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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뛰는 일, 한국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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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6월 12일 정부 중앙 청사를 급습하려는 시위대와 대치 중인 홍콩 경찰(사진=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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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7월 1일, 매년 열리는 홍콩 반환 22주년 기념식이 열리던 날,

홍콩 시민 수십만 명이 범죄인 인도법 반대에 시위하고 있다(사진=필자)

 

 

 저는 10살 때 한국을 떠나 중국 천진에서 10년, 홍콩에서 5년을 살고, 2019년 말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 이유로 누군가 제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조금 당황스러워지곤 합니다. 부모님이 아직도 중국에 살고 계실뿐더러 어릴 때 한국에서 보낸 기억이 많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초등학생 때부터 아버지께서는 저와 제 동생에게 꿈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게끔 하셨습니다. 물론 꿈이 바뀌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저는 계속 기자가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어떠한 기자가 되고 싶냐는 물음에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기자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저는 홍콩대학교 저널리즘학과에 진학해 학업과 일을 병행하며 영상취재기자의 꿈을 키워 나갔습니다.

 

 2017년부터 AP, AFP에 근무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입니다. 홍콩 정부는 2019년 초 범죄인 인도법을 개정하여 대만뿐 아니라 중국, 마카오 등에서도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홍콩의 반중 인사나 인권 운동가가 중국 본토로 송환되는데 해당 법안이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2019년 중순 수많은 홍콩 시민들은 범죄인 인도법에 반대하며 길거리에 나왔습니다.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는 1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시위로 확장되었고 중국의 정치적 간섭에서 벗어나려는 민주화 운동으로까지 확대되었습니다.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습니다. 하루하루 취재하며 무서웠던건 최루탄도 물대포도 경찰의 폭력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제 부족한 경험과 실력이었습니다. 스스로를 안전하게 보호하면서 최고의 영상을? 해야한다는 의무감도 견뎌내야 했습니다. 온몸이 흥건히 젖고 두 발이 물집과 멍투성이가 되도록 카메라를 들고 뛰었지만 아프고 힘든 지 몰랐습니다. 시위에 참여한 친구들이 폭행당하고 연행되어 가는 동안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매일 현장에 나가 자유를 외치는 홍콩인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일을 할 수 있음에 정말 감사했습니다. 아마도 그때 영상 취재기자로서 제일 많이 배우고 성장했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이유로 오랜 해외 생활을 마무리하고 한국에 귀국한 후 연합뉴스TV에 입사하게 됐을 때 얼마나 가슴이 벅찼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홍콩에서와는 달리 부서에서 여성은 제가 유일했고 현장에서도 여성 영상기자는 많이 볼 수 없었습니다. 때로는 체격 좋은 남자들 사이에서 몸싸움을 해야 하기도 하고 분명 여자로서 부담스러운 상황들이 있긴 하지만 그런 부담은 오히려 저를 일에 대해 더 고민하고 노력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결국 시청자에게 뉴스를 생생히 전하는 영상기자에게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입사한 지 일 년 반이 되어갑니다. 초반엔 모국이지만 낯선 땅 한국에서 그리고 전원이 남성인 부서에서 제가 잘 적응해 나갈 수 있을지 걱정도 많았지만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좋은 선후배 덕분에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다는 말씀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일 년 반 동안 코로나19, 장마, 태풍, 폭설 등 기억에 남는 취재가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오늘이 대구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지 일 년이 되는 날인만큼 대구 출장이 기억에 떠오릅니다. 입사한 지 몇 달 안 됐을 때 자원해 2주 동안 코로나19 취재 및 현장 연결을 하러 대구에 내려가 있었습니다. 그때 저마다의 어려움을 호소하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제가 왜 기자가 되고 싶었는지를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또한, 여러 관계자들과 타사 선배들과 현장을 조율하고 현장에 계신 취재기자 선배들과 서울에 계신 방송에 관련된 타부서 선배들과 소통하고 협업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기사 작성도 촬영도 편집도 대부분 혼자 하던 제가 제일 배워야 했던 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항상 영상 취재기자로서 성장할 수 있기를, 또 지난날들을 밑거름 삼아 더 많은 현장을 저만의 시선으로 카메라에 담아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최승연/ 연합뉴스TV (사진) 최승연 증명사진(연합뉴스TV).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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