스 정도의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
 

 후한의 환관 채륜(蔡倫)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전해지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 중에 하나인 종이는 아라비아를 거쳐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이야기와 역사가 종이 위에 기록된 시간은 천년 이상이겠지만 활자와 종이가 미디어로서 완전히 헤게모니를 잡게 된 사건은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인쇄술이었다. 루터는 이를 이용해서 라틴어로 된 성경을 독일어로 변역하여 종교 개혁의 물꼬를 텄다. 역사와 이야기는 이런 방식으로 미디어를 바꿔가면서 자신을 세상에 드러냈다. 20세기 들어서면서 역사 서술의 미디어는 그 전과는 완전히 다른 시스템으로 재편되었다. 영화와 TV는 뛰어난 재현 능력과 스펙터클을 무기로 종이와 활자로부터 역사 서술의 권리 대부분을 이양 받았다. 혹자는 영화와 TV가 왜 역사를 기록하는 미디어인가라고 의문을 달 수 있을 것이다.
 

 이 의문은 텍스트에 지나치게 종속된 역사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헤로도토스 이전의 역사가는 호머였으며 그의 직업은 구술사였다. 몇몇 연구자들이 주장한대로 호머는 대명사라기보다는 구술사를 호칭하는 일반명사였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문자가 발명되기 이전에 과거의 기록을 전승하는 구술사, 호머는 사실 세계 도처에 존재했다. 그들로 인해 구술로 전승되는 역사가 후대로 이어진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이 방식은 유효하다. 마을의 역사는 할아버지와 촌장의 구술로 후대에 전승되었으며, 이야기(histoire)는 이 구술에 살이 붙어 텍스트로 옮겨졌다.

 

 역사는 인간 활동에 대한 기록이다. 역사를 거대담론으로만 파악하고 정치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본다면 역사를 전달하는 미디어로서 영화와 TV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좀 더 확장된 시선으로 역사 개념을 제고한다면 현대 사회에 영화와 TV만큼 역사를 생동감 있게 기록하는 매체는 찾아보기 힘들다. 몇 천 년을 이어오던 활자 문명은 점차로 시나브로 소멸될 것이며 이미지에게 그 자리를 내어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는 청동기 이전으로 역사 기록 방식이 회귀하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역사가는 자신의 책무에서 벗어날 수 없다.
 

 최대한 편견 없이 객관적으로 그리고 진실되게 기록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없다면 그가 쓴 역사는 무용지물이다. 그렇기에 목숨을 걸고 과거의 역사가는 자신의 신념을 지켰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역사 기록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지배적 매체인 영화와 TV에는 그전에 미디어들이 품었던 소명의식과 책무의식이 부재한다. 미디어는‘ 팩트’라는 신화를 빨아들여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일상마저 스펙터클화하여 삼켜버린다. 이 게걸스런 현대의 시·지각 위주의 미디어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역사마저 그저‘ 이용’할 뿐이다. 이제 젊은 세대는 멀게는 이순신과 광개토왕의 행적에서부터 가까이는 광주 민주화 항쟁에 이르기까지 텍스트가 아닌 TV와 영화를 통해 체험한다.
 

 자본주의만큼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이 되어버린 시각적 미디어와 여기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과연 어떠한 소명 의식을 가지고 있을까? TV와 영화를 통해서 역사를 배운 세대들에게 우리는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그걸 믿었어. 순진하게?”“, 그건 드라마일 뿐이잖아!”라고 이야기해봤자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이는 마치 조상의 구술을 통해서 왜곡된 역사를 배운 사람에게“ 그건 그냥 할아버지의 넋두리잖아.”라고 말하는 것과 같고 텍스트로 역사를 체험한 사람에게“ 그건 실재가 아니라 문자들의 나열이잖아.”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거의 모든 시각적 미디어는 스펙터클에 민감한 인류의 생물학적 특징을 최대한 이용할 뿐이다. 헤게모니를 쥔 TV와 영화는 자극적이면서 좀 더 현란한 방식으로 무한질주하고 있다. 속도를 늦추고 이미지를 감상할 시간을 주는 대신 자극을 줄 수 있는 방법에만 골몰한다면 결국 페드로 알모도바르 영화 제목처럼 우리는 근 미래에‘ 신경쇠약 에 걸리기 직전’에 직면할 것이다.
 

 지난 세기의 영화와 음악에는‘ 공간’이 존재했다. 음과 음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들로 인해 우리는 음악을‘ 감상’할 수 있었다. 또한 우리는 적당한 속도로 흐르는 화면에 감정을 이입하면서 영화 또한‘ 감상’할 수 있었다. 들뢰즈 식으로 말하자면 음과 음, 쇼트와 쇼트 사이에 존재하는 간격 속에‘ 시간’이 출현한 사태를 부지불식간에 체험했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여백이 가진 힘에서 시작된 우아한 정신적 운동의 결과들이다. 왕가위가 데뷔 후 십여 년 동안 속도에 매달리다가 21세기 들어서 <화양연화>를 통해 속도를 포기하고 정감의 세계로 들어선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였을 것이다. 점진적 가속으로 발생할 명약관화한 궤도이탈, 그리고‘ 감상’ 대신‘ 자극’의 전략, 책무의식과 윤리의식 대신‘ 이윤과 효율’의 이데올로기가 우리의 정신세계를 얼마나 빈곤하게 할 것인지 한 번쯤 숙고해 볼 시기이다.

 

 미디어를 견제할 수 있는 방법은 거울을 내부로 향하는 자기반영의 자세 이외에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서대정 교수 / 부산대학교 예술문화영상학과    서대정.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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