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 추적, 그 위험한 줄타기
“검은색 승용차가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열 대가 넘는 차량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 차를 따라붙는다.
시속 100km가 넘으면서도 수시로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경쟁적으로 검은 차에 필사적으로 렌즈를 갖다 댄다.”
이것은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지난 3월 11일, 천안 논산 간 고속도로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이날은 전두환 씨가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광주지방법원에 재판을 받으러 오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새벽부터 연희동 사저의 취재 열기는 극에 달했다. 서울에서 광주까지 그를 따라가며 취재할 이른바 ‘추격조’는 어떤 위치에 있어야 전두환 씨의 차를 쉽게 따라붙을 수 있을지 위치와 간격, 경로 등에 대해 논의했다.
카메라 기자라면 이런 추격 임무가 낯설지 않다. 15년 차인 내 기억에도 전임 대통령의 신상에 주요한 변화가 생겼을 때 거의 예외 없이 추격조가 편성됐다. 언제부터인지 이런 도로 위 차량(혹은 오토바이) 팔로우가 매우 당연하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지금은 일반적으로 그 위험성에 대해 걱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해야만 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카메라 기자의 안전 문제(때로 이것은 생명이 걸린 문제이다), 취재 윤리, 법 위반 등의 문제들은 뒷전으로 밀렸다.
이날 내 취재 차량은 타사 차량에 추돌을 당했다. 당시 상황을 간단히 복기해 보면, 내가 탄 차량은 연희동을 나와 강변북로, 경부고속도로를 연이어 달렸다. 그리고 천안 - 논산 간 고속도로를 거쳐 광주에 도착했다. 도로 위 팔로우 경쟁은 연희동을 떠나는 순간부터 불붙었다. 지상파, 케이블, 종편, 신문사에 이르기까지 10대가 넘는 차량들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 위험한 질주를 벌였다. 전두환 씨의 차량 역시 취재진 차량을 피해 거침없이 달렸다. 중간에 잠시 휴게소에서 머무르려고 하다 포기하고 다시 백수십 킬로의 시속으로 곧장 달아나기도 했다.
사달은 광주 시내에서 일어났다. 법원 근처 사거리에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며 멈춰 있는데 뒤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나며 추돌이 벌어졌다. 탑승자 전원이 매우 강한 충격을 느꼈다. 문제는, 그런 사고 상황에서도 한가롭게 차를 세우고 사고 수습을 할 형편이 못됐다는 데 있다. 협회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 순간 우리 중 누가 한가롭게 사고 수습을 하고 있을까? 전 씨의 법원 출두 현장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한 다음에야 추돌 가해자, 피해자 양측이 만났다.
그날의 피해자는 우리 차량이었지만, 우리 모두는 언제든 가해자가 될 위험을 안고 있다. 현재까지 사고가 나지 않았다고 해도 그것은 운이 좋았을 뿐이고 사실은 도로 위 위험한 질주를 해야 하는 한 우리 모두가 잠재적 가해자들이다. 서글픈 일이다.
나중에 차를 세우고 보니 우리 차에서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다. 수십여 차례 브레이크를 밟아 패드가 타 버린 것이다. 실제로 광주에 도착할 무렵 제동하려고 할 때 차가 밀리는 현상이 지속됐다.
차량 추적에는 사고 위험이 상존한다. 선루프를 열고 상반신을 밖으로 내고 찍을 때 혹여나 브레이크를 밟거나 요철 구간에서 차량이 흔들리면 허리에 강한 충격을 직접 받는다. 규정 속도를 무시한 질주 경쟁은 어느 누가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될지 예측할 수 없게 만든다. 실제로 사고는 이제껏 빈번하게 일어났다. 우리 회사 내에서만 해도 차량 추적으로 인한 사고가 이미 두 차례 있었다. 사고를 당한 후배 기자들은 입원을 했다. 후유증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무엇보다, 모두가 간과하는 한 가지가 있다. 이런 추격전에서 가장 극도로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한 사람, 바로 운전기사다. 우리가 흔히‘ 형님’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자기 일이란 이유 때문에 위험한 곡예 운전을 하고 있다.(거의 강제에 가깝게.) 취재 차량들의 선두 경쟁 질주 속에서 급제동, 급가속이 수시로 일어난다. 영상기자가 좋은 앵글을 잡고, 돌발상황을 포착하는 데 충실한 조력자가 되려 이들이 싫든 좋든 과격한 방식의 운전을 하고 있다.
영상취재 자체가 우리 일이고 우리 중 누구도 어느 현장, 어느 상황에서든 일을 소홀히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위험한 차량 추적, 도로 위 팔로윙을 사명감이나 의무감만을 이야기하는 일은 이쯤에서 재검토 되어야 한다. 이는 너무나 무책임하며 비도덕적이다.
이번 전 씨 차량 팔로윙 과정에서 내가 탄 차량의 추돌 사고가 각사에서 꽤 언급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날이 갈수록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있고 점점 더 취재 환경이 열악해지고 있지만 목숨을 건 외줄타기는 멈춰져야 한다. 사람이 하나 불구가 되거나 죽어야 멈추겠는가? 적어도 우리 협회원사들만이라도 도로 위 불법 추적 취재는 금지하자는 공감대가 필요하다. 언론사 차량의 사고가 일반시민 차량의 2차, 혹은 3차 피해를 부를 수도 있다. 언론사에 있어 돌이킬 수 없는 오점을 남길 수도 있는 일이다.
이런 위험천만한 취재 방식은 하루 빨리 중단되어야 한다. 이에 대한 각사의 논의와 합의가 절실하다. 협회원들의 중지, 과감한 결단을 제안 드린다.
양두원 / 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