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는 건축이다
국회 의사당 기본설계
자리를 지킨 건축은 시대를 증언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하나의 기호다. 시간을 거슬러, 오늘도 사라지지 않고 유구히 존재한다. 건축물을 통해 인간은 과거를 기억하고 현 시점의 방향성을 얻는다. 만약 영상기자가 기록한 영상을 도심 대로변에 펼쳐 놓는다면 어떨까? 아마도 그것의 가치는 건축물이 지닌 가치와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기록된 영상은 과거를 들추어낸다. 또 과거의 기록을 통해서 우리는 현재를 반추하게 된다. 이는 건축물의 기능과 겹치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 오래된 건축물을 보는 일은 오래된 이미지를 보는 것과 비슷했다. 이미지를 다루는 직업을 가진 만큼 내 일에 대한 관심은 건축에 대한 관심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나는 이른바 건축물 덕후다. 따로 시간을 내지 않고도 일을 하면서 평소 보고 싶었던 건축물들의 안과 밖을 볼 수 있다는 직업적 이점이 나 같은 건물덕후(?)에게는 큰 행복이 아닐 수 없다. 현장 인근에 평소 보고 싶었던 건축물이 있다면 마음이 설렌다. 그런 날은 평소보다 더 일찍 나가곤 한다. 손혜원 의원의 목포 기자회견 때도 그랬다. 전국이 개발 광풍에 노출된 현대 대한민국에서 적산가옥 등 일제강점기 건축물들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점점 희소해지고 있다.
국회의사당 안
현재 출입처로 나가고 있는 국회 건물을 예로 들어 보자. 건축물이 구성원의 생각과 행동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 있었는데 국회 건물이 그런 경우가 아닐까, 싶다. 국회의원들의 권위적인 태도, 불통 이미지가 국회 본청 건물에 고스란히 반영된 것은 아닐까? 의사당 건물은 일상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다. 지하철이 생겼지만, 시민 접근성은 여전히 떨어진다. (차가 있어야 그나마 수월하다.) 정문 경찰, 경비의 풍경은 거리감을 강화하고 친숙한 느낌을 지운다. 미학적으로 볼 때 건물은 웅장할 뿐 겸손함이 없다. 돔 역시 아래 건물과 잘 어우러지지 않고 이질감을 증폭시킨다. 창문들은 건물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작아 마치 폐쇄성을 상징하는 듯하다. 이 폐쇄성은 내부 로텐더 홀 입구 쪽의 붉은 카펫과 화려한 바닥, 조명과 배치된다. 외부의 거리감, 폐쇄성을 고려할 때 내부는 너무 화려하고 지나치게 권위적이다.
건축물의 좋은 예로 안동에 있는 병산서원을 소개해 드리고 싶다. 2018년 당시 나는 민주당 경선 후보자였던 이재명 후보 취재 차 안동에 갔다. 짬이 나서 (평소 보고 싶었던) 병산서원에 들렀다. 굽이진 길을 따라 서원에 도착하니 소박한 느낌의 한옥이 몇 채 모여 있었는데 그 광경이 보는 이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서원은 널따란 강가와 산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강학 공간이었던 건물 중앙의 입교당에 앉아 (입구 역할을 하는) 만대루 쪽을 바라보면 봄이 오는 산천이 만대루의 기둥 사이사이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자연 그대로의 목재를 가져다 써 군데군데 삐뚤지만 조화로운 느낌이 운치를 더한다. 자연을 벗 삼아 만대루 마룻바닥에 앉아 책을 편 옛 선비들의 모습이 떠오르는 듯한 기분마저 느낄 수 있다. 50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건축물이 현대인에게 감격을 선사한다.
병산서원
아무 기대 없이 현장에 갔다가 우연히 건축물에 감동을 받기도 한다. 나는 2012년, 부동산 담당 기자와 함께 서울 강동구에 있는 고덕 주공아파트를 찾은 적이 있다. ‘아파트값 낙폭 2년 만에 최대’ 라는 꼭지를 할 때다. 아파트를 몇 커트 찍고, 부감을 찍으러 올라갔다가 그만 내려다보이는 풍경에 매료됐다. 나도 모르게 꽤 한참 거기 서서 그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오전 내내 비가 내리다 마침 그친 시점. 녹지 비율이 높은 아파트 단지 내 거대한 순록의 나무들이 늦여름의 정취를 뽐내고 있었다. 낡았지만, 시간의 흐름이 켜켜이 박혀 마치 주름살인 듯 콘크리트 건물이 살아있는 생명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일으켰다. 비 갠 후 햇살이 비쳐들고 그 아래 뛰어노는 아이들과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40년 된 아파트의 조화. 권위주의 시대에 탄생한 성냥갑 아파트 단지에도 나무가 우거지고 사람들과 어우러지며 40년을 함께 한 이상 모습은 그 나름의 삶과 멋이 있었다.
고덕 주공3단지 아파트 전경
흔히 건축물의 가치는 장소성, 합목적성, 시대성 등 3요소로 평가한다. 합목적성을 가진 영상, 권력에 의해 난도질당하지 않은 기자 본연의 영상구성이 필요하다. 제 장소에 잘 지어진 건축물처럼 시대를 상징하고 보전 가치를 지닌 영상을 고민해야 한다. 건축의 목적은 결국 사람들이 안락하고 아름다운 삶을 영위하는 공간 축조에 있다. 영상기자가 생산한 영상 역시 사람에 초점을 맞추고 좀 더 나은 삶, 사람 냄새 나는 영상을 향해 가야 한다.
나는 오늘도 길가는 곳마다 때론 소박한, 혹은 웅장한 건축물들을 본다. 내게 주어진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의지를 바로잡는다.
배병민 / MB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