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보도되는 자의 권리’이자 ‘보도하는 자의 윤리’로서 ‘초상권’
요즈음 지구촌 곳곳에서 ‘초상권’소송이 범람하고 있다. ‘비주얼 커뮤니케이션(visual communication)’시대의 도래와 함께 ‘초상권 인식’이 확산되면서 지역과 세대를 초월하여 ‘초상권’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오스트리아에서는 아빠가 딸의 사진을 소셜미디어(SNS) 상에 공유한 것이 초상권침해 문제로 확대된 흥미로운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18세 딸이 소셜미디어에 올려 진 자신의 어릴 때 사진을 삭제해달라는 요구와 함께 시작되었다. 자신의 사진이 부끄럽다며 삭제를 요구하는 딸에게, 아버지는 “사진에 대한 권리는 모두 나에게 있다.”며 삭제를 거절하자 딸은 초상권 침해로 아버지를 고소했다. 소송으로 번진 부녀간의 초상권다툼이라는 점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다. 딸의 주장은 명확했다. “아빠가 올려놓은 유년 시절 자신의 사진들이 그녀에게 인생을 비참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법원은 초상권이 딸에게 있다고 판결했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초상권사례가 있었다. 지난 “2014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신 모 씨 등 2명이 ‘SNS에 올린 사진을 복사, 게재해 초상권과 사진저작권을 침해했다’며 박 모 씨를 상대로 낸 사진 게재 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얼굴 등을 함부로 촬영해 공표되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며 동의 없이 사진을 게재하는 것은 초상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였다. 그런가 하면, 국내의 한 온라인 연예매체 A는 지난 2011년 대기업의 정모 부회장과 그와 혼담을 진행 중이던 한모씨의 초상을 몰래 촬영하여 보도하였다. 이에 대하여 정씨 측은 기사 삭제를 요청했으나 거부당하고 다음 날, 상견례 자리를 다시 몰래 취재해 동의 없이 보도한 A를 초상권침해를 들어 기사 삭제 및 위자료 2억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에 대법원은 A의 보도는 분명한 사생활 침해라고 원심판결을 확정하고 기사 삭제와 위자료 15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처럼 이미 우리법원도 오래 전부터 일반인격권에 ‘초상권’을 포함시켜 엄격하게 다루는 판례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조금 수치스런 초상권사례지만, 이른바 ‘코피노(코리안+필리피노=한국인 아버지와 필리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라 불리는 사람들이 초상권문제의 도마에 오르기도 한다.
코피노들이 아버지를 찾는다면서 인터넷 등에 그들의 어머니가 남편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의 사진을 올리면서 초상권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아이들이 아빠를 찾고 있다’라는 글과 사진이 사이버공간에 업로드 된 사진 중에는 실제 아버지가 아닌 엉뚱한 사람도 있어서 이들이 패가망신당하는 등 당사자들로서는 회복불능의 충격적인 사례들도 없지 않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남자는 혀끝, 손끝 그리고 거시기 끝, 이렇게 세 끝을 조심하라고 했던 옛 말에, 요즈음에는 ‘꼴(초상)값’을 하나 더 보태서 ‘세 끝에 꼴값’을 조심해야 한다는 우스개소리도 등장했다고 한다. 특히 언론에 종사하는 기자들은 무엇보다도 형사피의자의 초상권을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수사기관에 피의자를 수행하며 포토라인 안에서 부수적으로 찍힌 관계자까지도 초상권침해를 주장하고 나섰다 하니 그 판결의 끝이 자못 궁금해진다. 이런 사람들 중에는 대개 평소에는 ‘국민의 알권리’차원에서 ‘언론의 자유’를 강조하다가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이미 남의 이야기처럼 자신의 권리에만 집착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이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은 ‘개인의 인격권으로서 초상권’이 정당한 방법으로 취재되고 보도된 ‘언론의 자유’보다 결코 우월한 지위에 있지 않다는 점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만일 그가 공인이나 공적 인물이라면 그는 국민의 알권리 대상으로서 개인의 초상권보다 언론의 자유가 더 우월한 지위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비록 외국에서는 부녀간이나 심지어 연인사이에서도 심각한 다툼으로 초상권이 돌출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러나 어떠한 경우라도 공정하고 정당한 언론의 자유를 위협하는 무모한 초상권다툼은 자제되고 배척되어야 마땅하다. 주지하다시피 ‘초상권이란 한마디로 사람이 자신의 초상에 대해 가지는 일체의 인격적·재산적 이익을 내용으로 하는 권리로서, 사람이 자신의 얼굴 기타 사회통념상 특정인임을 식별할 수 있는 신체적 특징에 관하여 함부로 촬영되고 공표되지 아니하며 광고 등에 영리적으로 이용되지 아니할 법적보장’이다. 따라서 누구든지 초상권을 운운하거나 초상권침해소송을 제기하기에 앞서, 적어도 자신이 국민의 일원으로서 ‘알권리’를 주장했을 때와 이율배반적인 모순은 없는지 입장 바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도 그렇다면, 과연 자신의 초상이 정말로 ‘함부로 촬영되고 공표된 것인 지’도 곰곰이 따져볼 일이다. 왜냐하면 ‘초상권’이란 ‘보도되는 자의 권리’이자 ‘보도하는 자의 윤리’로서 정교한 균형을 유지할 때 비로소 그 의미와 가치가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류종현 초빙교수 /부산대 신문방송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