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성벽이 준 교훈
튀어나오고, 깨지고... 전주 풍남문 ‘안전 우려’
전주 풍남문 일부 성벽이 돌출됐다는 제보가 있었고 현장에 가 보았다. 성벽은 접근을 차단하기 위한 구조물에 가려져 있었다. 시 관계자의 도움을 받아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튀어나온 성벽이 육안으로도 확인이 될 정도였다. 무게를 견디지 못한 돌이 쪼개져 손이 들어갈 정도 틈이 생긴 데도 있었다. 성벽은 그야말로 제대로 관리받지 못한 상태였다. 무엇보다 시민들의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30cm 플라스틱 자를 가져와 튀어나온 길이를 측정했고, 손을 흔들거나 손가락을 대보기도 했다. 드론을 띄워 가림막이 설치된 성벽의 전경을 담았다. 이렇게 풍남문 성벽 돌출 기사를 내보냈다.
뉴스가 나간 다음 날 선배가 찾아왔다. ‘어제 리포트에서 클로즈업 샷이 부족했다. 타사 리포트는 봤는가?’ 하는 이야기였다. 선배가 말한 타사 리포트에는 성벽 클로즈업이 11컷이 사용된 반면 내 리포트엔 3컷이 전부. 물론 단순히 클로즈업이 정답이란 이야기는 아니다. 어떤 현장에 갔을 때 그날 핵심 주제를 화면으로 표현하는 데 있어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 또 한번 느껴야 했다.
“소리와 자막 가리고 영상만으로도 이해가 돼야 한다.”
영상기자들이 금과옥조처럼 가슴에 품고 있는 말이 아닌가. 그 말을 실천하고자 현장에서 최선을 다한다. 문제는 현장을 떠나고 리포트를 제작하고 나면 찾아온다는 것. 왜 난 그걸 생각하지 못했지? 나 자신을 책망하게 된다. 누군가 소리는 없이 화면만으로 내 리포트를 봤다면? ‘그래서 풍남문에 뭐가 문제라는 건가’ 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날 이후로 머릿속이 복잡했고 자신감이 떨어졌다.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취재 현장에 서는 것이 다시 두려춰졌다. 단순히 리포트 잘 만들고 못 만드는 문제가 아니라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게 문제였다.
이전에 선배들을 따라다니며 적었던 메모를 다시 꺼냈다. 당시 나는 꽤나 불안했나 보다. 선배들이 한 말을 자세하게 적었을 뿐만 아니라 비슷한 리포트를 찾아 모든 장면을 비슷하게나마 따라 하려고 이미지를 캡처하기도 했다. 촬영하고 돌아와서도 내 마음은 불안이 지속되는 상태였다.
‘뉴스 시간 내에 못 만들면 어쩌지?’
‘실수해서 방송사고 나진 않을까?’
제작을 끝내고 방송 테이프를 넘겨야 안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메모는 지난 5월 이후로는 더 이상 적혀 있지 않았다. 아마도 이때쯤 혼자서 일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일에 적응하기 시작했던 것이리라. 그 이후 촬영, 편집이 힘들다고는 해도 조금씩 나태해졌던 건지도 모른다.
메모를 보다 보니 웬만큼 답이 찾아지는 듯했다. 안도감. 나는 무언가 놓쳤던 게 아니라 불안에 나 자신이 나름의 대응책을 찾아냈던 것이다. ‘적당히 이 정도면 돼’라는 안일한 생각을 마음에 품었다. 보이지 않는 작은 균열이 쌓이고 쌓여, 방치되고 또 방치돼 성벽이 갈라졌듯이, 업무에 있어 나 자신의 문제 역시 작은 안일함이 오랜 시간 누적되어 나타난 것이 아닐까?
순간의 방심은 방송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방송사고보다 더 큰 문제는 보도의 완성도. 영상은 고민과 취재, 생각의 최종 표현물이다. 그런 만큼 더 노력하고 한발 더 뛰며 새어나가는 것이 없도록 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한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항상 좌절을 찾아 사람을 만난다. 왜냐하면 그 좌절이야말로 성장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좌절이 또 찾아오겠지만 그 과정을 통해 성장하리라 다짐해 본다.
정성수 / KBS전주총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