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출장, 베트남 2차 북미정상회담’
▶ 할롱베이 크루즈 투어 나서기 직전 크르주 안에서 건배를 제의하는 북한 리수 용 노동당부위원장.
▶ 할롱베이 투어를 떠나는 북측고위급대표단. 북측대표단이 할롱베이를 찾았다는 것 은 북한이 관광산업단지를 육성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2월 27일 베트남 하노이 오전 6시, 상쾌한 아침이었다. 취재장비를 차에 싣고 하노이에서 할롱베이 어딘가로 향하는 이른 일정. 마음이 가볍고 육신이 소생하는 기분이었다. ‘중년이 되니 아침잠이 없어졌나. 이른 일정인데 기분이 꽤나 상쾌하군...’ 물론 이런 건 아니다.
2월 24일 베트남으로 출발. 하지만 실상은 ‘김정은 위원장 숙소’와 ‘미국 협상단 숙소’ 앞 길바닥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뻗치기.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쌀국수 - 라이브 - 쌀국수 - 몸싸움 쌀국수, 이런 과정의 반복이었다. 베트남 입국 며칠 만에 삭신이 쑤셔왔다. 아침 일찍 할롱베이로 향하는 차 안에서 잠시 밤의 휴식을 생각하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추운 겨울날 뜨끈한 욕탕에 들어갈 때의 기분? 다시 잠들 시간을 떠올리며 하루 하루를 버틴 것.
베트남 하노이에서‘ 제2차 북미정상회담’ 공식 일정이 시작되는 첫날 오전. 김정은 위원장과 북한 대표단 시찰단의 일정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SBS 현지 출장팀들은 위원장과 시찰단 일정 파악에 애를 먹었다. 베트남 내 한인 기업인과 대사관 등을 취재한 결과 이들이 하이퐁 경제단지와 관광지인 할롱베이를 찾을 가능성이 높았다.
취재단은 일단 차로 3시간 거리에 있는 할롱베이로 무작정 출발했다. 할롱베이 내에 대기하고 있다가 정보가 입수되면 붙겠다는 계획으로.
오전 8시 30분쯤(한국시간 오전 10시 30분), 취재진 일행은 할롱베이 진입 직전이었다. 마침 고속도로 뒤편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짧은 차량 행렬이 사이렌을 울리며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왔구나!’
차량들은 순식간에 우리 팀 취재차량을 앞질러 경주마처럼 빠르게 질주했다.
“붙어!”
우리 차량도 그들 꽁무니에 붙어 내달리기 시작했다. 놓칠 듯 말 듯 그들의 꽁무니에 붙은 채로 가까스로 선착장까지 다다랐다. 멀리 정면으로 북한 관계자들이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차 안에서 레코딩 버튼을 누르고, 차 문을 열고, 달렸다. 곧바로 환영인파와 북측 촬영단, 주관방송인 베트남 VTB, 지역 사진기자들이 엉켜 붙었다. 인터내셔날 몸싸움이 벌어지는 현장이었다. 우린 북측 대표단에 바짝 붙었다. 선두에 선 리수용 노동당 부위원장 얼굴 앞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뒷걸음질 치는데 옆구리에 ‘악’ 하는 통증이 느껴졌다. 갈비뼈 사이로 뭔가 훅 하고 두툼한 통증이 파고들었다. 북측 영상기자가 복부를 가격한 것이었다. 북측 영사기자의 엘보우 킥이 지속적으로 날아들었다.
“저리 가라우!” (엘보우 킥을 날리며)
“아씨... 저리 좀 가라니까!”(다시 엘보우 킥.)
단잠으로 회복된 내 소중한 생명에너지가 북측 영상기자의 엘보우 킥으로 소실되고 있었다.
팔로우는 할롱베이 관광용 크루즈 입구를 지나 크루즈 안까지 계속되었다. 리수용 노동당 부위원장이 현지 관계자들과 대화하고 건배하는 모습을 담는 중에도 북측 영상기자의 엘보우 킥은 쉬지 않고 날아왔다. 타격 부위가 정확하고 강도가 매번 같아 북한 특수부대 출신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아, 영상기자의 고통이여!
북측 대표단은 베트남 선상 근무원들에게 남측 취재진 퇴선을 요구했다. 그 순간에도 나는 엘보우 킥을 맞고 있었다. 마침내 선내에서 쫓겨나는데 현송월 삼지연 관현악단 단장 모습이 눈에 띄었다. 카메라를 밑으로 내렸다. 동시에 베트남 선상 근무원에게 짧은 영어를 내뱉었다.
“Wait, please. Just a moment. Can you speak English?”
물론 내 영어는 미끼이고 카메라에는 현송월 단장의 얼굴이 담기고 있었다. 배에서 쫓겨나자마자, 티브이 유로 영상을 송출했다. 중간 중간 촬영 원본이 한 번씩 출렁거린다. 27일은 모든 방송국에서 특보 방송을 내보냈지만 당시 방송시간대에는 아직 딱히 새로운 정보, 새로운 영상이 들어오지 않던 상황이었다. 이 와중에 건진 소중한 단독 영상이었다. SBS만이 새롭게 입수한 영상을 내보냈다.
하노이에선 영상기자들이 하루 종일 길바닥에서 라이브 연결 등으로 힘든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그만큼 부족한 인력을 짜내 내가 할롱베이로 급파된 것이었다. 그래서 더 부담이 있었는데 다행히도 단독 영상까지 포착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가? 현명한 결단을 내리고 하노이 상황을 막아 준 동료들과 그리고 무엇보다 북한산 엘보우 킥에 버틴 나의 튼튼한 갈비뼈에 단독 영상의 영광을 돌리고 싶다.
하노이로 돌아온 늦은 밤. 숙소에서 동료들과 회포를 풀었다.
“내가 수원 사람인데 이참에 수원 왕갈비 가게나 차려볼까?”
베트남에서 정상회담 취재로 노고 많으셨던 모든 영상기자 여러분, 수고하 셨습니다.
설치환 / 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