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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그 높은 좌절의 벽

 

 

(사진) 안나푸르나, 그 높은 좌절의 벽.jpg

 

 

 어느 날 아침, 급하게 걸려온 전화벨 소리에 묻어 온 출장 지시. 장소는 네팔이었다. 세상에 가장 높은 산들이 모여 있는 네팔, 그 이후 내용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설마 걸어서 올라가진 않겠지? 엄청 춥겠지? 고산병은 어쩌나? 온갖 걱정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와중에 들린 한마디, 후배인 정상보 차장과 같이 간다는 말에 정신을 퍼뜩 차렸다.

 

 이틀 동안 비행기를 세 번이나 갈아타며 도착한 포카라, 먼지가 자욱했던 카드만두와는 다르게 미세먼지 없이 청명한 하늘, 하얗게 눈 덮인 안나푸르나. 한눈에 들어오는 오지의 농촌마을 같은 소박함을 간직한 네팔 제2의 도시 포카라. 1720m 지점의 칸텐에서 출발해 3700m 지점의 마차추차레 베이스캠프로 마무리하는 코스로 고산 트래킹의 경험이 없거나 처음 히말라야를 경험해 보는 등산객들의 ‘히말라야 트래킹의 기본’으로 불릴 정도로 한국 여행객들에게 아주 인기 있는 트래킹 코스이다. 하지만 눈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이라 결코 쉬운 코스가 아니라는 평도 있었다. 특히 이번 한국 교사 4명과 셰르파 2명이 눈사태로 실종된 구간이기도 하다.

 

 평상시에는 포카라에서 사고 현장까지 도보로 4일이 걸린다. 그러나 이번 눈사태로 도로가 유실되어 도보로는 현장 접근이 어려웠다. 기상 상황이 좋으면 헬기를 이용해 현장에 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카트만두에서 헬리콥터를 섭외했다. 포카라 도착 후 바로 현장에 갈 계획이었지만 순번에 밀리고 네팔 수색대 수송 때문에 예정시간보다 늦게 현장으로 출발했다. 당일 현장 수색이 종료된 상태라 결국 사고 현장에서 제일 가까운 데우랄리 산장에 착륙할 수밖에 없었다. 여유롭게 촬영하고 싶었으나 방송시간에 쫓겨 더 이상 산장에 있을 수도 없었다.

 

 공항으로 돌아와 자연스럽게 헬기 회사 부스 옆에 자리를 잡고 송출을 시작했다. 이후엔 출장팀들 모두에게 네팔 관계자들로부터 현장 정보와 사진 및 영상을 구하는 장소이자 서로의 동향을 파악하는 장소가 됐다. 매일 아침 출근하는 출입처이기도했다. 시끄러워도 돈 되는 한국 기자들이 싫지는 않았는지 아침마다 따뜻한 커피를 타 줬다.

 

 다음날, 어김없이 이륙 30분 데우랄리 산장에 도착. 산장 내부로 들어가니 벌써 엄홍길 대장과 드론 수색팀은 수색장비를 챙겨 사고 현장으로 막 출발하는 참이었다. 급한 마음에 아이젠을 착용 중인 취재기자를 놔두고 일단 수색 팀을 쫓아 사고 현장으로 출발했다. 현장으로 가는 길은 눈사태 이후 임시로 만든 길이라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이었다. 등산화에 아이젠이 없다 보니 미끄러지고 엉덩방아도 몇 번 찧었다. 조금만 발을 헛디디면 무릎까지 푹푹 빠지고 중간중간 낭떠러지 길이어서 내려가다 만난 수색원이 위험 때문에 수색을 포기할 정도였다.

 

 30분 만에 드디어 도착. 혹시 발생할지 모를 눈사태 등의 위험 때문에 그 이상의 근접 취재는 차단되었다. 사고지점 10m 앞. 엄 대장과 수색 팀은 금속탐지 장비와 탐침 봉을 이용해 사고지점 중턱에서 계곡 쪽으로 수색 중이었다. 산 중턱에서부터 하천까지 쓸려 내려간 면적이 생각보다 넓었다. 하천 쪽엔 구슬처럼 말려 얼어버린 눈이 잔뜩 모여 있어 수색대가 걸어가기도 힘들어 보였다. 첫날 눈사태 이후 2차 눈사태가 발생해 더 두껍게 얼어버린 상태라 삽으로 하는 작업자체가 불가능했다. 산에서 쩍 하는 소리가 났다. 옆에 있던 수색대 스텝이 피하라고 고함을 지르는 바람에 놀라 넘어질 뻔했다. 눈사태는 산 사면에 쌓여 있던 눈이 특정 분위에 힘이 쏠리거나, 외부적인 요인으로 갑자기 대량으로 미끄러져 내리는 현상이다. 규모가 매우 크고 소리도 엄청나기 때문에 수색에 집중하다 보면 못 들을 수도 있기 때문에 크게 소리쳐야 한다. 산행 중 눈사태가 났을 때 큰 바위 뒤에 몸을 숨기지 않으면 눈에 쓸려가는 것은 한순간이다.

 

 네팔 현지 사정상 중장비를 현장까지 옮길 수 있는 장비가 없다. 옮기더라도 얼어있는 눈을 걷어내다 추가 눈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물을 끌어와 녹이는 건 현지 기온이 영하 20도 안팎이라 다시 얼수도 있었다. 10cm의 얼음 두께를 삽으로 파헤치는 것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날씨까지 나빠지면서 23일과 24일 이틀에 걸쳐 산장에서 모두 철수했다. 취재진으로서 아무 성과도 내지 못한 채, 눈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두고 귀국하려니 발걸음이 무거웠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우리는 너무도 미약했다. 오히려 하루하루 우리에게도 닥쳐올 수 있는 위험에 몸을 떨어야 했다.

 

 지금까지도 수색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네팔정부는 4~5월이 되어 눈이 녹고 어느 정도 상황이 갖춰져야 수색작업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빨리 봄이 오기를, 하여 눈 속에 갇힌 이들이 하루빨리 가족들 품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강동철 / SBS  (사진) SBS 강동철 증명사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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