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11 15:25

관성을 경계할 때

조회 수 42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관성을 경계할 때

 

 

(사진1)관성을 경계할 때.jpg

▲ 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장례식장 취재진 풍경 <사진/권준용>

 

 

 

 

 금요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휴대폰을 들어 밤사이 뉴스를 검색했다. 실종된 박원순 시장이 돌아왔는지, 혹은 어디에선가 시신이 발견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결과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대로였다. 7월 10일 금요일,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 병원 장례식장. 나는 검은색 계열 옷을 찾아 입고 서둘러 출근했다, 물론 취재를 위해서였다. 좁은 장례식장 입구부터 취재진과 중계진으로 가득했다. 박 전 시장의 사망 소식을 접한 시민들의 조문도 이어지고 있었다. 조문객을 상대로 취재하는 기자들이 곳곳에서 보였다. 조문객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뉴스 재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리라. 어쩌면 이번 성추행 피소 사건의 단서를 찾을 수도 있다.

 

  유력 정치인, 유명인이 조문을 마치고 나올 때마다 어김없이 취재진이 달라붙었다. 쏟아지는 질문 세례. 그들 중 일부는 인터뷰 거부 의사를 밝혔는데도 속수무책이었다. 기자들이 그 말을 곧 이듣는가? 무리를 이룬 일부 취재진은 병원 밖까지 쫓아가면서 질문했다. 타사와 취재 경쟁이 붙고 의도하지 않은 몸싸움도 일어났다. 쳐다보고 있기 힘든 장면이었다.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회의감이 드는 순간이다. 이런 소란이 박 전 시장의 성추행 피소 사건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취재진의 질문에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피해자를 지지한다.... 그 말 이외에 어떤 말을 기대한 걸까? 장례식장에서 시민들이 다 보는 가운데 조문객을 쫓아다니는 풍경은 볼썽사나웠다. 그런가 하면 언론에 크게 다뤄진 해프닝도 있었다. 이해찬 대표가 조문 왔을 때, 한 기자가 이번 사건에 대한 당 차원의 대응을 물은 것이다. 이 대표는 예의가 아니라며 발끈했고, 이 장면을 대부분의 언론사가 주요 뉴스로 다뤘다. 취재가 오히려 새로운 이슈를 만드는 모양새였다. 박 시장의 죽음에 대한 반응은 제각각이다. 성추행 피해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고 싶은 사람도 있는가 하면, 박 전 시장의 재임 기간 공을 기억하며 추모하고자 하는 사람도 있을 것 이다. ‘빈소 취재’는 이 둘 모두와 무관해 보인다. 죽음의 공간에서 취재란 ‘최소한’으로 이뤄져도 충분하지 않을까? 그날 언론 보도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 보도는 누가 왔는지, 안 왔는지, 무슨 말은 했는지 등이 주를 이뤘다. 소란스럽기만 할 뿐 정작 진상조사는 어떻게 이뤄지는지, 서울시의 구조적인 문제는 없었는 지 등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졌다. 깊이가 없었다. 박 전 시장이 사망했기 때문에 수사는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다. 인권위원회가 직권 조사단을 구성했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서울시의 방조 혐의 등이 철저하게 조사되어야 한다. 서울대 병원 장례식장 입구에서 한 시민이 취재진을 향해 호통을 친 일이 있었다.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서 구석에 있던 일부 취재진이 웃고 떠들던 것을 박 전 시장 지지자가 본 모양이었다. 현장에 있던 취재진이 머쓱해진 순간이었다. 스스로 그런 현장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것인지, 반성도 했다. 관성을 경계해야 할 때다.

 

 

 

 

권준용 / KBS (사진) 권준용 증명사진.jpg

 

 

 


  1. 작년과 달리 봄의 생기가 돌지만, 사람들의 삶은 아직

  2. 멈춰있는 시간의 현장

  3. 코로나19, 1년… 영상기자의 소회

  4. 익숙함, 설렘

  5. 영상기자 디지털 팀, 뭘 만들까?

  6. “슈퍼 태풍이 온다”

  7. 청와대 비순방 취재기

  8. 50일을 넘긴 역대 최장기 장마

  9. ‘큰불’로 시작된 취재

  10. 재난현장의 슈퍼맨

  11. 내부의 적은 “회장님”

  12. 태풍의 길목인 제주에서 제8호 태풍 ‘바비’

  13. 긴장과 평화가 공존하는 곳 연평도

  14. 관성을 경계할 때

  15. 원희룡 광복절 축사 논란... 현장취재 뒷이야기

  16. 비극은 어디서 부터 시작됐을까? 철인 3종 최숙현 선수 사망사건

  17. AI, 인류의 새로운 미래

  18. 현장에서 만난 유투버

  19. 오거돈 부산시장 사퇴 기자회견

  20. 선거, 새로움을 탐하다(1)

  21. 지하철 승강장에서 탄생한 아기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8 Next
/ 18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