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년 만에 광주를 찾은 전두환
아침 일찍 눈이 저절로 떠졌다. 3월 11일. 전두환 씨가 광주 법정에 서는 날. 기자 생활 14년 동안 수없이 자료화면을 통해 보고 편집하며 만나온 그의 ‘실물’을 직접 취재한다는 사실이 묘한 긴장감과 설렘을 주었다.
오후 2시에 시작되는 재판이지만, 오전 일찌감치 광주법원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광주법원은 이미 경찰들과 전 씨의 사과를 요구하는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스마트폰 생중계 소리들이 뒤엉켜 귀가 따가웠다.
오후 12시가 막 넘었을 무렵, 전 씨가 탄 차가 광주 IC를 지나 10분 후면 광주법원에 도착한다는 소식이 왔다. 현장엔 긴장감이 감돌았다.
곧 검은색 에쿠스 리무진 차량이 광주지방법원 법정동 후문에 도착했다. 차량이 보이는 순간부터 나는 뷰파인더에 시선을 고정하고 그의 동선을 따라 팔로우 했다. 인파에 둘러싸인 차량 문이 열리고 드디어 전두환 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십 대의 카메라가 그를 비추고, 취재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공간과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압력과 긴장감이 최고조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소음들 속에서 처음으로 들어보는 전 씨의 음성이 이어폰을 통해 내 귀에 생생하게 전달됐다.
“이거 왜 이래?”
짜증 섞인 그 한 마디. 그는 그 말 한 토막을 남기고 법정동으로 다급히 들어가 버렸다. 시민들의 외침, 울부짖는 소리가 내 가슴 한 구석을 무너뜨렸다. 나는 평정심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법정 내부에서 방청객들이 하나 둘 나왔다. 그들은 밖에서 기다리던 시민들에게 재판 분위기를 전했다. 일관되게 검찰의 공소사실을 부인한 전 씨 측의 대응이 전해지자, 시민들 사이에서는 일제히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 자리에서 분노가 들끓기 시작했다. 잠시 후 전 씨가 타고 온 차량에 시동이 걸리자, 주변에 있던 시민들이 차량으로 움직였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나는 전 씨 차량을 따라 법정동 정문 쪽으로 향했다. 정문 주변은 이미 경찰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 경찰들 뒤로 분노한 시민들이 가득 모여들었다. 거대한 그물망을 친 듯한 풍경.
법정동 정문에 전두환, 이순자의 모습이 나타나 자, 시민들은 울부짖는 목소리로 외쳐댔다.
“전두환 살인마!”
“전두환을 처벌하라!”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시민들은 전 씨가 탄 차량에 물병을 던지고 몸으로 차량의 앞을 막아섰다. 꽤 한참 동안 격렬한 대치가 이어졌다. 나의 뷰파인더 안에서 시민들이 탄식하고 울부짖고 있었다. 표정들을 담는데 정신이 없었다.
30분 정도가 흐른 뒤에야 전 씨의 차량은 법원 밖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제서야 나 역시 뷰파인더에 묻었던 눈길을 거두었다. 허탈감이 밀려왔다. 그 허탈감은 나 자신을 넘어 그 공간 전체를 배회했다.
39년 만에 이뤄진 전두환의 광주 방문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이번에는 사과를 하지 않을까?’ 일말의 기대를 걸어온 광주시민들의 가슴에는 다시 대못을 박혔다.
역사는 한 시대가 저문 뒤에도 여전히 마감되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역사의 매듭은 언제나 그렇듯 단지 피해자만이 아니라 그 사회 전체가 매달리고 해결하려 할 때 풀릴 것이다. 그날이 속히 오길 희망한다.
이정현 / 광주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