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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로 촉발된 한반도 위기상황에 묻혀 한국 미디어가 의외로 무관심한 분야가 

미국‧중국‧러시아‧이란‧카타르‧베네수엘라 등지에서 펼쳐지고 있는 ‘소리 없는 세계통화전쟁’이다. 

통화전쟁은 실제무기를 가지고 싸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드러운 전쟁’(soft war)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통화전쟁은 결코 부드럽지 않다. 그래서 결과에 따라서 한 국가의 운명뿐만 아니라 

세계 정치‧경제‧안보의 판도를 좌우할 수도 있다.

지난 9월 3일 북한이 수소탄을 실험한 당일 중국 시안에서는 신흥경제 5국으로 구성된 브릭스(BRICS) 정상회의가 개막되었다. 


필자는 이 회의의 무대 뒤에서 논의된 중요한 주제가 다름 아닌 ‘탈달러화’(De-Dollarization)를 둘러싼 통화전쟁이라고 생각한다. 

중국과 러시아를 주축으로 브릭스 국가의 ‘탈달러화’ 움직임은 2000년대 후반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최근에는 이러한 움직임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탈달러화’를 주도하는 이면에는 

미국 중심의 세계금융체제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이 내재되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경제 및 금융 시스템은 기축통화인 달러가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그런데 제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달러의 유동성 증가와 가치하락으로 

인해 국익에 막대한 손실을 입어왔다. 

특히 국제무역결제가 대부분 미국 달러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미국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 나라가 경제제재를 받는 등 기존의 국제금융질서가 불공정하다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중국은 미국의 적대국인 러시아와 더불어 ‘탈탈러화’를 가속화시켜 이러한 불공정한 세계질서를 재편하고자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탈달러화’를 시도하는 나라는 미국의 정권교체 대상이 되는데, 특히 약소국으로서 ‘탈달러화’를 시도한 나라는 미국으로부터 가차 없는 경제적‧군사적 보복을 당했다. 

그 첫 번째 나라가 후세인의 이라크였다. 

오랫동안 미국 등 서방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석유국유화 조치를 단행한 후세인은 2000년 10월 원유거래 지급결재 수단으로 달러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유로로 변경한다고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그러자 미국은 후세인을 정권교체 대상으로 지목하고 2003년 3월 대량살상무기 보유를 문제 삼아 전격적으로 이라크를 침공했다. 


아들 부시 대통령 재임 시절 재무장관을 역임한 폴 오닐(Paul O'Neill)은 2004년 출판한 저서에서 2001년 9/11 사건이 발생하기 수개월 전에 이미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침공계획을 세우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나중에 유엔에서도 확인했듯이 이라크는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지 않았다. 

이는 미국의 ‘성동격서’ 전략이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주요 이유는 후세인의 ‘탈달러 선언’이었다.

후세인 정권이 교체되자 ‘친미정권’이 가장 먼저 취한 조치 중의 하나가 바로 원유 거래에서 달러로의 환원조치였다.


비슷한 사례로 2010년 리비아의 가다피가 이집트 무바라크 및 튀니지의 벤-알리 정부와 공동으로 

원유 거래 통화를 기존의 달러에서 ‘아랍금디나르’(Arab Gold Dinar)로의 전환 시도와 

‘범아랍은행’(Pan-Arab Bank) 설립을 추진하자 미국은 달러패권 도전에 대한 응징차원에서 ‘아랍의 봄’ 형태로 반군 및 시위대를 무장시켜 3개국 정부를 전복시켰다. 

전 미국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은 유출된 이메일 자료에서 ‘탈달러화’와 카다피 정권붕괴의 연관성을 인정한 바 있다.


핵무기 보유국인 중국과 러시아는 ‘탈달러화’를 선도해 왔고, 미국은 두 나라를 적대적인 나라로 규정하여 경제제재 초치를 취해 왔다. 

‘상호확증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 이론에서 볼 때, 미국이 핵무기를 가진 대국과 군사력을 동원한 전쟁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다른 이유를 들어 경제제재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 

또한 중국 및 러시아와 친한 나라로 석유국유화 조치를 한 산유국이나 중국과 원유거래 시 위안화를 사용하여 ‘탈달러화’를 시도하는 국가는 미국의 경제제재 및 정권교체 표적이 되는데, 최근의 표적은 러시아‧이란‧카타르‧베네수엘라를 꼽을 수 있다. 

3개국 모두 산유국 또는 가스 생산국으로서 미국과 사이가 좋지 않고 중국에 에너지를 수출하는 나라다.

최근 들어 중국과 러시아의 ‘탈달러화’ 추진에 특이한 움직임이 감지된다. 

그것은 바로 금과 관련이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대량의 금을 구매하여 금보유량을 확대해 왔다. 

두 나라가 금보유량을 확대하는 이유는 향후 ‘탈달러화’의 가속화, ‘양적완화’ 등으로 인해 기축통화인 달러의 구매력이 급격히 떨어지게 되어 미국이 달러를 구하기 위해 ‘특정한 초치’를 취할 경우 자국통화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세계은행 출신 경제학자이자 지정학 분석가인 피터 쾨닉(Peter Koenig)에 의하면, ‘특정한 조치’의 의미는 

미국이 사실상 지배하는 국제통화기금(IMF)에게 향후 대량의 달러 가치 하락을 목적으로 일종의 금본위제 형태의 새로운 시스템 채택을 요구하는 것이다. 

만약 ‘특정한 조치’가 이루어져 특정국이 금보유량 또는 금으로 태환이 가능한 화폐가 충분하지 않을 경우 달러 빚을 갚지 못해 새로운 형태의 달러 부채국이 되어 버린다. 

이점에서 한국도 결코 자유로운 나라가 아니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 외환보유고 중 90%가 달러표시 자산이었으나, 현재는 약60%에 불과하다. 

만약 50% 이하로 떨어지는 날이면 각국이 자국의 달러 자산을 보호하기 위해 앞 다투어 달러를 이탈할 것이고, 바로 이 때 미국이 달러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타국의 달러표시 자산을 희생시켜서라도 금본위제 형태의 ‘특정한 조치’를 취할게 분명하다는 것이 중국과 러시아의 시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 나라가 경제제재를 받고 미국 중심의 국제금융질서가 존재하는 한 원유 생산국과 수입국을 중심으로 ‘탈달러화’가 더욱 가속화된다는 것이다. 

세계 유수의 석유매장량을 자랑하며 미국의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Nicolás Maduro) 대통령은 9월 8일 달러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위안, 유로, 엔 등 다른 통화로 원유거래를 하겠다고 결정했다. 

마두로는 이 선언이 미국의 경제봉쇄에 대항하는 조치라고 주장했다. 

미국에 위협적인 마두로 정권은 외국의 개입과 이들로부터 매수되거나 정치적 야망이 있는 반대파의 책동으로 인해 머지않아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 

민주적 방식의 선거에 의해 합법적으로 당선된 마두로는 현재 미국 정부와 언론에 의해 ‘독재자’, ‘인권탄압’ 등의 프레임이 씌워져 있다. 

이러한 ‘프레임이 씌우기’는 정권교체 대상인 나라 국가원수에게 전형적으로 붙이는 프로파간다 수법이다.


세계 최대의 에너지 수입국인 중국도 최근 원유거래에서 ‘게임체인저’가 될 만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일본 경제전문지인 <닛케이 아시안 리뷰>의 9월 1일자 보도에 의하면, 

조만간 중국이 상하이와 홍콩 선물거래소에서 원유선물 거래 시에 위안화 표시로 하고 이를 금으로 태환이 가능한 시스템을 도입할 것이라는 소식이다. 중국의 움직임은 산유국이 위안화로 원유거래를 함으로써 미국의 경제제재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다. 


위안화 표시 원유와 금 선물 거래는 금 실물로 거래도 가능하다는 의미다. 위안화 표시 금으로 계약할 경우 미국의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이란‧카타르‧베네수엘라 등 산유국의 달러자산을 타깃으로 벌어질 미국의 통화전쟁에 대한 위험도가 크게 낮아지게 되는 것이다.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맞서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에게 관건은 미국의 중동지역 우호국이자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태도다. 

그 이유는 1970년중반국으로부터 안보를 보장받는 것을 조건으로 기축달러를 지탱하는 ‘오일달러’(Petrodollar) 시스템을 비밀리에 주도한 나라가 바로 사우디였기 때문이다.

지난 7월 말 중국은 원유 최대 수입국인 사우디에 위안화 표시 거래를 제안했다. 현재까지 사우디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불분명하지만 향후 중국의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미국의 달러 패권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2017년 9월 현재 1985년에 일본과 독일 등 주요국 통화의 대폭 절상과 달러의 대폭 절하를 단행한 ‘플라자합의’(Plaza Accord) 이후 달러가치가 최악의 상태를 기록하고 있다. 달러 패권의 종언은 곧 미국 패권의 종언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으며, 세계 정치‧경제는 물론이고 주한미군 철수와 직결되어 한국의 안보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미국과 중국 사이 그리고 미국과 미국으로부터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이란‧카타르‧베네수엘라 등 산유국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리 없는 세계통화전쟁’이 한국정부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경제외교의 다양화, 실물 금의 대량 확보, 특히 새로운 금본위제 형태의 금융시스템 채택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가지지 않는 제국’으로 불린 영국의 파운드가 몰락했듯이 어떠한 제국의 통화 패권도 언젠가는 쇠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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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회식

뉴욕주립대학교 박사

역사학자‧국제정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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