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현장이 궁금한 영상기자가 되겠습니다
“제가 기자가 된 것은, 누군가의 옆얼굴이 되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양주 집합 연수 첫날, 자기소개의 첫 순서를 맡았던 소연이 누나(취재기자 양소연)가 했던 말이다. 기자로서, 언론인으로서 당연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누구라도 언제라도 잊어버릴 수 있는 다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MBC로 출근한 첫째 주 토요일(180630) 나는 희건이(영상기자 김희건)와 함께 서두범 선배를 따라 광화문 민주노총 집회에 현장교육을 나갔다. 광장은 컸고 사람은 많았다. 많아도 너무 많았다. 각자가 가진 생각, 그리고 울분들이 있었다. 이쪽 방향을 커버할 때에는 저쪽에 앉은 사람들이, 저쪽을 커버할 때에는 이쪽 사람들이 서로 자기들을 찍어달라고 외쳤다. 모두는 절실하게도 같으면서 다른 마음이었다.
군중의 행진이 이어졌다. 우리 셋은 행진 경로 상의 수십 미터 전방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때 전국택배노동조합원 한 명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는 나에게 다가와 MBC 기자시냐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나는 기자였다. 하여 그렇다는 대답에는 부끄럼이나 죄책감이 없었다. 다만, 나는 그날 그에게 옆얼굴이 되어버렸다. 그는 나에게 다가와 이렇게 더운 날 자신들이 어째서 검은색 옷을 입고 광화문으로 모일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하려고 들었다.
그가 나에게 말을 시작하려고 첫 문장을 뗄 때 즈음 서두범 선배는 대열을 따라 카메라를 이동시켜야 했고 나는 재빨리 트라이포드를 들고 그의 뒤를 따랐다. 이름 모를 그 조합원, 나를 기자님이라고 불렀던 그 조합원의 말을 끊고는 잘 알겠다, 꼭 한 번 생각해보겠다는 책임지지 못할 말을 남기고 떠나버렸다.
내가 스스로를 기자라 밝히고, 그가 나를 기자님이라 불렀을 때 그에게 나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담아주지 않는 수많은 언론과 같은 모습이었을까. 그의 말을 끊고 자리를 뜰 때, 아린 뒤통수를 모른 체하며 나는‘ 수습 신분으로 현장을 참관 온 거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의 시선을 떠난 직후, 아니 어쩌면 그보다 조금 더 후에 불현듯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는 그에게 옆얼굴이었다. 부끄러웠다.
영상기자가 되고 싶었던 동기로 나는‘ 궁금한 것들이 많고, 궁금한 것들을 비추어 보여주려 나서는 데에 망설이지 않는다.’고 적었다. 한 시위 참가자의 말이 궁금하지 않았던 지난 어느 날의 기억이 부끄러운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그날 이후 8월 11일 현재까지 여러 차례의 집회, 기자회견 현장을 취재했다. 참관이 아니었고 교육도 아니었다. ENG카메라의 질량보다 무거운 책임감을 어깨에 지고 나는 한 명의 영상기자로서 여러 현장을 다니고 있다. 세상엔 MBC의 명함을 받기 전까지 미처 알지 못했던 수많은 목소리들이 있었다.
다시, 이제 나는 약자와 강자를 가르지 않고 곳곳의 사람들의 행위와 발언이 늘 궁금한 영상기자가 되겠노라고 다짐한다. 언제나 현장이 궁금한, 현장이 내는 목소리와 표정을 전하는 영상기자가 되겠다.
이지호 / MB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