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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츠페터 국제 보도상 심사 후기 
'응답의 책임감’(answerabi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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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특집부문 수상작 ‘필사의 여정1, 2’화면 갈무리

 ‘영상 저널리즘’의 근본적인 힘은 실제로 발생한 사건의 현장에 없는 수용자들을 그 사건의 목격자(witness)로 만드는 데 있다. ‘영상’ 저널리즘은 수용자가 상상력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이 마치 사건 현장에 있는 것처럼 실재감을 느끼도록 한다. 텍스트로 구성된 뉴스는 사건에 대해 세세한 정보를 전달해주지만, 수용자는 이 정보를 토대로 상상력을 발휘해서 사건 현장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텍스트와 달리 영상으로 구성된 저널리즘은 사건 현장을 직접 목도하는 듯한 느낌, 학술적 용어로는 ‘현존감’(presence)을 수용자에게 제공한다. 
 영상 ‘저널리즘’은 영화나 드라마 같은 허구적 장르의 영상물과도 구분된다. 수용자는 허구적 장르의 영상물을 시청하면서 등장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연민이나 분노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지만, 도덕적 책임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허구적 장르 속의 사건은 실제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가공된 사건이나 실제 사건을 모사한 사건에 불과하다. 영화 속에서 묘사되는 끔찍한 고문이나 살인 장면을 보고 몸서리치면서도 수용자가 영화 속 희생자와 도덕적 연대의식을 갖고 압제자에 대해 항의하는 행동에 나서지는 않는다. 실제 사건을 기록한 영상물이라야 수용자는 영상 속 인물과 연대의식과 더불어 그에 대한 ‘응답의 책임감’(answerability)을 갖게 된다. 그리고 역사가 상기시켜주는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저널리즘이 던져주는 오늘의 사건일 때 응답 책임감은 더 커진다.         
 카메라를 메고 어렵게, 때로는 목숨까지 걸고, 사건 현장을 촬영하는 기자는 사건에 대한 증거를 수집한다.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은 이 증거를 수용자에게 제시한다. 이 생생한 증거를 접한 미디어 수용자는 몸소 사건 현장에는 없었지만 사건을 목격하고 그 사건의 발생을 도저히 부정할 수 없게 하는 증인이 된다. 이렇게 보면 영상 저널리즘은 블록체인 기술과 구성 논리가 비슷하다. 블록체인 기술은 정보를 조각조각 분산 저장하여 조작이나 변조가 불가능하게 한다. 마찬가지로, 영상 저널리즘은 사건에 대한 증거를 수용자의 의식 속에 분산 저장하고, 그 증거를 가지고 있는 목격자들이 도덕적 책임감을 느끼고 연대하게 하며, 연대한 진실이 선동과 조작 그리고 ‘가짜뉴스’에 맞서 승리하게 만든다. 
5.18 광주의 참상을 카메라에 담아 국제 사회에 알린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는 영상 저널리즘 정신의 표본이다. 그의 공헌으로 5.18 광주는 국경을 넘어 여러 나라에 목격자를 갖게 됐다. 군사정권과 국내 언론이 광주의 참상을 부정하고 왜곡하고 침묵 속에 가두려 했으나, 국경을 넘어 존재하는 증거를 지우거나 다수 목격자의 눈을 가릴 수는 없었다. 힌츠페터 기자 덕분에 국경 너머의 수용자들은 5.18 광주에 대한 진실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게 되었고, 이는 한국 민주주의를 촉진하는 데 뒷심으로 작용했다. 
 2021년은 저널리즘의 역사에서 뜻깊은 해이다. 최초로 두 명의 언론인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필리핀의 독재 정치에 대한 저항의 아이콘 마리아 레사와 러시아에서 부패와 인권탄압을 보도한 드미트리 무라토프가 그 수상자였다. 노벨상 위원회는 “민주주의와 언론자유가 더욱더 역경에 처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중국, 러시아,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를 제외하고도 미국을 비롯해 유럽, 중남미, 아시아의 많은 비사회주의 국가에서도 민주주의와 언론자유가 후퇴하고 있다. 올해 한국영상기자협회와 5.18기념재단이 공동으로 제정한 ‘힌츠페터 국제보도상’에 출품된 많은 영상이 이를 증명한다. 심사하면서 세계 곳곳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신음을 들을 수 있었다. 
 신체 구금을 피하기 위해 폴란드에 기반을 두고 유럽에서 가장 억압적인 국가 벨라루스의 참혹한 상황을 국제 사회에 알리는 유튜브 동영상, 올해 봄 미얀마 쿠데타 당시 장갑차가 배치되고 시위군중을 향해 최루탄이 난사되는 현장을 담은 영상, 태국의 젊은 민주주의 운동가를 극비리에 인터뷰한 기록, 중국에서 나이키와 H&M 제품 불매운동으로 이어진 신장 위구르 목화 농장의 노동 착취 보도, 기아와 질병에 시달리며 중남미 국경을 넘는 이민자들과 동행한 기록, 국제적 주목을 받지 못했던 아프리카 절대왕정 국가 에스와티니에서 인권유린을 고발하는 영상, 세계 각국의 인신매매를 다룬 기획 보도 등. 수상작 선정 여부와 관계없이, 이들 영상 저널리즘은 글로벌 수용자 또는 국제 사회의 목격자와 연대를 지향한다.
 힌츠페터 상은 앞으로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상이 될 것이다. 이 상의 의미는 힌츠페터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상에서 그치는 아니다. 오늘도 민주주의가 억압받고 인권이 유린당하는 현장에서 증거를 수집하는 영상 저널리즘과 글로벌 수용자들이 구축하는 진실의 네트워크에서 힌츠페터 상은 그 허브 중 하나로서 기능하게 될 것이다.


김선호 / 한국언론진흥재단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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