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질문이 달라졌습니다”
지난 6월 8일자 <중도일보>에 “질문과 침묵”이라는 제목으로 게재된 이승선 교수의 칼럼을 본보가 전재를 청하였습니다. 원문의 일부를 가져오되, 필자가 이후 몇 차례 강의를 더 진행하면서 느낀 점을 추가하여 싣습니다.
[편집자 주]
좋은 질문은 사람을 춤추게 한다. 질문하는 사람은 궁금증을 풀어서 좋다. 대답하는 사람도, 자신의 지식을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어 좋다. 청중의 좋은 질문은, 강의자의 빛바랜 강연을 빛나게 할 수 있다. 질문하는 청중은 강의자의 지식이 정교해지도록 다듬어주는 길라잡이다. 질문이 곁들여진 강연은, 강의자와 청중이 합세해 만들어가는 한 편의 공연이다. 설령 청중이 침묵하더라도 강의자는 청중의 눈빛과 자세를 배운다. 청중의 표정을 읽을 수 있는 온라인 줌 강의에서는 더욱 그렇다. 며칠 전 영상기자들과 강의도 그랬다.
강의는 야밤에 있었다. 실시간 원격 강의였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눈이 감길 법한 시간대였다. 기자들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기자들은 묻고 또 물었다. 영상기자들은 법적인 책임 외에 윤리적 비난을 감당해야 할 때도 많다. 눈앞의 취재원의 생명이 위태로운 듯하다. 계속 촬영을 해야 하는가, 아니면 설령 별것 아닌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우선 취재원의 위험을 선행적으로 확인해야 하는가? 영상기자들은 자신에게도 계속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학교는 그 기준과 사례를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는다. 언론사도 기자의 교육이나 재교육에 인색하다. 반면 시민들의 권리의식은 크게 신장되었다. 언론소송으로 응수하는 시민들이 크게 늘었다. 답답하기 짝 없었다.
영상기자들은 협회를 중심으로 지혜를 모아 나갔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한원상 전 회장이 혼신의 힘을 쏟았다. 현장의 영상기자들이 제기한 구체적인 질문들을 취합했다. 수백 개의 질문이 쏟아졌다. 여러 차례 시민단체와 검찰청, 경찰청, 언론관련 기구 전문가들의 자문을 구했다. 스스로 묻고 답하며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일이었다. 취재보도 가이드라인을 준수하지 않은 영상보도에 대해서는 이달의 기자상이나 올해의 영상기자상 수상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것도 유례없는 일이었다. 필자는 옷깃을 여미었다. 영상기자들에게 저널리즘의 원칙과 결기를 배웠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작년 가을부터 영상기자협회는 전국의 영상기자들을 대상으로 자체 교육을 시작했다. 하루 일과를 마친 야밤이나 주말 시간을 이용했다. 열다섯 차례에 걸쳐 교육이 진행되었다. 수백 명의 국내 언론사 영상기자들이 동참했다. 새로 집행부를 맡은 나준영회장이 올해 교육 일정의 장을 다시 열었다. 올해 교육에는 영상기자뿐만 아니라 취재기자, 외신 기자들의 교육 참여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 AP, 로이터, ABC뉴스, NHK, 후지TV 등 유수한 글로벌 언론사 기자들이다. 외신기자들 역시 매우 유익하고 좋은 질문을 공유해 주었다.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어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온라인 실시간 줌 교육화면에서, 그들은 한 점 흐트러짐 없이 바른 자세로 카메라를, 교육에 참여한 동료기자들의 얼굴을, 강사의 눈과 입을 초지일관 응시했다. 학생시절부터 훌륭한 영상저널리스트를 꿈꾸었던 박인학 기자를 온라인에서 만난 것도 큰 감동이었다. 박 기자의 또렷한 시선과 곧은 자세를 온라인 영상으로 접하며 현장의 영상기자들 모두가 멋진 청년 박인학 같았으리라 여겨졌다. 실시간으로 원격 영상강의가 가능한 시대에, 꼿꼿한 청중의 형형한 눈빛을 마주할 때마다 그들의 침묵에서도 배운다. 기자들은 영상을 통해 청중이 발현할 수 있는 힘의 크기를 스스로 구현했다. 영상기자 여러분에게 경의를 표한다
(중도일보 2021.6.8. <시사오디세이> 중)
올해 세 차례 영상기자들과 질문을 겸한 토론을 마쳤습니다. 작년에 비해, “질문의 내용”이 달라졌다는 생각을 합니다. 예를 들면 “시민들에게 초상권이 있느냐”라는 것이 작년의 질문이었다면 올해는 “어떤 경우에 초상권 침해의 법적 책임을 지는가, 피할 방법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고 계십니다.
영상자료의 활용과 관리에 대한 질문도 있습니다. 사고나 자살 등으로 사망한 사람의 영상촬영과 활용 가능 여부, 행정집행 현장에 동행 촬영의 가능여부, 피의사실의 공표와 국민의 알 권리 조정, 몰래카메라나 잠입취재 영상의 활용여부, 취재현장의 질서와 안전을 유지하면서 유투버 등과 마찰을 피할 수 있는 지혜 등 질문이 끝이 없습니다. 한국과 방송보도 문화와 규범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는 외신기자들의 질문도 이어집니다. 취재현장의 규범뿐 아니라 영상이 방송으로 송출되는 지역의 법과 문화 규범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는 질문들입니다.
인권 존중과 저널리즘 구현을 실천하고자 하는 영상기자들의 의지 느껴
한국의 영상기자들이 저널리즘 현장의 많은 것을 바꾸고 있습니다. 극한의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극도로 위험하고 중대한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첨병으로서 촉각일까요? 도저한 시민들의 인권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저널리즘을 구현해야 한다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를 누구보다 빨리 수용하고 실천하려는 영상기자들의 의지를 느낍니다. 각 방송사 영상 데스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을 더 많이, 더 깊이, 더 멀리 확산되게 하는 데 누구보다 큰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상데스크, 편집자, 자료관리자 등 뉴스 제작 일선에서 영상기자 역할이 매우 중요한 시기
영상편집과 영상자료를 관리하는 기자들의 역할도 결정적으로 중요할 것입니다. 취재원을 만나 영상자료를 처음 생산하던 때의 약속과 방송사용 후 주의할 점들을 잘 기록해서 관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자료 영상을 사용하는 것이 불가피하거나 필요할 때, 자료 영상이라는 점을 “처음부터 끝까지” 화면에 표기해 주는 것은, 독자들에게 정직한 영상정보를 제공하는 과정입니다. 또 법적인 책임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영상을 기획하고 생산하고 사용하고 관리하고 재활용하는 제반의 절차와 과정 하나하나가 모두 영상기자들의 무한 애정과 주의를 필요로 하는 것 같습니다. 가까이 갈수록, 알면 알게 될수록 영상기자 여러분들이 존경스럽습니다. 기회가 닿는다면, 다시 영상보도가이드라인 교육 현장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승선 / 충남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