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홍콩
▲ 홍콩거리에서 송환법 반대 시위현장을 취재하는 SBS 박현철 영상기자<사진 왼쪽>.
어린 시절 성룡의 ‘쿵후’ 영화로 시작되었던 홍콩에 대한 동경은 십 대에는 장국영과 주윤발, 이십 대에는 크리스토퍼 도일과 왕가위 감독의 영화로 나의 가슴을 더욱 설레게 했다. 대학생이던 1997년 여권을 처음 만들면서 제일 가보고 싶은 나라가 홍콩이었을 정도로 홍콩에 대한 갈망과 기대는 컸다. 영상기자로 근무한 19년 동안 여느 보통사람보다 훨씬 많은 50여 개의 국가에 출장과 여행을 다녀왔지만 젊은 시절의 기대와는 달리 홍콩을 가본 적이 없었다. 결국 사십 대 중반이 되어서야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 취재로 가게 되었다.
어느 홍콩영화의 대사처럼 "1997년 이후에는 어디로 간다는 말이냐?" 홍콩 사람들에게 있어 홍콩의 중국 반환 후 미래에 대한 불안은 그들 영화의 주된 소재였다. 하지만 지금 그들에게는 '일국양제'가 종료되는 2047년을 불안해하며 [홍콩 광복! 시대정신!]을 외치기 시작했다.
홍콩의 정체성
중국은 진시황의 춘추전국시대 통일 이후 문자와 도량형을 통일하려고 노력해왔다. 중국인들조차 다민족 국가로 결성된 중국의 언어를 통일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통신과 인터넷이 발달된 현대에 이르러서 중국의 많은 언어들이 쇠퇴해가고 북경어는 날이 갈수록 그 위세를 확장하고 있다. 홍콩에서 사용되는 광둥어는 중국어의 하나이기는 하나 북경어와는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언어학적으로는 다른 언어로 본다고 한다.
우리에게 '주윤발'로 알려진 영화배우의 이름은 북경어로는 '저우룬파'이다. 기자들이 쓰는 기사에도 외래어 표기법에 의해 '저우룬파'로 쓰고 있지만 사실 그의 이름은 그의 언어인 광둥어로 '짜우연 팟'(Chow Yun-Fat)이다.
이처럼 중국에 반환 이후 홍콩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이름조차 자신의 언어인 광둥어가 아닌 북경어로 불리는 일이 생겼다. 홍콩 반환 이후 광둥어를 쓰는 홍콩인들은 학교에서 북경어를 교육받아야 하고, 대륙에서 북경어를 쓰는 수많은 본토인들이 ‘성항기병 省港旗兵’처럼 이주해왔다. 영원할 것이라고 믿었던 99년이라는 시간 동안 영국의 서구문화를 교육받고 영국인이 되기를 원했던 홍콩인들은 이제 중국인이 되기를 강요받고 있다.
‘일국양제 一國兩制' 불안한 동거
일국양제란 하나의 국가에 두 개의 제도가 양립하는 것으로 영국과 중국 사이 홍콩 반환의 기본원칙이다. “홍콩특별행정구는 사회주의 제도와 정책을 시행하지 아니하며, 원래의 자본주의 제도와 생활방식을 유지하고 50년간 변동하지 아니한다”는 전제하에 사회주의인 중국이 자본주의인 홍콩을 흡수해가는 방식이다. 홍콩, 마카오의 식민지 반환과 더불어 최종적으로 대만까지 흡수하는 방식이다.
지금의 홍콩은 중국의 "일국양제"의 시험대상이 되었다.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본토에서 유입된 본토 출신의 근로자와 친중 보수층은 이미 커다란 세력이 되었다. 게다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지의 동남아 화교들도 상당수는 여러 가지 이유로 중국을 지지한다고 한다. 하지만 홍콩 사람들의 기세는 꺾일 줄 모른다. 또한 '일국양제'는 결국 대만을 흡수 통일하기 위한 방법인데, 홍콩에 인민해방군이라도 진입시켜, 강제로 진압을 한다면, 결국 중국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대만을 흡수 통일하는 것은 더욱 멀어질 수 도 있다는 국제사회의 예상도 있다.
지난 8월 취재차 도착한 홍콩의 거리는 이미 [광복홍콩! 시대정신!]을 외치는 시민들로 가득 찼다. 송환법에 반대하는 시위대는 홍콩 경찰청 앞을 봉쇄하고 저항의 의미로 레이저 광선으로 발사하는 등 홍콩섬의 주요 도로를 점거하고 있었으며, 홍콩 경찰은 이를 막기 위해 최루탄과 살수차를 동원했다. 시위대는 경찰의 진압을 막기 위해 바리케이드를 치고, 불을 지르고는 등 시위가 격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9월 4일 캐리 람 행정장관의 반송 법 철회 선언에도 불구하고 전면적인 민주화 요구와 긴급조치 철회를 요구하는 홍콩의 시위는 잦아질 줄 모르고 있다. 최근에는 마스크 등의 복면을 쓰고 시위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하는 '복면 금지 법'법이 시행되었다. 시위가 격해질 수 록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고, 성난 시위대는 지하철역에 불을 지르고 중국자본으로 된 상점을 부수는 등 과격 행동도 벌어졌다. 넉 달간 홍콩 경찰에 체포 사람만 2천여 명에 이른다. 18세 고교생 쩡쯔젠은 경찰이 쏜 총에 가슴에 맞아 위독한 상태이고, 14세 소년도 경찰이 쏜 실탄에 다리를 맞아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이처럼 홍콩 사태는 극단으로 치달을 뿐 탈출구가 없어 보인다.
“발이 없는 새가 있지
날아다니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대
평생 한번 땅에 내려앉을 때가 있는데...
그건 죽을 때지”
[아비정전 阿飛正傳] 아비(장국영)의 독백중에서...
길 잃은 아비의 독백처럼 홍콩이 ‘발 없는 새’가 아닌,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홍콩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바라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박현철 / 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