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고향 속초, 이재민들의 여름 나기
▲ 일부 이재민들이 에어컨 고장으로 선풍기에만 의존해서 여름 나기 하고 있다<사진>.
▲ 이재민들을 위해 조립식 임시 주택이 마련되어 있다<사진>.
강원도 속초는 나의 ‘두 번째 고향’이다. 지역 순환근무 때문에 2년 동안 속초에 살면서 인연을 맺었다. 퇴근 후에 집 앞 영랑호를 산책하는 것은 당시 내게 커다란 행복이었다. 그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지난 4월 속초와 고성에 산불이 발생했다. 그곳 지리를 잘 알기 때문에 가장 먼저 현장에 투입되었다. 그리고 3일 간 속초와 고성을 오가는 취재를 하게 됐다. 속초 요금소를 통과하자마자 마주한 모습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불덩이들과 활활 타고 있는 ‘우리 동네’였다. 그 느낌은 실로 참담했다. 불은 하루 만에 꺼졌지만 산은 까맣게 타고 집들이 전소되어 적지 않은 상처를 남겼다. 집을 잃은 이재민들을 취재하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아픔을 느껴야 했다.
넉 달이 지나고, 8월의 서울은 폭염이 한창이었다. 나는 다시 속초와 고성으로 가게 됐다. 산불로 집을 잃고 더위와 싸우고 있는 이재민들을 카메라에 담아야 했다. 나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어쩌면 의식적으로 더 잊고 싶었던 기억이기도 했다. 속초, 고성 등지의 집 잃은 이재민들이 임대아파트나 인근 연수원에서 지내고 있다는 정도의 소식은 이미 들었던 터였다. 그 이상의 정보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들이 더위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원래 살던 집은 복구했는지 등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다.
속초의 장천마을. 그곳은 속초에서 지낼 때 내가 살던 곳 바로 옆 동네다. 원래 집이 있었던 자리는 공터로 변해 있었다. 그 공터가 터를 닦는 공사 작업 중이었다. 근처 50미터 거리에 주민 41명이 거주하는 조립식 임시주택 20채가 마련되어 있었다. 말은 임시주택이지만 사실상 컨테이너 박스 안에 상하수도 설비와 기본 가전만 갖춰진 곳이었다. 당일 열화상 카메라 상 외부 온도는 63도였다. 말 그대로 ‘찜통’이어서 에어컨이 없다면 생존하기 힘든 환경이었다. 전기 요금을 감면받고 있는 상태이지만, 감면 기간이 지나면 전기요금 마저 걱정해야 하는 처지였다. 실제로 한 이재민은 에어컨이 고장 나 선풍기에 의지해 더위와 싸우고 있었다. 고성 용촌마을 조립식 임시주택도 사정은 비슷했다.
이재민들의 표정은 생각보다 덤덤했다. 낮에는 일을 하러 나가고, 저녁엔 집집마다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고 TV를 봤다. 하지만 오히려 열악한 상황에 적응해버린 그들의 모습이 더 안타깝게 느껴졌다. 제2의 고향 속초. 바로 옆 동네 사람들의 힘겨운 여름 나기를 보며 ‘나도 어쩌면 집을 잃었을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불 이후 몇 달 동안 무관심했던 내 모습을 반성했다.
르포르타주 성격의 리포트를 만들고 MNG 라이브 연결을 하는 것이 당일 내 일이었다. 라이브 연결은 포인트가 문제였다. 조립식 주택 밖에서만 할 것인지. 아니면 동선을 조립식 주택 안으로까지 이을 것인지. 조립식 주택 안으로 들어가는 동선은 영상적으로 보면 더 나은 것이지만 여러 가지가 걸린다. 촬영 시 통제해야 할 것들이 늘어나고 그만큼 라이브를 하기엔 부담스럽다. 사적 공간을 라이브로 연결한다는 것도 영 맘에 걸렸다. 이재민의 어려움을 보여주려는 의도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최선인지 쉽게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결국 거주 중인 이재민 분의 허락을 구하고 밖에서 집 안으로 들어가는 씬으로 최종 결정이 됐다. 방송 때문에 해당 주택에 거주 중인 이재민은 그날 꽤 긴 시간 동안 협조를 해 주어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새삼 심심한 감사와 위로를 전해야 할 것 같다.
대략 1500여 명의 이재민이 아직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산불 피해 관련 추가경정예산이 통과되었지만, 복구 비용이 부족해 다시 집을 짓기 어려운 이재민도 있다. 한국전력과의 손해 사정, 피해 보상 문제도 여전히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다.
내 두 번째 고향 속초. 실질적인 지원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재민들은 하루 빨리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아침, 저녁으로 가을 냄새가 나는 요즘 그곳 이재민들의 삶이 걱정스럽다. 올 겨울 쯤엔 그들이 따뜻이 한 해를 마감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권준용 /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