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 신상공개 결정의 고뇌와 함의
서울지방경찰청은 3월 24일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의 신상을 공개했다. 4월 16일에는 조주빈의 공범으로 구속된 피의자 강훈의 신상정보를 공개했다. 성명과 나이가 공개되었다. 얼굴은 다음 날 피의자를 송치할 때 공개했다. 신상공개를 결정한 근거 법률은‘ 성폭력처벌법’ 제25 조이다‘. 피의자의 얼굴 등’을 공개할 수 있도록 한 동 조항은 몇 가지 조건을 붙여서 성폭력범죄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할 수 있도록 하였다. 범죄에 관한 증거가 충분하고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이다‘. 오로지 공공의 이익’이란 국민의 알 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 방지, 범죄 예방 등에 기여할 때를 말한다. 공개할 수 있는 신상은 얼굴, 성명, 나이 등이다. 또 하나의 조건이 추가되었는데 해당 피의자가‘ 청소년 보호법’ 상의 청소 년에 해당할 때는 공개할 수 없도록 했다.
두 사람의 신상과 얼굴을 언론에 공개하기까지 당국의 고뇌는 컸을 것이다. 경찰관 3명과 외부위원 4명으로 구성된 경찰청의 신상공개위원회는 심의과정에서 피의자 인권, 피의자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입을 수 있는 2차 피해 등을 놓고 고민했다고 밝혔다. 미성년자인 강훈의 신상공개에 대해서도 심도있게 논의했다고 말했다. 심의위원회는 범죄에 대한 증거가 충분히 확보된 점, 범행의 수법과 피해자들에게 미친 지속적인 피해, 공공의 이익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밝혔다.
이 쟁점에 대한 논의가 번외로 빠지지 않기를 전제한다. 신상이 공개된 두 사람을 비롯한 관련 피의자들에게 법에 정한 사법절차가 엄정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데 아무 이견이 없다. 피해자들의 피해 방지와 구제, 사회적 규범의 복원을 위해 사회적으로 기대하는 양형 요구가 반영되어야 한다는 점도 이론이 없다.
‘청소년 보호법’은 1997년 제정 당시 청소년을‘ 18세 미만의 자’로 규정했다. 1999년 동법은 청소년의 연령을‘ 19세 미만의 자’로 개정했다. 청소년을 청소년 폭력과 학대 등 각종 유해 환경으로부터 보호하고 구제하겠다는 취지가 반영되었다. 2001년 개정된 동법의‘ 청소년’ 조항은‘ 19세 미만의 자’로 규정하되 단서가 붙었다. ‘만 19세에 도달하는 해의 1월 1일을 맞이 한 자를 제외한다’라고 개정했다. 이른바 ‘연 나이’를 적용했다. 법률 개정 사유는 뚜렷하다. 법률 개정 사유에 따르면, 법적으로‘ 미성년자’라고 하더라도 사회통념상 ‘성인’으로 간주되는 조건과 연령대가 있다.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했거나 취업을 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자유롭게 사회활동을 할 수 있도록’ 청소년의 나이 셈법이 개정된 것이다. 연 나이에 해당하 는 청년들을 성인으로 간주해 처벌을 강화하려는 취지가 아니라 청소년으로 규정 됨으로써 받게 될 제재의 위험으로부터 제외시켜 이들의 자유로운 사회적 활동을 보장하려는 법 개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 대한 신상공개심의위원회의 고민이 깊었을 것이라고 본다. 신상공개위원회의 결정은 법 규정을 위반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단서 조항의 입법 취지에 부응했는가에 대해서는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필자는 고위 공직자나 공적 인물이 아닌 경우 일반 형사피의자의 신상 공개에 원칙적으로 찬성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국민이 법관과 법률에 의해 재판을 받을 권리를 천명하고 있다. 형사피고인은 유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된다.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 형사피고인은 상당한 이유가 없는 한 지체 없이 공개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 헌법 제27조에 규정된 내용이다. 뿐만 아니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하며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 헌법 제103조와 제109조에 담겼다. 흉포한 범죄자에게 엄정한 사법절차에 따라 상응한 형벌을 부과하는 것은 법치를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원리다. 나아가 오로지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심판하는 법관에 의해 법원에서 공개적으로 형사 피고인을 재판하는 절차 역시 우리 민주주의 시스템의 요체다.
한편에 공개된 법정에서 공개적으로 다투게 될 형사피의자의 구체적인 범죄 내용과 범죄 혐의자의 신상을‘ 지금 당장’ 공개 해 달라는 대중의 요구가 있다. 다른 한편에, 여론재판이 아니라 법원의 법관에 의해 공정하게 재판을 받을 형사 피고인의 헌법적 권리가 자리 잡고 있다. 언론은 양자 간의 괴리를 줄이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루랑소 사건이 있다. 그는 공판이 개시되기 전에 형사피의사실을 공표하였다는 이유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그가 소속된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의 편집국장도 함께 유죄 선고를 받았다. 벌금형을 선고받은 기자들은 유럽인권재판소에 프랑스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언론인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언론인들에 대한 유죄판결은 타인의 평판과 권리 보호, 사법권의 공정성과 권위 보장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판단했다.
민주주의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언론의 취재보도 자유는 필수적이다. 공직자의 업무 수행이나 공적인 관심사에 대한 언론의 취재보도 자유는 특히 중요하다. 그러나 공인이 아닌 사인들의 범죄에 대해서는 공개법정의 공개재판을 중심으로 사안을 보도하려는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형사사건의 신상공개심의위원회나 언론 모두 고민이 클 것이다. 범죄에 대한 대중의 분노와 피해 구제의 필요성을 수용하면서 헌법이 추구하는 공정한 재판절차의 확보라는 이익을 조화시켜나갈 책무가 언론인들의 어깨에 주어져 있다. 그 책무를 온전하게 이행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어려운 일이기에 언론이 떠맡을 수밖에 없다. 언론인들은 우리 사회에서 인권의 척후이자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이승선 교수 / 충남대 언론정보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