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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남 지역갈등 범인은 따로 있다?

 

 

 

“어디서 오셨소?”

 

 “출생지는 부산이고, 자란 곳은 경남 거창입니다!” 잔뜩 겁먹은 신입사원을 향해 듬성듬성 희끗 희끗한 머리칼을 가진 선배가 답한다.

 

 “고향이 거시기허네. 허허. 언젠가는 돌아가겄소” 선배의 질문에 나는 당황하지 않았지만, 한편으론 씁쓸했다.

 

 ‘아직 없어지지 않았구나’

 

 나의 고향은 영남이지만 어머니는 호남 출신이다. 나는 지금 KBS 광주총국에 있다. '전라도 기자’가 된 지 1년. 지역감정이란 무엇이며 난 무엇을 해야 할까? 경상도 토박이가 전라도 취재를 하며 느낀 것들을 풀어보려 한다.

 

 2019년 1월. 다섯 번의 도전 끝에 한국방송에 입사했다. 지역권으로 입사자들은 전국 9개 총국 중 3개의 희망지를 쓰게 된다. 고심 끝에 세 군데를 골라 쓰고 <지원사유>란에 똑같은 세 줄을 썼다.

 

 “비연고지입니다. 공정방송 실현하겠습니다” 대부분은 연고지를 우선해 희망지를 정하는 분위기 속 에서 내가 무슨 용기였을까? 5년 동안 더 깊어진 간절함 탓인지 나는 그랬다. 일주일 후 정해진 내 행선지는 광주.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그렇게 31세 경상도 신입사원의 전라도 삶이 시작되었다.

 

 지역 영상기자들의 특권이랄까? 1년간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 분야를 막론하고 호남 곳곳을 누볐다. 중학생 의붓딸의 목숨을 앗아간 부모들에 분노도 느끼고, 농약병 주워 팔아 모은 돈으로 기 부하시는 82세 할아버지께 감동도 받았다.

 

 영상기자는 항상 현장에 있다. 그리고 직접 본다. 짧다면 짧은 1년의 시간이었지만 호남의 가장 뜨거 운 순간을 직접 느낀 경상도 청년은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다르지 않다. 지역 갈등은 정치인들이 만 들어 낸 것뿐이구나.’ 전라도와 경상도. 말이 다르고 기질이 다를 수 있다. 한 부모 아래에서 태어난 형제자매도 천차만별인데, 사는 곳의 환경이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같을 수 있을까? 또 그 차이가 서 로를 미워하는 이유가 될 순 없다. 한국의 영·호남 지역갈등 원인에 대해선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내 견해는 이러하다. 오늘날 대한민국 국민 5,170 만 중 2,300만의 인구가 서울·경기 지역에 산다. 따라서 선거철이 되면 정치권은 수도권 유세에 집 중한다. 하지만 1970년 대한민국 인구는 약 3,000 만 명이었는데 이중 절반이 경상도와 전라도에 살았다. 따라서 당시 정치권은 이들 지역의 지지율에 사활을 걸었다.

 

 1971년 제7대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와 김대중. 두 유력 후보들은 각각 경상도와 전라도. 출생지를 중심으로 지지자들을 모으는 데 주력한다. 영남의 박정희는 ‘빨갱이들에게 나라를 넘겨줄 수 없다’는 명분으로 지지를 호소했고 호남의 김대중은 ‘독재타도’로 맞섰다. 두 사람의 대립은 지역 간 대립으 로 영·호남들을 갈라놓았다. 또한 당시 박정희 정 권 정보기관의 불법 선거개입도 이를 부추겼다. 결국 박정희가 당선된다.

 

 이후 지역갈등의 기폭제가 된 것이 ‘5·18 민주화 운동’이다. 군부세력의 탄압을 정당화하기 위한 희 생양이 광주였다. 이것이 외부에‘ 북한군 개입·폭 동진압’으로 왜곡되며 호남은 다시 한번 권력의 희생양이 됐다. 이 때문인지 13대 대통령 선거 과정 에서 호남은 절대적으로 김대중을 지지하고, 영남은 대구·경북에선 노태우, 부산·경남엔 김영삼 후보가 고향을 중심으로 결집한다. 이후 당선된 노태 우 후보가 과반의석을 차지하기 위해 '3당 합당’을 추진하며 김대중과 호남을 고립시켰다.

 

 그렇다면 지역감정은 생긴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반복되는 정치권의 세력싸움 속에서 만들어진 지역감정이 개인의 삶 속으로 파고든 것 은 아닐까? 사람 자체의 인격과 성품으로 상대를 보아야 하는데, 만들어진 지역갈등은 이를 방해했다. 경상도 사람이지만 전라도에서 기자가 된 나는 1년간 호남 곳곳을 누비며 영호남 시민이 다를 바 없다는 것 몸소 깨달았다. 군사정권 이후 태어난 ‘90년대 생’들에게는 사실 영호남 갈등은 이제 더 의상 무의미한 것 같다. 입사 후 권력자의 욕심에 이런 갈등이 다시는 만들어져서는 안 됨을 뼈저리게 느낀 사건이 있다. 지난해 3월, 전두환 씨가 사 자명예훼손 혐의로 광주를 찾았다. 이때 법원 맞은 편 초등학교의 학생들이 창문을 열고 “전두환은 사 죄하라”를 입 맞춰 외쳤다. 그 광경을 본 나는 눈물 이 멈추지 않았고 가슴이 뛰었다. 39년 전 광주의 아픔이 열 살 남짓한 아이들에게까지 전해졌다는 생각에서다. 역사 속 권력자들은 힘을 잃었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상처는 여전히 시민들 가슴에 남아 있고, 다음 세대까지 대물림되고 있었던 것이다. 5·18 민주화 운동 40주년을 맞이한 2020년. 진상 규명과 진심 어린 사죄가 필요하다. 더 미룰 수 없 을 것이다. 한 번 남긴 상처는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진심 어린 사죄는 피해자들이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위로일 것이다.

 

 내가 어디 출신인지는 무의미하리라. 다만, 두 지역을 조금 더 가까이 살피고 이해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진 그런 사람. 이로써 언론의 궁극적인 역할 인‘ 사회통합’을 조금 더 열심히 해야 할 사명이 주 어졌다고 생각한다. 다시는 우리 아이들의 가슴에 지난 아픔이 남지 않길 바라면서 글을 마친다. 그리고 말한다. “전두환은 사죄하라.”

 

 

 

정현덕 / KBS광주 (사진) KBS영상기자 정현덕.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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