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함께 늙어가는 시대, 돌봄을 다시 묻다
영상기자의 방송대상·광고대상 수상기
MBC충북 김병수
다큐멘터리 이론의 창시자 존 그리어슨(John Grierson, 1898–1972)은 다큐멘터리를 ‘현실의 창조적 처리(creative treatment of actuality)’라고 정의했다. 이는 다큐멘터리가 현실을 단순히 반영하는 거울이 아니라, 현실을 선택적으로 구성하고 재현함으로써 사회적 담론을 생산하고 재구성하는 적극적 실천 매체임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다큐멘터리는 현실을 그대로 복제하는 기록물이 아니라, 제작자의 문제의식과 해석, 그리고 선택을 통해 현실을 새롭게 의미화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관점은 영상 기자로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온 나의 작업 방식과도 일맥상통하며, 현장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실을 어떻게 질문하고 재현할 것인가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의 출발점이 되어왔다.
기술이 사람을 대신할 수 있을까?
MBC충북 창사 54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AI 돌봄〉 은 이 질문에서 출발했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의 20%를 넘어선 초고령사회에서, 흔히 ‘사람을 대신하는 기술’로 이야기되는 AI가 실제 노인 돌봄 현장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현장에서 확인하고자 한 실험적 다큐멘터리였다. 이 작업은 AI 기술의 효율성이나 가능성을 입증하려는 시도가 아니었다. 오히려 AI 돌봄 인형과 함께 살아가는 어르신들의 일상,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서서히 변화하는 감정과 삶의 결을 밀도 있게 관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현장에서 마주한 것은 기술 그 자체의 성능 이 아니라, 말을 걸고 응답하며 교감하고 관계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의 삶이었다. 기술이 인간의 일상에 스며들었을 때 드러나는 미묘한 감정과 현실을 영상 기자의 시선으로 포착하고자 했다.
이러한 문제의식과 접근을 인정받아, ‘2025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방송대상’ 창의혁신 부문 우수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창의혁신 부문은 단순히 완성도가 높은 작품을 넘어, 기존의 형식과 관행을 넘어서는 도전과 실험을 통해 미디어의 지평을 확장한 프로그램에 주어지는 상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영상기자로서 이처럼 권위 있는 상을 수상하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도 매우 뜻깊은 경험이다. 방송 현장에서 웬만한 PD들도 받기 쉽지 않은 상이라는 점에서 더욱 무게감 있게 다가온다. 그러나 이번 수상은 개인의 성과라기보다, 영상 기자가 기획·연출·촬영·편집 전 과정을 책임지며 오랜 시간 축적해 온 실천적 역량이 하나의 결과로 인정받았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디지털 수눌음, ‘해녀 세이프 버디’
〈AI 돌봄〉 2부에서 다룬 제주 해녀들의 이야기는 다큐멘터리를 넘어 또 다른 실천으로 확장되었다. 생계를 위해 고령의 몸으로 바다에 나서야 하는 해녀들의 현실, 그리고 매 순간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노동의 시간은 돌봄이 개인이나 특정 공동체의 책임으로만 남겨져 온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 문제의식은 국내 유수의 광고업체와 함께한 공익 캠페인 ‘해녀 세이프 버디(Haenyeo Safe Buddy)’로 이어졌다. 해녀 세이프 버디는 고령의 해녀들을 돕기 위한 프로젝트로, 해녀들이 바다에서 동료들과 소통하기 위해 내는 수눌음을 디지털 신호로 전환해 위급 상황을 공유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는 기술을 통해 해녀 공동체의 전통적 돌봄과 연대 문화를 재구성한 사례로, 아날로그적 수눌음이 디지털 환경 속에서 새로운 공동체적 실천으로 확장된 사례이다.
이 캠페인은 ‘2025 대한민국광고대상’ 이노베이션 부문 금상을 수상했다. 방송 영역에서만 활동해 온 영상 기자가 광고 분야까지 작업을 확장해 성과를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도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AI 돌봄〉 다큐멘터리에서 출발한 질문과 문제의식이 공익 캠페인으로 이어지고, 다시 사회적 평가로 돌아왔다는 점에서 두 작업은 분리된 성과가 아니라 연속된 실천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이 모든 과정은 어느 한순간의 성취가 아니라, 오랜 시간 현장에서 쌓아 온 질문과 실천의 결과였다. 기획과 연출, 촬영과 편집, 그리고 현장을 해석하는 감각까지, 영상기자로서 축적해 온 모든 역량이 총동원되어 만들어진 값진 성과였다. 기술을 다뤘지만 그 중심에는 늘 사람이 있었고, 질문은 언제나 현장에서 시작됐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영상 기자의 역할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질문을 구성하고 메시지를 설계하는 주체로 확장되고 있다. 이번 작업이 영상기자가 촬영과 편집 뿐만 아니라 콘텐츠 기획과 연출 그리고 사회적 담론 형성의 핵심 주체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가 되었기를 바라며, 끝으로 늘 현장에서 함께 고민해 온 동료 영상기자 여러분께 깊은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