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사실 공표 논란, '쉼표'가 될 기회
▲ 법원의 영장실징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경찰서를 나서는 피의자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 반갑다. 그간 소원해진 것 같다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하루에도 몇 번씩 현장에서 얼굴을 마주하던 시절은 지났다. 대전·충남 영상기자들의 이야기다.
검경의 피의사실 공표기준 강화는 출입처 지정이 없는 지역 기자들 사이의 물리적 거리감을 시나브로 벌렸다. 영상기자로 입사하면 수사기관 브리핑과 피의자 스케치라는 걸 가장 먼저 배우게 된다. 피의자와의 소통(?)이란 일을 핑계로 피의자를 낙인찍는 작업이다. 소통이 억압으로 둔갑하는 과정, 어찌 보면 그동안 이 억압의 클리셰를 우리는 당연시 해왔는지도 모른다. 수사 대상자가 암묵적형 확정자가 되는 것이다. 그들에게 카메라는 판사의 판결봉보다 무겁게, 기자들의 질문은 검사의 형량 구형보다 절망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피의사실 공표와 범죄 피의자 신상 공개 등에 대한 논란은 끝이 없다. 조주빈의 얼굴이 공개됐을 때 TV 앞의 국민은 분노했고, 조국 부인의 얼굴 공개 여부를 놓고는 모자이크 처리의 촌극이 빗어진 걸 보면.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검경 수사 결과 브리핑은 영상기자가 할 수 있는 비교적 쉬운(?) 아이템이었다. 잘 차려진 밥상처럼 놓여 있는 각종 증거물 및 압수품들,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수사기관 관계자와 기자들 모습이 오늘 일은 쉽게 가겠구나, 하는 안도감을 안겨줬다.
이제 밥상 위에 숟가락 올리던 시절은 지난 걸까? 요즘 지역 사회부 기자들은 아이템 고갈에 시달리고 있다. 피의사실 공표가 되지 않는 이상 통신사 뉴스 빼곤 알 수도 알아볼 수도 없는 사건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영상기자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 확인이 덜 된 사건에 대한 영상취재는 자칫 르포르타쥬의 경계를 훌쩍 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취재 환경의 변화를 어떻게 봐야 할까? 한 박자도 쉬지 못하고 ‘음표’ 만 보며 달려왔던 취재 관행에 찾아온 ‘쉼표’를 단순히 영상취재 영역의 축소로만 해석할 필요는 없다. 알 권리와 소통이란 결국 국민에게 진실과 행복을 주기 위한 과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이코패스 전문가이자 컬럼비아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로버트 헤어 박사는 "상대방을 이해하는 마음 없이 경쟁만 강조하는 사회, 이기는 자만이 추앙받는 사회에서 사이코패스는 필연적"이라고 말하기도 했 다. 피의사실공표라는 알 권리와 소통의 명제가 영상기자에게 또 하나의 사이코패스를 만들진 않았는지 곱씹어 볼‘ 쉼표’의 시간이 왔다. 치열했던 자리싸움과 고성, 욕설 속에서 우리가 담으려 했던 장면들, 그 풍경 속의 우리 모습이 정상적이고 합리적 이었는지 생각해볼 시간 말이다.
어쩌면 이제 더 이상 검경이란 공간에서 영상기자 간 만날 일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선후배 간 만남의 장 (?)이 그만큼 줄어들고 나아가 관계가 소원해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반갑다! 영상기자의 영혼을 살찌울 수 있는 쉼표의 시간이 온 것에 말이다. 이참에 다시 새로운 음표를 맞이할 준비를 해 보면 어떨까? 더 많이, 더 빠르게 전달된 것이 언제나 우리 삶을 풍부하게 해 주는 진실이란 보장은 없지 않은가? 새로운‘ 음표’는 바로 그러한 인식에 서부터 시작하면 충분하리라.
박인학 / MBN 대전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