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속에서 꿈꾼 자유와 평화 (2022.2.17.~3.13)

KakaoTalk_20220503_152121126.jpg
KakaoTalk_20220503_152121519.jpg

엇갈린 전쟁예측, 다시 역사의 현장 속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임박해지면서 위험지역 출장 자원자를 모집한다는 공지가 떴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국경지역 요르단과 쿠웨이트에서 취재 경험이 있는 나는 순간 솔깃했다. 가장 먼저 지원을 했고 폴란드 국경지역 취재가 결정됐다. 비록 인접 국가 국경지역에서 시작된 출장이지만 전쟁이 일어난 우크라이나에 들어가 처참한 실상을 영상에 담아내고 싶었다. 폴란드로 출장지역이 정해졌고 2월 17일 폴란드 바르샤바(Warsaw)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바르샤바 공항 입국은 코로나 상황이라 더 까다로웠고 2시간의 입국심사를 마친 후 국경마을 프세미실(Przemysl)에 도착했다. 디지털 문명의 발달로 세계 어느 곳이든 라이브가 가능한 시대에 이번에도 MNG(Mobile News Gathering) 통신장비 하나 믿고 잘 터지기만을 기대했건만 시작부터 순조롭지 않았다. 밤새워 안 터지는 장비와 씨름하며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었지만 막상 폴란드 메디카(Medyka) 국경 검문소에 접근하자 통신 상태가 엉망이었다. 국경 검문소 부근에는 간간히 우크라이나에서 식료품을 구입하러 넘어온 사람들과 우크라이나에 들어가기 위한 화물차들이 줄 지어 서 있었다. 아직 전쟁의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전쟁에 앞선 취재 전쟁
 2월24일 우크라이나 전역에 공습경보가 발령 되면서 전쟁이 시작됐다. 이때부터 우리 팀의 하루 일과는 더 바빠지기 시작했다. 라이브연결은 물론 제작까지 하루 24시간 모자랄 정도로 뛰어다녔다. 아이템을 찾아 하루 500KM를 왕복한 적도 있고 새벽 5시에 일어나 다음 날 새벽까지 24시간 일한 적도 있었다. 이런 극한 환경에서도 어쩔 수 없는 취재 경쟁은 계속됐고 서로 따듯한 인사 한마디 나누기 힘든 시간 속에 모두들 지쳐가고 있었다. 국경지역 분위기도 심상치 않았다. 우리가 주로 취재한 지역은 폴란드 메디카(Medyka) 국경검문소 부근이다. 가장 많은 피란민들이 넘어왔고 대부분 취재진들이 이곳에서 난민들을 취재했다. 전쟁 초기에는 취재 여건이 괜찮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통제가 심해져 접근이 어려웠다. 통신환경 또한 좋지 않아 라이브에 대한 부담이 있었고 일부 방송사가 사전녹화를 하거나 연결 중 끊김 현상을 감수하고 방송하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피란민 숫자는 늘어났고 식상한 국경지역에서 벗어나 프세미실 중앙역으로 들어오는 피란민 열차를 취재하기 시작했다. 밀려드는 피란민들로 곳곳에 대피소가 세워졌고 아빠 없이 아이들만 데리고 온 엄마들의 표정엔 힘겨움과 불안감이 묻어났다.  

전쟁이 시작되고, 막막한 앞날을 걱정하는 우크라이나인들
 우리가 취재한 우크라이나인들 대부분은 앞으로의 삶에 대해 막막해 하며 눈물을 보였고 그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워 취재하는 내내 우울했다. 우크라이나가 아닌 국경지역에서의 취재는 한계가 있었다. 전쟁 상황을 보여줄 수 없으니 국경지역 분위기를 담아내야 했다. 폴란드에 상주해 있는 미군기지 움직임을 포착했고 우크라이나에서 탈출하는 한국인 취재에 열을 올렸다. 아이템이 고갈될 무렵부턴 우크라이나에 들어가기 위한 절차를 밟았으나 외교부에서 허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루마니아로 파견된 후발팀은 한국대사관이 있는 체르니우치(Tschernowitz)지역까지 이틀간의 취재를 허락해주었다.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삼각지대에서 담아낸 전쟁의 현장 
 대부분 취재진이 4년~15년 차 안팎의 취재경험이 있는 기자들로 파견되었고 우리 팀만 22년~25년 차로 구성된 가장 나이도 연차도 많은 팀이었다. 회사에서 루마니아로 또 다른 취재진을 보내면서 잠시 여유가 생겼지만 폴란드에서도 새로운 아이템을 짜내야 하는 상황, 우린 새로운 모험을 시작했다. 언론이 접근하기 어려운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국경 삼각지대를 찾아 왕복 10시간이 넘는 거리를 헤맸고 결국 그곳에 들어갈 수 있었다. 상상보다 더 무거운 공포가 느껴지는 지역에서 해질 무렵 어둠이 밀려오는 짧은 시간 동안 현장의 분위기를 서둘러 카메라에 담아냈다. 국경수비대가 촬영을 막아 더 이상의 취재는 어려웠지만 힘겹게 담아낸 영상을 잘 지켜서 전쟁의 공포로 물든 이곳의 실상을 국내언론 최초로 보도할 수 있었다. 

평화의 빛을 찾아서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이 암흑에서 벗어나 평화의 빛을 보고 싶었다. 긴 시간 취재를 하며 찾아 헤맨 평화는 아직도 오지 않았다. 25일간의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는 날, 러시아 하늘길이 막혀 비행기는 결항 되고 기나긴 하루를 견딘 후에야 다음 날 귀국할 수 있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누군가의 잘못된 선택으로 한 순간에 소중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우크라이나 국민들, 취재를 하면서 느꼈던 자유와 평화에 대한 그들의 간절함이 하루빨리 이루어지기를 기원한다.

SBS / 김학모


  1. [2023년 4월 11일 강릉 경포동 산불 취재기] 강풍은 곧 대형 산불로…반복되는 재난 보도 대비 절실

    [2023년 4월 11일 강릉 경포동 산불 취재기] 강풍은 곧 대형 산불로…반복되는 재난 보도 대비 절실 ▲강릉 경포동 산불 당일 차 안에서 촬영한 첫 컷 ▲강릉 경포동 산불 ▲강릉 경포동 산불 당일 KBS강릉방송국 취재진 밤사이 강한 바람이 불었다는 걸 짐작할 ...
    Date2023.04.26 Views346
    Read More
  2. [현장에서] ‘세계적 보편성’ 인정받은 ‘세계의 지역성’ …‘ATF2022’와 다큐멘터리 ‘화엄(華嚴)’

    [현장에서] ‘세계적 보편성’ 인정받은 ‘세계의 지역성’ …‘ATF2022’와 다큐멘터리 ‘화엄(華嚴)’ 지난 2021년 한국영상기자상 멀티보도부문 수상작 안동MBC 임유주 기자의 ‘화엄’이 대만 Daii TV에 방송이 확정되었다. 또한, 태국, 이스라엘, 남아공에서도 수입...
    Date2023.03.03 Views274
    Read More
  3. <10.29참사 취재영상기자 간담회> “참사 당시로 돌아간다면 다시 현장취재 할 수 있을지 의문”…현장기자들, 트라우마 ‘심각’

    <10.29참사 취재영상기자 간담회> “참사 당시로 돌아간다면 다시 현장취재 할 수 있을지 의문”…현장기자들, 트라우마 ‘심각’ 협회 차원의 구체적인 참사 취재 가이드라인 개정·취재트라우마 극복 위한 제도적 지원 필요 10.29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두 달이...
    Date2022.12.28 Views518
    Read More
  4. [카타르 월드컵 카타르 현장 취재기] 월드컵 역사상 다신 없을 카타르 월드컵

    <카타르 월드컵 카타르 현장 취재기> 월드컵 역사상 다신 없을 카타르 월드컵 처음이자 마지막일 도시 월드컵 이번 카타르 월드컵의 가장 큰 특징은 경기장이 모두 모여 있었다는 점이다. 큰 스포츠 이벤트인 월드컵과 올림픽의 차이점은 올림픽은 ‘도시’를 ...
    Date2022.12.28 Views317
    Read More
  5. [카타르 월드컵 거리응원 현장 취재기] 뉴스의 중심에 선 ‘사람들’을 위해 그들과 등지고 서다.

    <카타르 월드컵 거리응원 현장 취재기> 뉴스의 중심에 선 ‘사람들’을 위해 그들과 등지고 서다. 지난 11월 28일. 가나전이 열렸다. 나는 광화문 광장에 있었다. 카타르 월드컵 거리 응원 취재를 위해서였다. 광장은 추웠다. 저녁 무렵부터 한두 방울씩 떨어지...
    Date2022.12.28 Views225
    Read More
  6. 언론인에 대한 정교하고 다양해진 공격, 직업적 연대로 극복해야

    언론인에 대한 정교하고 다양해진 공격, 직업적 연대로 극복해야 다른 언론인의 피해, 나의 취재자유와 안전이 침해 당하는 위기로 공감해야 더 안전하고 좋은 준비와 자원을 가진 언론인들이 더 좋은 품질의 뉴스보도 올해 2월, 수단의 수도 하르툼에서 제 ...
    Date2022.11.01 Views211
    Read More
  7. “속도보다는 정확하고 신뢰도 높은 다면적 보도해야… 한·일 저널리즘, 세계적 영향력 갖추길”

    “속도보다는 정확하고 신뢰도 높은 다면적 보도해야… 한·일 저널리즘, 세계적 영향력 갖추길” 영상이 큰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동시에, 영상은 매우 위험한 힘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영상을 통해 전달되는 정보는 사람들의 감정을 ...
    Date2022.11.01 Views329
    Read More
  8. “한국 언론인으로서 힌츠페터 정신 인정받아 감사 여권법 개정 통해, 전쟁터, 재난국가에서 한국 언론인 취재 권한 보장되길”

    “한국 언론인으로서 힌츠페터 정신 인정받아 감사 여권법 개정 통해, 전쟁터, 재난국가에서 한국 언론인 취재 권한 보장되길” ▲ 라이펜슈톨 주한독일대사로부터 특집부문 상을 받는 윤재완 독립PD. 2021년에 콜롬비아의 다리엔 갭을 통해 파나마, 멕시코, 미...
    Date2022.11.01 Views406
    Read More
  9. “첫 취재를 함께 했던 언론인 동료이자 친구인 故쉬린 아부 아클레 기자의 죽음 영상으로 담아낸 고통 …팔레스타인의 진실 계속 취재할 것”

    “첫 취재를 함께 했던 언론인 동료이자 친구인 故쉬린 아부 아클레 기자의 죽음 영상으로 담아낸 고통 …팔레스타인의 진실 계속 취재할 것” 수상 소식을 공식적으로 알게 된 건 알 자지라의 도하 본부와 예루살렘 지부를 통해서였고, 한국인 언론인 동료도 수...
    Date2022.11.01 Views242
    Read More
  10. [현장에서] 여전히, 오늘도, ENG. 다시 생각하는 ENG카메라의 미래

    여전히, 오늘도, ENG. 다시 생각하는 ENG카메라의 미래 “ENG 이걸 꼭 써야 되나요?” 영상기자가 장래 희망이라는 한 지망생이 내게 직접 했던 말이었다. 말문이 막혔다. 그들의 눈에 비춰진 ENG는 크고 무겁고 이제는 성능조차 백만원짜리 미러리스에 비해 한...
    Date2022.08.31 Views2146
    Read More
  11. [현장에서] 카메라와 아이디어로 담아낸 현실의 부당함과 저항, 인간의 투쟁이 세상의 조명을 받도록

    카메라와 아이디어로 담아낸 현실의 부당함과 저항, 인간의 투쟁이 세상의 조명을 받도록 저는 인권운동가로 활동하다 10여 년 전 영상기자가 되었습니다. 콜롬비아 외딴 지역에서 노조와 농민단체들과 일했는데, 엘리트 계층과 외국 회사들에 의한 살인, 살...
    Date2022.07.01 Views329
    Read More
  12. [현장에서] “독재와 권력에 맞설 우리의 무기는 손에 든 카메라와 마이크입니다.”

    “독재와 권력에 맞설 우리의 무기는 손에 든 카메라와 마이크입니다.” ‘2021힌츠페터국제보도상’에 참여하게 된 건 동료 덕분이었습니다. 저는 제 다큐멘터리를 출품한 적이 없어 수상 경력이 없었습니다. 저는 동료가 요청한 대로 출품 양식을 작성했고, ‘힌...
    Date2022.07.01 Views382
    Read More
  13.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폴란드 국경지역 취재기] 전쟁 속에서 꿈꾼 자유와 평화 (2022.2.17.~3.13)

    전쟁 속에서 꿈꾼 자유와 평화 (2022.2.17.~3.13) 엇갈린 전쟁예측, 다시 역사의 현장 속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임박해지면서 위험지역 출장 자원자를 모집한다는 공지가 떴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국경지역 요르단과 쿠웨이트에서 취재 경험이 있는 나...
    Date2022.05.03 Views435
    Read More
  14. [현장에서] 역대 최악의 울진 산불 현장을 취재하며

    역대 최악의 울진 산불 현장을 취재하며 거대한 산불의 화마 앞에 사람도 동물도 모두 아비규환 3월 4일, 동료 취재기자와 점심을 먹고 있는데 울진에 산불이 났다는 소방본부 문자를 받았다. 곧이어 전화가 울리자마자 우리는 본능적으로 밥을 신속히 입에 ...
    Date2022.05.03 Views1132
    Read More
  15. 방역올림픽 속 무색해진 ‘꿈의 무대’

    방역올림픽 속 무색해진 ‘꿈의 무대’ ▲베이징 겨울 올림픽의 취재 현장은 주최측이 정한 폐쇄루프를 벗어날수가 없었다. ‘오미크로 변이’ 확산 속에 올림픽 취재 위해 계속 된 검사, 검사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올림픽은 선수들에게 ‘꿈의 무대’라고 한다. 처...
    Date2022.03.08 Views418
    Read More
  16. 내가 있어야할 자리를 깨닫게 한 나의 첫 올림픽취재

    내가 있어야할 자리를 깨닫게 한 나의 첫 올림픽취재 ▲장영근 기자가 취재한 쇼트트랙 최민정 선수가 경기도중 미끄러지는 모습. 올림픽은 선수들에겐 꿈의 무대다. 동시에 취재·방송하는 사람들에겐 경기장에 펼쳐지는 OBS(Olympic Broadcasting Services)의 ...
    Date2022.03.08 Views460
    Read More
  17. 오늘을 역사로 기록하는’ 영상기자들이 뽑은 2021년 10대뉴스

    ‘오늘을 역사로 기록하는’ 영상기자들이 뽑은 2021년 10대뉴스 코로나19와 싸움 속에서도 새로운 이슈들로 치열했던 2021년의 뉴스현장 한국영상기자협회(회장 나준영)는 지난 12월 15일부터 17일까지 3일간, 전 회원을 대상으로 온라인 투표를 진행해 ‘영상기...
    Date2022.01.07 Views502
    Read More
  18. 코로나 시대의 올림픽 취재 “재난과 스포츠의 경계에서”

    코로나 시대의 올림픽 취재 “재난과 스포츠의 경계에서” 코로나시대의 올림픽 취재 올림픽 취재의 첫 단계는 5월 초 코로나19백신 접종이었다. 5월 중순부터는 코로나 관련 입출국 및 취재 유의점에 대한 이메일 자료, 교육 등을 받았다. 올림픽 취재 한 달 전...
    Date2021.09.24 Views843
    Read More
  19. 방역 아래 초대 받은 불청객

    방역 아래 초대 받은 불청객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도쿄 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코로나가 확산하는 가운데 개최 강행이냐, 취소냐 이야기가 많았지만 일본은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강행을 선택했다. 개최가 결졍되고 선수와 임원, 올림픽 지원인력?등 각국...
    Date2021.09.24 Views884
    Read More
  20. Olympics, Enjoy the Moment!

    Olympics, Enjoy the Moment! ‘사상 처음’ 이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는 곳을 찾기가 힘들만큼 ‘전례 없는’ 올림픽. 그리고 영상기자로서 ‘첫’ 종합대회 출장. 평소 같으면 기대가 앞섰을 출장이지만 이번엔 출발 전부터 각종 악재와 우려로 마음이 천근만근이었...
    Date2021.09.24 Views813
    Read More
  21. 코로나19 시대의 청와대 영상기자단 미국 순방기

    코로나19 시대의 청와대 영상기자단 미국 순방기 빗 장 2019년 12월 중국 청두 순방 이후 한동안 해외를 나가지 못할 것이란 현실을 그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2020년 전 세계를 휘몰아친 코로나19의 여파는 삼청동에 자리 잡은 청와대 춘추관에도 미...
    Date2021.07.06 Views406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8 Next
/ 18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