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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회담, 그 기억의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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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양국 정상의 잠자리
 

 북미 2차 정상회담이 예정되었던 날짜보다 2주가량 이르게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시작한 취재는 정상들의 유력 숙소지, 회담 장소 등이었다. 멜리아, jw메리어트, 메트로폴 하노이, 인터콘티넨털 레이크사이드, 크라운 플라자, 팬 퍼시픽 등 전부 나열하기도 벅찬 이 호텔들 모두 하노이 내에 위치해 있다. 서울에 있는 호텔들도 제대로 본 적이 없는데 북미 정상이 묵을 수도 있는 이 호텔들을 전부 뒤졌다.

 

 국내 다수 언론들의 동선이 대부분 겹쳤다. 국내에서 두 정상의 유력 숙소 후보지를 기계적으로 보도했기 때문이다. “이곳이 김정은 위원장의 숙소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곳이 트럼프 대통령의 숙소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국가 컨벤션 센터(NCC)는 유력 회담장이라는 이유로 야외스튜디오 섭외 장소 1순위가 되었다 - 하지만 NCC에서는 끝내 회담이 열리지 않았다. 영빈관, 북한대사관 등도 취재진들로 붐볐다. 소형캠 혹은 몰카를 든 취재진들은 호텔들 로비나 국가 컨벤션 센터 등에서 너무나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궁금증이나 취재 열기와 정반대로 양국 정상의 숙소에 관한 어떠한 내부 정보도 나오지 않았다. 회담 며칠 전까지 회담장 유력지 보도만이 난무할 뿐이었다. 하노이로 지정되기 전에는 다낭이 유력하다며 (오보 아닌) 오보를 쏟아내고 유력 호텔 앞에는 어김없이 라이브 연결이 전파를 탔다.

 

 회담의 예상 논제, 협상 성사 가능성 등 주요 내용들은 소홀히 다뤄졌다. 그 빈자리를 보여주기식 흥미 위주 소식이 채웠다. 수많은 호텔 중계엔 대부분 팩트란 게 결여되어 있고 단순한 추측, 재미 추구형 만담 등만 나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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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방송사가 관심을 보이므로

 ※ 이목을 끌기 위한 흥미 위주의 내용
 

 협상의 결실이 없이 북미 정상이 결별한 것 이상으로 우리의 보도 역시 어떤 결실조차 보여주지 못했다.
 

동당역과 국영방송사 그리고 공안

 

 김정은 위원장이 비행기를 타고 오느냐, 아님 할아버지인 김일성처럼 기차를 타고 오느냐 하는 것도 언론의 주요 관심사였다.

 

 기존 싱가포르 북미 1차 회담 때 이용했던 비행기가 아닌 기차를 타고 중국 내륙을 지나서 베트남으로 오는 건 북한이나 베트남에 모두 의미있는 일이었다. 55년 만에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베트남을 방문하는 기념비적인 이벤트이자 과거 김일성 주석과 호찌민 주석의 우정을 복원하는 의미까지.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이 이용했던 열차를 타고 김정은 위원장이 온다면 과거를 재현하며 선대의 우정을 다시금 양국이 되새길 기회가 될 터였다.

 

 “김정은 위원장이 기차 타고 온다는데, 근데 동당역이라고 중국과 베트남 국경지에 있는 그 역까지만 타고 온대”.
 

 동당역은 하노이에서 차량으로 3시간 30분에서 4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그럼 1박 2일로 다녀와야 할 것 같은데?”

 

 한국에서 베트남 하노이까지 출장을 왔는데 베트남에서 또다시 출장을 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하노이에서 동당역까지는 거리상 170km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도로 상황이 열악한 데다, 대부분이 (편하고 시야 확보가 용이한) 직선도로가 아니기 때문에 만만하지 않은 일정이었다.

 

 4시간 걸려 도착한 동당역 앞은 이미 각국 취재진으로 장사진을 이뤘고 트라이포드 놓기 쉽지 않은 상태였다. 김정은 위원장이 기차에서 내려 나올 입구는 하나였다. 곧 모습을 드러낼 김 위원장의 예상 가능한 동선을 두고 자리 다툼이 치열했다. 촬영상 가장 좋은 자리 앞에 1차로 옹기종기 취재진이 모여 있었고, 그 자리를 놓친 언론사들이 바로 그 뒤에, 그 다음은 다시 그 뒤에 자리를 잡았다. 취재 대기 행렬이 3열, 4열 계속 두터워지고 자리가 뒤로 밀릴수록 트라이포드와 간이 사다리 높이가 점점 높이 올라가야 했다. 촬영 장비를 두고 부러움 어린 말도 오갔다.
 

 “이런 건 어디서 구했어? 나도 준비해 올 걸.”

 국내 취재는 영상기자, 사진기자 공히 인정하는 현장의 룰이 적용된다. 누가 좀 더 일찍 와서 자리 잡으면 그 노력을 인정하고, 늦는 경우 좀 더 높은 위치에 설 수 있는 장비를 가지고 온다. 각사 취재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경쟁하고 또 인정하는 문화가 있다. 베트남에서는 이러한 문화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베트남 국영방송인 VTV 관계자는 취재진이 모여 있는 자리 뒤쪽으로 높은 단상을 세웠다.

 

 “저기 자리를 잡으면 앞에 자리 잡은 취재진 때문에 밑에는 안 보일 텐데?”
 

 다들 의아함 섞인 우려를 표시했다. 하지만 그건 단지 국내 취재진의 순수한 우려에 불과했음이 곧 드러났다. VTV의 높은 단상이 설치된 직후 베트남 공안이 나타나더니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손짓 발짓(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어렵지 않게 알아들었다)으로 자리를 재조정했다. 애써 잡힌 취재 대오가 일거에 뒤로 밀렸다. 베트남 공안의 정리는 그야말로 막무가내였다. 미리 잡은 자리가 속절없이 엉키고 포토라인이 VTV 단상에 맞춰서 그어졌다. 우리 입장에서야 울분을 토할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곳은 사회주의 국가 베트남이니!
 

트럼프 차량 행렬과 재밍

 

 “아…. 중요할 때 또 깨지네”

 부조와 통화하기 위해 끼워둔 이어폰에서 탄식이 들려왔다. 트럼프 대통령 숙소 앞에서 여러 번 들었던 소리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두 정상이 숙소에서 회담장으로 떠나기 전 숙소 앞 풍경, 그리고 회담장 풍경은 둘 다 실시간으로 전달을 해야 할 대상이었다. 하지만 두 곳의 환경이 많이 달라 취재진은 애를 먹었다.

 

 그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 차량과 가까운 거리에서 이동하는 ‘재밍 차량’ 때문. 재밍 차량? 생소한 단어다. 이 차량은 대통령이 탄 차량에 위협을 가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VIP가 탄 차량과 함께 움직이며 원격으로 주변 전파를 방해한다. MNG 장 비로 실시간 라이브를 하게 되면 이 차량의 방해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재밍 차량이 등장하게 되면 그 이전과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자 지금 트럼프 숙소 앞으로 해서 라이브 물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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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조의 요청에 흔쾌히 응답하고 꽤 긴 시간 동안 분주히 움직이는 경호원들과 참모들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전달한다. 그러다 트럼프 차량을 맞이하기 직전 부조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어어 화면이 깨지네요.”

 “네? 왜 그러죠?”

 “직전까지 문제없었는데. 아, 저거 재밍 차량 때문인가, 다른 방송사도 똑같군요.”

 

 갑작스러운 화면 깨진다는 이야기에 당황했지만, 모든 것이 재밍 차량 때문임을 알게 됐다.

 

 “저 차가 지나가면 MNG 속도가 확 떨어지거나 속도가 아예 0으로 바뀌네!”

 

 재밍 차량 덕분에 중요한 순간에 몇 번이나 깨지는 화면이 전송됐다. ‘한국이었으면 VIP가 지나갈 때 재밍 차량이 뻔히 있는데 이렇게 MNG로 라이브 할 생각을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북미 2차 회담은 아무 결실도 없이 끝이 났다. 하지만 이번 회담으로 북미 회담이 끝난 것은 아니다. 또 다른 회담들이 열릴 날짜만을 기다리고 있다. 언제 어디에서 회담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바로 그 자리에 반드시 영상 기자들이 있으리란 점이다. 실패든 성공이든 이런 경험들을 토대로, 좀 더 나은 영상 뉴스를 시청자들께 전달해드리고자 하는 바람, 또 그런 마음이다.

 

 

전범수 / MBN    noname0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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