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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를 경험한 취재원, 그리고 셀프케어

 
 

트라우마를 경험한 취재원, 그리고 셀프케어(사진).JPG

▲ 필자가 지난 8월 27일 호주 멜버른 다트센터에서 방송기자연합회 연수 대상자 기자들에게 ‘트라우마를 경험한 지역사회 보도 사례’를 주제로 발표했다. 

 
 1979년 10월, 박정희 유신독재에 반대해 일어난 부마항쟁이 올해로 40주년이 되었다. 올해 초 이를 기념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된 수많은 고문의 피해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미 40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고문 피해자들은 여전히 당시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깊은 고통과 분노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고 있었다. 오랜 시간도 트라우마를 온전히 치유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인터뷰용 조명을 보고도 취조받던 때 느낌이 떠오른다며 그들은 힘들어했다. 이렇듯 트라우마를 지닌 피해자들을 취재할 때 올바르게 접근하는 방법이 있는지 고민하던 중 방송기자연협회 주관 ‘저널리즘과 트라우마 과정’에 참여하게 되었다. 지난 8월, 나는 호주 멜버른에 있는 트라우마 전문 교육기관인 다트 센터로 날아갔다.
 
트라우마의 정의와 증상
 일반적인 범주를 넘어서서 생명을 위협하는 사건, 예를 들면 전쟁, 강간, 성폭력, 강도, 재난, 재해, 유괴, 교통사고, 생명이 위험한 질병, 죽음의 목격, 어린 시절의 성적 학대와 같은 경험은 트라우마를 남긴다. 개인 특성과 성별, 나이, 자아감 손상 정도에 따라 트라우마의 영향은 다르게 나타난다. 심리적으로는 타인과 세상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가지는 기본적인 신뢰감의 손상, 자신이 바르게 행동하지 못한 것 같은 무능감, 절망감에서 비롯된 죄책감 등이 생길 수 있다. 이러한 증상이 1개월 이상 지속되면 외상 후 스테레스 장애 즉, PTSD: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로 진단될 수 있다. 우리가 익히 들어 온 바로 그 명사다. PTSD는 남자의 경우 전쟁과 상처, 죽음과 같은 육체적 폭력으로부터, 여성들의 경우는 성폭력으로부터 많이 발생한다.
 
 심리적 외상을 입게 되면 심장 박동의 증가, 불면증, 불안, 공포, 우울, 비관적 자세와 극심한 피로, 짜증, 우울 등의 증상과 재경험, 회피, 과다 각성의 현상을 보이게 된다. 사람들을 쉽게 믿지 못하고 의심하고 확인하는 등의 관계단절, 다른 사람들은 이해를 못 할 거라는 소통단절, 세상에 대한 분노와 불안정과 동요, 회피 등의 증상들도 나타난다.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취재원들에 대한 인터뷰 접근방식
 커다란 카메라와 조명, 마이크 등 영상기자에게는 필수 취재 도구인 방송장비들은 일반인들에게 낯설고 부담스러운 대상일 수 있다. 특히나 좋지 않은 기억을 떠올려야 하는 경우 인터뷰만으로도 큰 부담을 느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낯선 방송장비까지 앞에 있다면 더더욱 위축될 수 있다. 이런 경우 인터뷰 상황에 적응할 수 있도록 시간을 두고 관계 형성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첫째, 미팅 전 인터뷰 대상이 겪은 사건에 대한 기사나 영상 자료를 살펴 사전에 정보를 얻자. 그리고 인터뷰 장소나 시간은 가능하면 취재원이 편한 시간과 원하는 장소에서 진행하고 허락하지 않는 경우에는 무리하게 집이나 피해경험 미성년자의 촬영을 요구하지 않는다.
 
 둘째, 인터뷰에 앞서 장비는 멀리 두고 (티타임과 같은) 시간을 가지며 관계를 형성하고 인터뷰 절차(조명과 마이크 설치, 필요에 따라 가구도 움직일 수 있음)에 대해 설명해준다.
 
 셋째, 편안한 상태에서 인터뷰를 진행해야 하고 특정한 장소에 데려가야 할 경우 미리 계획을 말하고 누군가 동행하기를 원한다면 함께 데려간다. 그리고 인터뷰 중에는 시선 맞춤이 중요하다. 대화 도중 장비 확인과 같은 불필요한 행동을 삼가자.
 
 넷째, 사용하지 말라는 부분에 대한 약속을 지키고 방송 후 의도와 달리 표현되어 사과할 부분이 있다면 진심으로 사과한다. 그리고 취재원이 배려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부드럽게 대화하도록 노력하고 힘들어하지 않는지 살피며 너무 힘들어할 경우 쉬었다 진행한다. 만약 눈물을 보인다면 감정을 해소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다섯째, 이러한 과정으로 관계 형성이 되었다면 카메라의 크기나 조명의 개수 같은 것들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가급적 밝고 오픈된 장소에서 진행하는 것이 좋고 화면 속 인물이 돋보이도록 하는 것이 좋다.
 
 여섯째,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할 때 꼭 필요한 두 가지 질문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더 하고자 하는 말이 있는가?’ 그리고 절대 피해야 할 질문들은 “심정이 어떤가?”, “(가해자들을) 용서할 수 있는가?”, 당시의 상황을 떠올릴 수 있는 “소리, 냄새, 느낌이 어땠나?“, ”왜 그랬나?”, “왜 안 했나?”, “이해한다.” 등이다.
 
 일곱 번째, 기사에 싣고 싶은 사진이나 영상이 있는지 물어본다. 그리고 인터뷰를 마친 뒤 감정의 소용돌이를 일으켜 놓고 서둘러 떠나지 말고 “이제 뭐 할 건가요?”와 같이 계획을 묻고 만약 아무 계획이 없다면 집중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주는 것도 좋다.
 
대규모 재난, 재해 지역에서의 접근 방식
 첫째, 현장 도착에 급급해하지 말고 진정된 상태로 현장에 대한 정보를 얻으면서 접근하고 상황을 살피며 움직이고 취재 도중 틈틈이 안전지대가 어디인지, 대피로가 있는지 등을 확인하면서 진행한다.
 
 둘째, 인터뷰를 위해서는 취재 전 소속과 신분을 밝히고 사전 허락을 구하고 무리한 취재를 하지 않는다. 취재원도 거절할 권리가 있으며 그들이 기자에게 적대적인 반응을 보일 수도 있음을 인지하자. 그리고 취재 과정이 취재원의 트라우마에 대한 기억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잊지 말자.
 
 셋째, 현장 상황 정보는 피해자가 아닌 제3자(경찰 소방관 의료진 등)에게 묻자.
 
 넷째, 포토라인 설치나 POOL단 구성으로 현장에서의 과잉 경쟁과 혼란을 막고 재해 현장의 대표성을 가지거나 상황을 전달해 줄 수 있는 인터뷰이 창구를 단일화하면 현장 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정부의 발표라도 의심하고 참사 현장을 직접 보고 상황을 제대로 전달하자.
 
Traumatic(외상성) 이미지 관리
 첫째, 영상 편집자들과 후반 작업 담당자들의 경우 현장에 있지 않더라도 화면을 통한 간접 경험과 반복, 지속적 시청으로 트라우마에 노출될 수 있다. 폭력적이며 끔찍하고, 혼란스러운 이미지들을 편집, 관리, 활용하는 것과 같이 이러한 이미지들을 자주 접함으로 인해 혐오, 불안, 무력감 등의 반응을 보일 수 있고 일상생활에서는 집중의 어려움과 숙면을 취하기 어려운 형태로 표출되기도 한다. 
 
 둘째, 외상성 이미지를 취급하는 것은 마치 방사선에 노출되는 것과 비슷하다. 시청 빈도의 반복은 전체 총량보다 문제가 될 수 있다.
 
 셋째, 자료에는 정렬 및 태그 지정 등의 절차를 구성하는 방법으로 불필요한 확인 횟수를 줄이고 경고 없이 동료들에게 전달하지 말자. 
 
 넷째, 화면의 크기를 줄이거나 화면의 밝기 또는 해상도를 조절하는 방법과 컬러가 아닌 흑백으로 보는 방법도 효과가 있고 사운드는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부분이니 가능하면 소리를 끄는 것이 좋다.
 
셀프 케어
 첫째, 호흡 조절로 마음진정. 3초간 들이마시고 5초간 멈추고 8초간 천천히 코로부터 숨을 내뱉으면서 몸에 힘을 뺀다. 그리고 적당한 운동이나 명상, 좋아하는 음악 듣기, 글 쓰기, 몸 가볍게 두드리기, 마사지 받기, 다른 생각하기, 다른 일에 집중하기, 찬물 샤워 등 자신에게 효과적인 스트레스 관리 방법을 찾아 관리한다.
 
 둘째, 언론인 자신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심적 외상을 입을 수 있는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끼리는 서로 챙겨야 한다. 데스크도 그들이 괜찮은지, 너무 힘들지 않은지 아이템 못지않게 그들의 감정 상태를 살펴야 한다.
 
 재난, 재해 현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피해자 혹은 유가족은 심리적 외상을 입었을 가능성이 높다. 취재 하는 데 있어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이다. 이미 트라우마 상황으로 1차 피해를 입은 상황에서 잘못된 질문이나 그때의 기억을 부정적으로 떠올리게 할 수 있는 취재는 자칫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사건 직전부터 직후까지 만나는 언론인들이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따라 피해자들의 사건 사고의 기억, 치유와 회복에 영향을 미친다. 기자는 현장에서 트라우마를 겪는 취재원의 트라우마를 키울 수도 있고 반대로 치유를 도울 수도 있다. 이 점을 명심하자. 공감과 지지를 받는 경험은 치유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는 실제의 사람들을 상대로 취재한다는 사실이다. 원거리나 간접적인 취재로도 슬픔을 얼마든지 전할 수 있다.
 
 
이성욱 / 부산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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