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42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인쇄 첨부

Unprecedented - 코로나 1년과 영상기자

 

 

 unprecedented : [형용사] 전례가 없는, 미증유의’

 MBC에 입사하기 전, 학생들에게 수능 영어를 가르치던 시절 자주 접했던 단어. 하지만 이 단어를 수능 시험지에서 본 횟수보다 지난 1년간 해외 언론의 기사에서 접한 횟수가 더 많을 만큼, 우리는 전례가 없는 시대, 미증유의 혼란과 싸우며 1년을 문자 그대로 ‘살아냈다.’

 

 영상기자들은 보이지 않는 적(바이러스)이 창궐한 세상에서 ‘살아내다’라는 문학적 관용 표현을 온 몸으로 체감했다.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간 현장,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되는 피로 속에 고통을 호소하는 의료진들, 광복절 집회의 인파 속에서 코로나에나 걸리라며 침을 뱉는 사람들,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처절한 생존 앞에서 울부짖는 자영업자들을 만났다. 예전이었으면 ‘저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에 먼저 집중했을 현장에서, 언제부터인가 모든 이가 서로를 ‘잠재적 감염원’으로 의심하고 있는 현실이 슬펐다. 감염되는 순간 가해자로 둔갑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만들어낸 ‘마음 속 거리’가 ‘사회적 거리두기’보다 나를 더 외롭게 했다. 1년 내내 ‘은근한 공포’와 함께한 일상이었다.

 

 마스크가 부족하면 어쩌나 하는 공포 속에 보냈던 봄, 대규모 확산의 기로에서 ‘언제, 어디서 걸릴지 모르는’ 공포 속에 보냈던 여름, 방심하는 순간 밀접 접촉자로 자가 격리되면서 ‘걸렸으면 어쩌지’라는 공포 속에 보냈던 가을, 그리고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라는 공포와 함께하는 겨울.

 

 해보신 분들은 공감하시겠지만, ‘2주간의 자가 격리’는 마냥 쉴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처음 며칠은 오랜만에 찾아온 휴식의 시간이 반가웠지만, 이내 걱정과 불안이 엄습했다. 영상기자랍시고 자가격리의 일상도 틈틈이 동영상으로 기록하며 유튜브 콘텐츠(#엎어컷, #카스테라)를 만들어보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울적한 일상의 무기력함이 원래 한 몸인 듯 나를 감쌌다. 그리고 그 무기력함은 지금도 쉬이 떨어지지 않고 있다. ‘즐겁다’라는 감정을 느낀 지 꽤 오래되었다.

 

 요즘은 출근해서 카메라를 들고 일을 할 때가 하루 중 가장 활기찬 시간이다. 적어도 일을 할 때만큼은 ‘살아 숨 쉬고 있는’기분이 든다. 한 걸음 더 움직여 한 컷 한 컷 녹화 버튼을 누르며 살며시 미소짓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때, 나는 보람을 느낀다.

 

 하지만 코로나가 변화시킨 일상은 이런 기쁨도 방해한다. 얼굴을 잘 모르는 취재원을 포착해야 할 때, 마스크는 마치 Phantom의 가면처럼 여겨진다. 간혹 가까이에서 인터뷰하고 있던 취재원이 갑자기 마스크를 내릴 때, 티를 내지는 못 하지만 나도 모르게 움찔하곤 한다.

 

 ‘취재냐 안전이냐?’

 지난 1년간 끊임없이 현장에서 스스로에게 던졌을 질문일 터. 우리를 내보내야 하는 캡과 데스크들은 매번 ‘안전이 우선’이라고 끊임없이 강조했지만, 솔직히 지난 1년간 나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취재원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게 우리가 할 일 아닌가. 여력이 된다면 영상기자협회 차원에서‘취재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취재진이 운집한 현장에서의 대규모 감염 사태는 아직 벌어지지 않았지만, 이런 곳에서‘사회적 거리두기’가 되지 않는다는 지적은 한 번쯤은 짚어봐야 할 대목이다. 언제까지 운에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뉴스 현장의 최일선에 서 있는 기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며칠 전, 코로나 생활고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영업자에 대한 사연을 접했다. 7세, 5세, 그리고 이제 겨우 5개월 된 세 자녀를 둔 그분은 아이들을 처가에 보낸 사이 목을 맸다. 그의 시신을 처음 발견한 이는 그의 아이였다. 눈물이 쏟아졌다. 이 지면을 빌려 망자의 명복을 빈다. 코로나 1년, 오늘을 ‘살아내는 것’은 이토록 처절하고 힘든 일이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이어져야 하고, 뉴스는 계속 제작되어야 한다. 이 ‘unprecedented’의 시대, 수많은 ‘unprecedented’를 기록하는 사관(史官) 역할을 묵묵히 수행 중인 영상기자들에게 존경의 마음과 함께 조금 더 버틸 수 있는 용기, 방역 수칙을 지키자는 당부, 그리고 진심 어린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김동세/ MBC (사진) MBC 김동세 증명사진.jpg

 


  1. Unprecedented - 코로나 1년과 영상기자

    Unprecedented - 코로나 1년과 영상기자 unprecedented : [형용사] 전례가 없는, 미증유의’ MBC에 입사하기 전, 학생들에게 수능 영어를 가르치던 시절 자주 접했던 단어. 하지만 이 단어를 수능 시험지에서 본 횟수보다 지난 1년간 해외 언론의 기사에...
    Date2021.03.10 Views424
    Read More
  2. 느린 국회, 멈춘 영상기자

    느린 국회, 멈춘 영상기자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유튜버들이 민경욱 전의원 취재하는 모습 ▲2020년 8월,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서울지역), 후보 영상 연설모습 일반적으로 변화에 가장 둔감한 조직은 국회, 변화에 가장 둔감한 이들은 정치인이라고 한다. #1....
    Date2021.03.09 Views381
    Read More
  3. [줌인] 행복하고 의미있는 2021년으로 만들어 나가시길

    [줌인] 행복하고 의미있는 2021년으로 만들어 나가시길 어느덧 2020년이 저물었습니다. 2020년엔 어느 해보다 이슈가 많았습니다. 가장 큰 이슈는 코비드-19(COVID-19) 일 것입니다. 신종 코로나의 확산은 전 세계를 완전히 새로운 생활패턴, 완전히 새로운 관...
    Date2021.01.08 Views328
    Read More
  4. 마스크가 바꾼 2020년 취재현장

    마스크가 바꾼 2020년 취재현장 포스트 코로나 시대, 취재현장 보도 윤리·취재 방식도 변화 ▲지난 12월 21일 가족 새해 소망을 듣기 위해 방송사 취재진이 마이크 연장봉을 이용해 마스크 쓴 시민을 인터뷰하고 있다. ▲지난 10월 15일 종로 경찰서 앞에...
    Date2021.01.08 Views486
    Read More
  5. 다양한 경험, 재치 그리고 순발력 뉴미디어 콘텐츠 만드는 데 밑거름

    다양한 경험, 재치 그리고 순발력 뉴미디어 콘텐츠 만드는 데 밑거름 ▲KBS대전뉴미디어팀에서근무하고있는필자 지난 2월 KBS 대전총국 내 새로운 조직인 디지털 관련 부서가 생긴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다큐멘터리 제작을 갈망해 왔지, 사실 디지털 분야는 그...
    Date2021.01.08 Views516
    Read More
  6. 데이터 저널리즘과 영상

    데이터 저널리즘과 영상 ▲SBS8뉴스/ 마부작침(데이터저널리즘) / 법원은‘또다른조두순들’에어떤판결을내렸나 ▲SBS8뉴스/ 마부작침(데이터저널리즘) / 키워드로본'스쿨존교통사고'…사각지대도확인 데이터 저널리즘팀의 뉴스가 새롭...
    Date2021.01.08 Views326
    Read More
  7. 영상기자라는 이야기꾼

    영상기자라는 이야기꾼 ▲〈카스테라EP.15〉코로나 2주 자가격리, 기자가 직접 겪고 말씀드립니다. ▲〈카스테라EP.16〉조두순 출소 현장 취재기/ 조두순 사건 과거와 현재 우리는 가진 이야기가 참 많은 사람들이다. 영상기자라는 직업이 아니었다면 가지 않았...
    Date2021.01.07 Views425
    Read More
  8. 자가격리 14일간의 기록

    자가격리 14일간의 기록 ▲필자가 자가격리 중 먹었던 음식과 용품 서울 시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면서 나도 검사를 받았다. 검사결과 음성이 나왔음에도 밀접 접촉자로 분류되어 2주 간의 자가격리를 했다. 14일 동안의 격리가 시작된 것이다. 11월3일~...
    Date2021.01.07 Views375
    Read More
  9. 언시 장수생이 언시 장수생들에게

    언시 장수생이 언시 장수생들에게 모두가 힘든 코로나 시국입니다. 이 시국에 안 힘들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만, 오래된 불안이 불행으로 번지고 있을 ‘언시 장수생’들에 대한 걱정이 앞섭니다. 얼굴도 모를 장수생들을 걱정하는 건 지나친 오지...
    Date2021.01.07 Views928
    Read More
  10. 무선마이크 900Mhz 전환기

    무선마이크 900Mhz 전환기 ▲MBN 영상기자들이 기획취재 장비운용계획을 의논하고 있다. 올해 새로운 무선마이크 장비를 지급받은 영상기자가 많을 것이다. 700Mhz 무선마이크 사용이 2021년 1월 1일부터 금지되기 때문이다. 그간 무선마이크 주파수로 사용하던...
    Date2021.01.07 Views1383
    Read More
  11. 이제 자야지? 이재야!

    이제 자야지? 이재야! ▲막 태어난 딸 '이재'를 처음 안아보는 필자 2020년 11월 2일 아침 6시 아내에게 진통이 찾아왔다. 불안감과 설레는 마음을 뒤로 하고 야간 근무를 서기 위해 오후 4시 30분 회사로 출발했다. 다음날 오전 3시, 성남에 사는 처제...
    Date2021.01.07 Views415
    Read More
  12. “영상기자와 촬영감독, 뭐가 달라?”

    “영상기자와 촬영감독, 뭐가 달라?” ▲지난1월25일영상보도가이드라인광주전남지부온라인교육 <사진왼쪽부터> 나준영부장(MBC뉴스콘텐 츠편집부), 양재규변호사(언론중재위원회), 윤성구기자(KBS 전략기획부), 이승선교수(충남대언론정보학과) 대학...
    Date2021.01.07 Views672
    Read More
  13. “10년 2개월 21일, 딱 그만큼 걸려서 다시 입사한 것”

    “10년 2개월 21일, 딱 그만큼 걸려서 다시 입사한 것” ▲지난 6월 초, 소양강 상류에서 외래어종 침투와 생태교란 문제를 취재한 필자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재능이 없는 편이라 내 실력에 낙담하기 일수였다. 그러다가 &lsqu...
    Date2021.01.07 Views403
    Read More
  14. [줌인]힌츠페터가 지금 언론에 시사하는 것

    [줌인]힌츠페터가 지금 언론에 시사하는 것 “나는 그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를 모두 들었다. 너무 슬퍼 눈물을 흘리면서도 나는 기록했다. 한국 언론에서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진실이 얼마나 위험한지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진실을...
    Date2020.11.18 Views451
    Read More
  15. MBC ‘보도영상연구회’

    MBC ‘보도영상연구회’ ▲ 지난 9월 21일‘4k 카메라와 UHD프로세싱’을 주제로 진행된 MBC보도영상연구회 세미나에 참가한 MBC 영상기자<사진>. ▲ 1998년부터 1999년까지 2년 사이 진행된 보도영상연구회 포럼내용을 정리한 제1호 자료집...
    Date2020.11.18 Views338
    Read More
  16. 영상기자에게 출입처란

    영상기자에게 출입처란 ▲ 2019년 겨울, 국회 영상기자실에서 영상기자와 함께 2019년 말, 신입 때부터 이어진 약 3,650일이라는 약 10년간의 사회부 생활이 끝나고 국회로 출입처 발령을 받았다. 모든 변화에는 기대감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법. 나 역시 그동안...
    Date2020.11.17 Views430
    Read More
  17. ‘좋은 취미’에 관하여

    ‘좋은 취미’에 관하여 취미를 선택받는 모든 사람에게 ▲ 만화를 좋아해 땡땡(tin-tin)의 대모험 전시회에 참석한 필자 취미란 무엇인가? 취미의 ‘취(趣)’는 ‘서두르다’, ‘빨리 달려간다’는 뜻이고, ‘미...
    Date2020.11.17 Views345
    Read More
  18. 길(路)의 재발견

    길(路)의 재발견 ▲ 성산대교 밑 보도 한쪽에 잠자리를 사냥한 거미의 모습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가 시작됐다. 첫 보도는 원인 모를 폐렴으로 우한 시민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때는 이것이 나의 삶과는 상관없을 줄 알았다. 그러...
    Date2020.11.17 Views269
    Read More
  19. 도심 속 고궁 산책

    도심 속 고궁 산책 ▲ 올여름, 경복궁 근정전 앞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의 모습 “서울은 천박한 도시.” 지난여름, 여당 대표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서울을 가리켜 아파트값만 얘기하게 되는 천박한 도시로 표현해 논란이 됐다. 행정수도 이전의 필...
    Date2020.11.17 Views323
    Read More
  20. 판소리로 춤을 추게 만드는 밴드 이날치를 만나다

    판소리로 춤을 추게 만드는 밴드 이날치를 만나다 ▲ 지난 10월 초, 파주의 한 연습실에서 연습에 한창인 이날치 밴드 따랑 땅 따랑~ 따랑 땅 따랑~’ 댄스곡이 시작될 것 같은 130bpm의 흥겨운 베이스 리듬 뒤에 한번 들으면 계속 흥얼거리게 된다는 킬링...
    Date2020.11.17 Views384
    Read More
  21. 귀사(貴社)의 테이프(Tape), 안녕하십니까?

    귀사(貴社)의 테이프(Tape), 안녕하십니까? ▲ MBC강원영동 방송사가 보관하고 있는 테이프 자료<사진> 14,040개. 저희 회사가 보유한 테이프 개수예요. 손으로 하나하나 셌으니, 약간의 오차는 있을 수 있지만 크게 틀린 숫자는 아닐 거예요. 1986년 자사 TV개...
    Date2020.11.17 Views341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Next
/ 11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