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산불 그 후
▲ 불에 타 무너져 내린 집을 떠나지 못한 피해주민이 망연자실하고 있다(사진).
▲ 그을린 나무와 잿더미를 뚫고 대나무 죽순이 다시 자라나고 있다(사진).
산림 2천832ha를 잿더미로 만들고, 1천289명의 보금자리를 앗아간 동해안 산불.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에게도 악몽 같은 하루였는데 이재민들과 피해 주민들의 마음은 어떨까?
무너져 내린 삶의 터전에 현재도 복구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자연이 스스로 치유하기를 포기하지 않듯 사람들은 산림을 복원시키고 무너진 집을 일으켜 세우는 노력에 매진하고 있다. 전국에서 성금이 모이고, 자원봉사자는 1만 3천여 명이나 됐다. 관광이 곧 자원봉사라는 지역민들의 외침에 관광객들이 다시 이 지역을 찾고 있다. 고무적인 광경이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동해안 산불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친정아버지께 물려받은 집이 잿더미로 변한 모습을 보며 울고 계셨던 어머니, 옷이며 신발이며 맨발로 뛰쳐나와 목숨은 부지했는데 라면하고 물은 이제 물려 그만 드시고 싶다는 할아버지, 틀니를 집에 두고 나와서 그나마 지원되는 라면도 드실 수가 없는 할머니. 이분들은 여전히 고통 속에서 미래가 불투명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출하를 앞둔 물건들이 전부 다 타 버렸고, 영업장은 물론 거래처까지 잃은 상인들과 외상장부가 다 타버린 도매업자, 횟집 수족관에 있던 대게가 전부 쪄진 상태로 바닥에 나 뒹굴던 모습. 그러한 단상들이 이전의 평화로웠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여전히 험난한 난관과 고비를 넘겨야 할 것 같다.
이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더해졌다. 아직 피해 원인과 보상에 대한 결론이 나오지 않은 것이다. 가족사진 하나 찾으려 타버린 집기를 뒤지던 피해주민들에게 일단은 치우고 보자는 식의 무심한 행정이 지속되고 있다. 물적 지원도 문제가 많다. 터전을 잃은 이재민의 슬픔은 모두 같고 그 끝을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작은 집을 잃으신 할머니와 수십억의 영업장을 잃으신 상인, 반파된 집이라 복구지원도 되지 않는 아버님 모두 같은 지원금이 통장에 들어온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긴 한데 물적 지원에 온도차도 존재한다. 복구도 해주고 집도 마련해주고 돈도 줘서 우리나라 좋다는 할머니가 있지만, 정확한 원인규명과 약속 없이는 안 된다며 무너진 집을 걷어내려는 포크레인을 막으며 한숨을 토하는 어르신도 있다. 길거리로 나와 속초 한전 지사 앞에 비상대책위를 차려 매일같이 외치는 사람들도 있다. 명암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화재가 있었던 곳은 이전의 금수강산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어졌다. 마치 삭막한 흑백사진을 보는 듯하다. 코끝에 전해져 오는 재 냄새가 아직도 진동한다. 다 타버린 산림을 보고 있노라면 남대문이 타들어갈 때 느꼈던 울컥함과 비통한 감정이 재현된다. 2017년 강릉 대형 산불의 복구도 여전히 완결되지 않았는데 2019년 산불로 재가 된 산림은 언제쯤 제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
산불 피해자들에게 지금 가장 절실한 것은 조속한 보상과 원인 규명이다. 그리고 책임있는 결론이다. 그래야 미래에 대한 설계가 가능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당국자들의 굳은 약속도 필요하다. 반드시 국가가 책임진다는 것, 국가가 마지막까지 애정의 손길을 놓지 않으리라는 것.
그을린 나무와 잿더미를 뚫고 대나무 죽순이 다시 자라나고 있는 것처럼 화마의 아픔을 뚫고 다시 새 희망이 싹트기를 기대한다.
두터운 잿더미를 뚫고 새 순이 나오고 있다. 미약하기는 하나 초록이 다시 산을 물들이고 있다. 다시 찾아본 마을에 이장은 ‘그래도 살아야지’ 라며 삽을 들었다. 희망의 싹트고 있다. 정부 대책 역시 그러한 봄에 동참하기를 바란다.
홍성백 / G1강원민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