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석
2018년 6월 18일, 프랑스 칸에서 열린 ‘칸 라이언스 세미나’. 나영석 PD는 거기서 외국인을 상대로 강연을 했다. 한국에서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이 어떻게 인기를 얻을 수 있었는가? 이를 주제로 자기 생각을 풀었는데, 그는 ‘삼시세끼’ 시리즈의 시작을 이렇게 밝혔다.
“어느 날 나에게 10일간의 휴가가 주어진다면 뭘 할까, 라는 생각을 했다.“
”‘삼시세끼'를 통해 실제가 아닌 환상, 누구나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무위도식이라는)'환상'을 주고자 했다.”
이 프로그램은 강원도 산골에서 시작해 남해로, 이후엔 동남아와 유럽의 식당을 거치고 스페인의 하숙집으로 정착했다. 나영석 PD는 프로그램을 위해 인맥에 인맥을 활용했다. 이서진과 옥택연, 차승원과 유해진, 윤여정과 정유미, 염정아와 윤세아, 박소담 등이 그들이다. 이들이 밥을 해 먹고, 한식을 팔고, 여행자를 위한 호스텔을 운영했다. 그는 ‘환상’을 실제처럼 보여주기 위해 연예인의 아우라를 걷어냈다. 실제로 출연자들은 밥해 먹고, 끼니를 파는 것을 마치 내 집에서 하듯 보여주었다.
김태호
유재석은 ‘무한도전’의 김태호 PD의 장난처럼 시작한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음악 작업을 했다. 무한도전 멤버들에게 레슬링을 가르쳐 줬던 밴드 ‘체리필터’의 드러머 손스타를 찾아가 억지로 배운 드럼으로 단독이자 콜라보레이션 콘서트를 했고, 트로트 ‘신동’으로 새 음원을 2곡이나 발표했다. 유재석에게 부(副) 캐릭터인 ‘유산슬’을 만들어준 김태호 PD는 마리오네트를 가지고 놀듯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유플래쉬’와 ‘뽕포유’라는 부제를 가진 이 프로젝트는 그가 음악에 몸을 맞춰가는 모습을 익살스럽게 보여주는데, 김태호 PD는 여기에서 장르의 극한으로 유재석을 끌고 간다. 드럼을 잠깐 배우게 하고, 배운 비트를 녹음해서 두 개의 곡으로 만들고, 콘서트도 연다. ‘유산슬’ 프로젝트를 통해서는 음반 취입, 홍보, 지방 공연의 현장으로 잇따라 그를 활용한다. 코미디언의 정체성과 별개로 놀이에서 시작해 그에게 음악가의 옷을 입힌 것이다.
일반인과 연예인
나영석 PD는 프로그램의 환상을 위해 ‘일반인 되기’를 추구한다. 그의 전작인 ‘1박 2일’은 연예인들이 MT를 떠나는 것이고, ‘꽃보다 ○○’ 시리즈는 여행을, ‘삼시 세끼’ 시리즈는 밥해 먹고 잠자기, 밥해 먹이고 다독이기라는 컨셉트를 가지고 있다(‘알쓸신잡’ 과 ‘신서유기’는 예외적이다). 출연자들은 세트장이 위치한 마을 사람과 어울리도록 배치되고(농사와 장보기, 낚시 등) 환경과 위화감이 없도록 ‘자연스러움’을 최대한 연출한다. ‘신서유기’ 역시 MT 놀이에서 시작해 식당 미션으로 옮겨가고, 이 과정에서 일반인과 만남을 흥행 전략으로 삼는다.
폐쇄된 공간인 농가 주택이나 민박집에서는 출연자들의 자연스러운 일상을 포착하려 수십 대의 카메라로 포위하고, 이동 중 출연자 한두 명의 행동을 잡아내고자 스텝들이 주변을 감싸면서 환경과 분리시킨다. 기존의 예능이 추구하던 안전한 세트장에서의 공연과 촬영을 일상생활의 공간으로 가지고 나온 것이다.
김태호 PD의 경우 유재석을 비롯한 출연자들을 철저하게 예능인으로 활용한다. 그들이 웃고 떠드는 과정도 결국에는 예능적인 과제를 완수하기 위한 윤활유다. ‘유플래쉬’에서 유재석은 이적, 유희열과 낄낄거리다가도 이상순, 적재, 윤상, 폴킴, 다이나믹 듀오 등과 음원을 만들어낸다. 콘서트에서는 애초에 시작한 2개 곡 이외에 이승환, 하현우가 재가공한 신해철의 유작을 단독 공연을 통해 선보인다. 연예 산업의 주류로 재입성하려는 트로트 업계의 염원에 힘입어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인기도 많이 얻은 ‘뽕 포유’의 경우에는 장르에서 활동하지만 유명하지 않았던 작곡, 편곡, 세션, 홍보, 매니지먼트의 실력자들과 음악을 만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두 프로젝트에서 보이는 유재석의 활동은 ‘무한도전’에서의 역할과 다를 바 없다. 6인이나 7인이 하던 여러 도전 과제를 유재석 혼자 해내는 것. 그렇다면 ‘무한도전’ 시기의 김태호 PD의 전략과 같은 것이라 보아야 할까? 상당히 비슷하다. ‘무한도전’에서 2년 마다 개최한 각종 콘서트나 추격전, 다양한 미션 수행을 다룬 에피소드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예능인이라는 것을 항상 강조해 왔다. 그 와중에 발생하는 일반인들과의 접촉은 ‘무한도전’ 촬영 중 이라는 상황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대중들은 나영석과 김태호라는 이름을 보고 프로그램을 선택하고 대강의 재미 포인트를 예상한다. 일반인이 된 연예인을 보거나, 딴따라의 길을 가는 예능인을 만나며 즐거움을 찾는다. 두 명의 PD는 이미 스스로 장르가 되었다. 이 장르의 경쟁-아마 두 사람은 경쟁이라고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연예 산업의 호사가나 인터넷 뉴스 매체 종사자들은 프로그램 이름만큼 그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경쟁을 부추기거나 한쪽을 편들고 있다. PD의 연봉이 화제에 오르고, 퇴사 여부가 포털사이트의 뉴스 면을 채우는 현상은 오래되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의 프로그램은 연예 산업을 이끌어가는 대세가 아니라 특이하게 솟아나 있는 일종의 봉우리로 보인다.
방종혁 / 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