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이크와 초상권
해묵은 주제에 관한 글을 하나 쓰려고 합니다. 입사 시험에도 자주 나오는 주제고, 매일 현업에서 마주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모자이크에 관한 부분입니다. 원칙은 분명합니다. 모자이크 사용은 가급적 지양하고 카메라에 노출되는 경우 초상권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장 상황은 이 원칙을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매번 수많은 사람들의 허락을 일일이 구할 수도 없습니다.
글을 작성하는 오늘(10월 8일) KBS 9시 뉴스를 보겠습니다. 왼쪽 북한 측 인사가 공항에서 나오는 장면에서 사람들의 얼굴이 그대로 노출됩니다. 반면 같은 날, 9시 뉴스에서 지하철 9호선에 탑승한 승객들의 얼굴은 모두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습니다. 공항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노출되어도 무방하고, 지하철에 탑승한 승객들의 얼굴은 가려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 [사진1] 2019년 10월 8일 KBS 9 뉴스 방송화면 갈무리
이유는 이렇습니다. 실제로 모자이크가 필요한 경우는 1) 자료 화면을 쓰는 경우, 2) 표가 날 정도로 사람들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는 경우입니다. 위 뉴스의 경우 모두 그날 촬영한 원본이기 때문에 1)에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2)의 이유 때문인데 왼쪽의 경우 쉽게 알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모자이크를 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오른쪽의 경우 사람들이 특정인을 알아볼 수 있다는 생각에 모자이크를 쳤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렇듯 모자이크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입니다. 어느 정도가 돼야 이 사람들을 알아 볼 수 있는가. 이것은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0.5초 정지화면을 잡아서 간신히 볼 수 있는 사람의 얼굴마저도 누군가는 가려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직까지 위와 같은 이유로 초상권이 침해되었다고 해서 민형사상 처벌을 받은 일은 드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촬영을 하는 과정에서 분명하게 거부 의사를 표시하는 경우라면 아마도 대개는 해당 영상을 사용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러나 초상권과 개인정보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과거와 같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자신의 권리에 민감하고 자신의 권리가 엄격하게 보호받기를 원합니다. 인터넷을 통한 다시 보기, 캡처 등이 가능해지면서 초상권과 개인정보 보호 필요성이 사회적으로 광범위하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위 사례는 취재 방향과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군중이었기 때문에 조금 수월했습니다. 그렇다면 취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사람의 경우는 어떨까요? 예를 들어 제가 참여했던 『KBS 시사기획 창 - 병든 새우, 어떻게 국경 넘었나?』라는 프로그램에서는 베트남 새우 수출업체의 실명과 얼굴, 업체명을 모두 공개했습니다. 얼굴과 실명 등을 공개하기까지 제작진들의 고민이 많았습니다. 모자이크를 하지 않았을 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공개했을 때 제작진이 감수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시청자의 알 권리, 아이템의 집중력 등을 얻을 수 있겠지만 언론중재위원회 제소, 민형사상 소송 등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외국의 경우는 어떤지 살펴봤습니다. 올해 5월 아프리카에서 피랍되었다가 프랑스군에 의해 구출된 한국인 여성 장 모 씨의 경우입니다. 대부분의 국내 언론은 장 모 씨의 얼굴에 모자이크를 입혔습니다. 이 부분은 KBS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다른 방송사, 신문사가 마찬가지였습니다. 반면 당시 사건을 보도했던 외신(르몽드, AFP, BBC 등)은 대부분 모자이크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 [사진2] 서아프리카에서 피랍되었다가 프랑스군에 의해 구출된 3인(좌:KBS, 우:AFP)
이 외에도 자료조사를 위해 외신과 국내 언론이 함께 보도했던 사건들을 찾아봤습니다. 2017년 괌에서 어린아이를 차에 방치했다가 현지에서 체포된 한국인 판사·변호사 부부, 2016년 대한항공 기내 난동 사건 등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나라 언론은 변호사 부부의 얼굴과 기내 난동범의 얼굴에 모자이크 처리를 했지만, 외국 언론은 모자이크 처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외신이 대개 모자이크를 하지 않는다고 우리가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각각의 나라는 모두 각자의 법과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옮고 그름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원칙입니다. 일관된 원칙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현장에서 일하며 매번 그때그때 사정에 맞게 편집을 해야 합니다. 소송을 감수해야 하고, 매번 화면을 띄워놓고 모자이크를 칠지 말지 논의를 해야 합니다. 소모적인 논쟁이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흔들리지 않는 원칙을 마련했으면 합니다.
김재현 /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