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행적인 위반,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 이승선 교수/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습관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오래된 것 일수록 그렇다.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 수용하지 못하는 것들도 있다. 바뀌지 않으면 죽을 수 있다는 경고도 불문한다. 흡연 같은 경우다. 몰라서 바꾸지 못하는 것들도 있다. 사람들은 자신도 잘 모르는 커뮤니케이션 습관을 갖고 있다. 누군가 진지하게 그 행태를 지적해주면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언어 방식을 바꾸려고 노력한다.
조직에는 관행이 있다. 오래된 관행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몰라서 바꾸지 못할 수 있다. 잘못된 관행이라는 것을 알지만 바꾸는 것이 귀찮다거나 시간과 비용이 수반되기 때문에 여전히 반복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어떤 계기가 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혹은 귀찮더라도 관행을 바꾸는 경우들이 있다. 언론중재위원회에 불려가서 손해배상 조정을 당하거나 법원의 재판에 의해 상당한 액수의 손해배상을 해야 할 때가 그렇다. 그런 경우는 약과다. 가장 해악적인 것은 취재보도의 환경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취재보도 대상의 인격권쯤이야 무시해도 괜찮다는 퇴행적이며 관행적인 사고방식이다. 어마 무시하고 거창한 공적 인물의 인격권에 흠이 될 만한 취재보도라면 언론은 법적인 책임을 지지않고 윤리적으로도 정당화될 여지가 크다. 저널리즘에 부합한 용감한 취재보도 행위일 것이다.
문제는 기자들이 무시로 침해하는 인격권의 대부분이 소소하고 힘없는 일반 시민들이라는 데 있다. 그림이 좋다는 이유로, 혹은 촬영하지 않으면 그림이 안 만들어진다는 이유로, 기자들은 일반 시민을 영상에 담아 방송한다.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걷는 사람들, 시험문제를 풀기 위해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 어떤 시각 어떤 상점에 들러 물건을 구매하고 있는 사람들의 근접 촬영과 클로즈업도 일삼는다. 무심코 시험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과 점수를 촬영해 방송하는 경우도 있다. 영상에 담긴 촬영 상대로부터 초상 촬영과 영상 사용에 대해 어떤 동의도 얻어내려는 노력 없이 그들을 방송으로 내보내고 재활용하는 사례가 너무 많다. 심지어“ 방송 카메라에 찍히지 않으려면 외출하지 말았어야지, 왜 외출을 해!!!”라는 생각을 언론이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때조차 있다. 상대방의 동의 없이 함부로 찍고 마구 방송해도 괜찮던 시절이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분명히 그렇게 해도 괜찮을 때가 아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하여 언론이 부당하고 부패한 권력에 맞서 싸울 때 시민들은 언론의 소소한 시민권 침해행위를 용인해 주었지만, 언론이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위하여 관행적으로 일반 시민의 정당한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할 때 더는 언론의 위법행위에 눈감지 않는다. 시민들은 이미 그런 관행적인 언론을 “경제적 이유로 시민 위에 군림하려는 언론”으로 간주할 뿐이다.
한국영상기자협회의 ‘영상기자상’ 심사에 참여하면서 예상했던 것보다“ 관행적” 인 취재보도 사례가 많다고 느꼈다. 특히 일반 시민들의 “인격권을 제대로 보호해 주면 취재보도 자체가 안 된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언론인들이 적지 않은 듯하다. 당장 바뀌어야 할 오래되고 낡은 관행이다. 지난 6월 17일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는 세계 40개 국가의 언론 신뢰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Digital News Report 2020으로 해마다 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한국인들이 언론에 부여하는 신뢰도는 수년째 40개 국가 중 꼴찌를 차지하고 있다. 2,300여 명 의 시민이 참여한 한국의 경우 응답자의 21%만이 언론의 뉴스를 신뢰한다는 답변을 했다. 이러한 반응은 뉴스 자체의 품질 외에 언론인과 언론기관 등에 대한 만족과 신뢰도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본다. 영상 촬영을 담당하는 일선의 기자들뿐 아니라 영상 편집자, 특히 영상데스크가 영상보도의 잘못된 관행을 개선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영상 데스크와 보도 책임자의 생각이 바뀌어야 많이 바꿀 수 있다. 현장의 후배 기자들이 시민들로부터 신뢰와 명예를 회복 하도록 영상 취재보도 책임자들이 관행 개선을 위해 행동해 주어야 한다.
올해 3~4월 방송물을 대상으로 실시한 제92회 이달의 영상기자상 심사에 참여한 소감을 개정한 <2020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의 내용과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첫째,“ 자료 영상”을 사용할 때 반드시 ‘자료화면/영상’이라는 표시를 해야 하고 ‘자료화면’ 표시는 해당 자료 영상을 사용하는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지속해야 한다. 법적으로 저작권 시비를 피하면서 동시에 시청자들에게 해당 영상정보를 정확하고 정직하게 제시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물론 보도 내용과 관련이 없는 자료 영상을 사용하면 안 된다. 길게는 몇 분 동안 기존의 영상 자료를 재사용하면서 기껏 몇 초간‘ 자료 영상’이라고 표시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시청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면피용으로‘ 시늉만’하고 넘어간다는 비판을 받을 것이다.
둘째, 어떤 사람들의 선행을 알리고 싶은 선의를 가지고 기자가 취재하더라도 그 영상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동의를 받아 촬영하고 방송해야 한다. 또 사적인 공간이나 사적인 휴식을 방해하는 방식으로 취재하고 방송하면 안 된다. 고위 공직자나 선출직 공직자의 경우 취재보도의 기준과 방식이 다를 수 있으나 일반 시민들의 일상적인 생활을 취재 보도할 때는 반드시 그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공인이 아니라면 설령 범죄 혐의자라고 하더라도 익명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아주 오래된 한국 법원의 언론 판결 기준이다. 코로나 19와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 의도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공식으로 인터뷰를 한 당사자를 제외하고 그 프로그램에 노출되고 싶어하지 않은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액면 그대로 방송하면 곤란하다. 그들로부터도 동의를 얻지 못했으면 촬영하지 말아야 하고 동의를 얻어 촬영했더라도 익명성을 요구하면 모자이크 처리를 해야한다. 코로나 19와 관련한 입출국, 병ㆍ의원 출입 영상의 경우에도 초상권자가 식별되지 않도록 더 깊은 주의를 해야 한다.
제32회 한국영상기자상을 받은 G1 이광수 기자의 경우‘ 마구잡이 콘크리트 타설’을 방송하면서 건설 현장에 있는 여러 명의 작업 인부들, 다수의 제보자 등에 대한 초상권 보호는 물론 맥락상 익명성이 필요한 부분을 성실하게 공들여 처리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제33회 한국영상기자상 수상자인 KBS제주 조세준 기자는 ‘기다리다 죽는 사람들’을 촬영, 방송하면서 병원 응급실에 모여든 사람들 한 분 한 분에게 방송의 필요성과 초상 사용에 대한 동의를 얻어냈다. 진정한 저널리즘의 실천을 위해 오래되고 낡은 관행을 깨고 시민의 인격권 보호까지 담아낸 이러한 영상기자들이 상을 받는 것은 아주 당연했다. 그리고 그들의 영상은 “어떤 기자가 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대학생들의 훌륭한 교재로 활용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영상기자협회가 펴낸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은 네 사람의 영상기자, 언론소송을 연구한 세 사람의 대학교수, 한 사람의 언론법 전문 변호사가 모여 작성을 했다. 작성 과정에서 현장 영상기자들의 질문과 의견을 수시로 들었다. 또 경찰청, 검찰, 시민사회의 언론 관계자의 의견을 수차례 직접 수렴하고 각 방송사의 법무팀장이나 자문변호사로부터도 직접 의견을 수렴해 제작한 것이다.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을 만든 목적은 간단명료하다. 영상보도의 정확성, 공정성 그리고 독립성을 강화하는 데 있다. 또 저널리즘을 실천하면서도 취재원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지키는 데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상기자는 인권이 침해되는 현장에 투입되는 최전선의 척후이자 인권 보호의 최후 보루라는 점에서 높은 수준의 품위유지, 무엇보다 영상기자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있게 하자는 데 있다.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이 방송사에 영상기자의 안전과 인격을 보호할 최선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촉구한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