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취재, 제한하는 ‘여권법’ 언론자유, 알권리 침해
국민들의 높아지는 국제뉴스에 대한 요구 반영해 ‘여권법’ 개정 절실
한국 언론의 국제취재보도 역량 개선위해 전쟁 취재 메뉴얼 등 정비되어야
지난 2월 24일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한국 언론들은 현장 취재를 위해 대거 취재진을 파견했지만, 전쟁터가 된 우크라이나에는 들어가지도 못한 채 인접국인 폴란드, 루마니아 등에서 현지 소식을 전하고 있다.
정부가 ‘여권법’의 ‘예외적 여권사용 허가’ 조항을 근거로 취재진의 우크라이나 입국을 불허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현지 취재를 다녀 온 기자들은 우리만의 시각을 담은 국제뉴스를 제작하기 위해 이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이에 한국영상기자협회(회장 나준영)는 현장 취재를 다녀온 영상기자들과 취재진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우크라이나 취재·보도 간담회는 지난 21일 한국영상기자협회 회의실에서 열렸다.
간담회는 나준영 영상기자협회장이 진행을 맡았으며 SBS 김용우 기자, MBN 임채웅 기자, KBS 조세준 기자, MBC 현기택 기자와 분쟁 지역 전문 PD인 김영미 다큐엔드뉴스 대표가 참석했다.
나준영(아래 나) : 우크라이나 취재를 다녀온 기자들과 같이 현장 상황을 공유하고, 어떤 점이 개선돼야 할지 발전적으로 얘기해 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있었던 일 등 현장 취재와 관련해 총평을 부탁드립니다.
임채웅 MBN 기자(아래 임) : 폴란드로 가는 비행기에서 BBC 기자를 만났습니다. 그 기자는 자기들은 어떤 루트로 어떻게 우크라이나에 입국할 거라고 얘기하면서 우리는 어떻게 들어갈 건지 물었습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우크라이나에 들어가서 취재하고 싶은데, 외교부의 허가가 안 났습니다. 외교부에 지속적으로 요청해서 특별허가를 받긴 했는데, 허가 지역이 중요한 전쟁피해를 입은 지역이 아니다 보니, 회사에서 최종적으로 들어가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한국에서 온 대부분의 취재진들이 저와 같은 경험을 이야기하더군요.
우리나라 기자들을 더 속상하게 만든 것은 대부분의 방송사들이 이 전쟁의 보다 생생한 상황과 문제점을 보여줄 심층 보도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2주 동안 루마니아 수체아바주 시레트(Siret) 지역 취재를 했습니다. 초반은 주로 난민 취재였고, 중·후반으로 갈수록 현장 중계 역할밖에는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기사가 줄어든 데다 뉴스프로그램 후반부에 한 꼭지만을 편성하니까, 현장라이브로 스트레이트성 전장 상황을 보내고 나면 따로 심층 취재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번 취재는 항공편, 현지 코디, 통역, 통신, 숙박 등 큰 비용이 드는 취재였는데, 많은 방송사들이 ‘다른 건 몰라도 라이브연결에 신경 써라.’라는 것이 한국방송사들이 현지 취재진에게 준 가장 큰 요구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용우 SBS 기자(아래 김) : 우린 각국의 취재진이 폴란드로 몰리다 보니 이를 피해 벨라루스나 루마니아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벨라루스도 비자가 필요하다고 해서 취재가 안 됐고, 최대한 몰도바까지 가는 것을 기획하고 여기로 향했습니다. 가보니 루마니아의 시레트와 우크라이나의 체르니우치(Czernowitz) 양 지역사람들이 매일 오가고 있을 정도로 왕래가 잦아서 우리도 들어가겠다고 외교부에 제의를 했는데 거절당했습니다.
우리가 외교부에 우크라이나 입국허가를 계속 요청할 즈음 KBS취재진도 같은 요청을 했고, 제한적으로 체르니우치만 들어가게 해 주겠다는 답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오데사(Odessa) 에서 몰도바공화국(Moldova)쪽으로 나오는 난민들을 취재하면서 만난 외신기자는 우리에게 ‘그냥 (우크라이나에) 들어가라.’고 하더군요. ‘한국취재진은 국내법상 우크라이나에 들어갈 수 없다.’고 그 외신기자에게 말하는데 정말 창피했습니다. 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입국하려는 자국의 기자들을 여권법으로 막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밖에 없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전쟁취재를 와서 현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를 말하는 것도 창피했고, 외신기자들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외교부가 많은 국민이 관심을 갖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취재하려는 자국의 언론인들을 ‘안전’을 이유삼아 무조건 막아서는 느낌이었습니다.
나: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에 분쟁이나 재난 지역 취재 경험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임 : 저는 처음입니다. 저는 이번에 우리 회사에서 두 번째 교체팀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가기 전에는 우크라이나 전쟁 취재를 위해 여러 계획들을 세웠는데 하나도 실행할 수 없었습니다. 현지에 도착해 우크라이나에 못 들어가는 상황이 되니, 몰도바 같은 곳에 가서라도 취재하는 게 우리가 전쟁의 참상을 최대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하고 접근했습니다.
김 : 저도 전쟁취재는 처음입니다. 지난 홍콩민주화시위 때 방탄조끼와 방독면을 갖추고 취재한 경험은 있습니다. 출장을 가며 우크라이나에 들어갈 수 있어도 ‘리비우 같은 곳에 가서 CNN 같은 외신보다 뛰어나게 취재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출장팀은 외신에서 주목하지 않는 데를 취재하자고 했고, 갈 수 있으면 오데사를 가보자고 했는데 결국 못 들어갔습니다.
회사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현지취재 갔으니 우크라이나 접경에서라도 라이브중계를 원했는데, 현지시차 때문에 라이브는 오전에 진행해야 했습니다. 라이브리포트를 마치면, 취재는 오후에 해야 하는데 다른 곳에 가려면 이동하는 시간이 있어 다음날 오전 라이브에 지장이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같은 회사에서 두 팀을 보냈을 땐 한 팀은 취재, 한 팀은 라이브연결을 맡아 취재했지만, 거의 모든 언론사 취재팀이 한 팀만 남자, 우크라이나 인접 지역에서의 취재는 현장에서 주요뉴스용 라이브연결을 하는데 그쳤습니다. 회사 입장도 어느 정도는 이해하지만 보도하는 입장에선 아쉬움이 남습니다.
나 : 이번 취재를 위해 각사에서는 어떤 준비를 해줬는지 궁금합니다.
현기택 MBC 기자(아래 현) : 폴란드 국경과 인접한 우크라이나의 리비우(Lviv)에 들어가려고 했더니, 외교부에서 보험 가입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MBC는 전쟁이나 재난 지역 취재와 관련한 특약보험이 없어서 급하게라도 가입하려 했는데, 가입 일수가 모자라 우리팀은 적용이 불가능했습니다. 보험 때문에 취재 허가가 안 나오면 곤란해서 회사 쪽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달라고 했는데, 규정이 없어 안 된다고 하더군요. 취재진이 늘 ‘경계’에서만 머물다 와서 그런지 ‘무슨 보험이야.’라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뒤에 출발하게 될 다른 팀을 위해서라도 보험이 필요했고 결국 보험에 가입했습니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 출장취재를 경험하며 우리나라 언론이 진짜 취재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묻고 싶어졌습니다. 전쟁이 일어난 인근지역에 가서 뉴스를 전달한다는 스탠드업(리포트의 기자 크레딧샷)만 잡고 오는 게 다인지, 저널리스트로서 진실을 알리고 분쟁지역에 들어가 전쟁의 실상을 담아 우리 시청자와 국민들에게 전달하는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김 : SBS는 예전 이라크 사태 때 기자가 피랍된 적이 있어 전쟁, 분쟁지역 취재를 보장하는 보험이 있습니다. 이번에 우크라이나 전쟁취재를 갈 때도 그 보험으로 갔습니다.
조세준 KBS 기자(아래 조) : KBS는 전쟁지역 취재진을 위한 보험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분쟁 취재가 잦은 일이 아니고 전쟁지역을 취재하는데 참고할 매뉴얼도 없다 보니, 취재를 위한 다양한 안전장비라든가 여러 가지 준비가 안 되어 있었습니다. 이번 취재를 위해 지급된 회사의 방탄조끼는 30년이 다 된 장비라서 너무나 무겁고, 현지에서 취재를 위해 착용하니 제대로 움직이기도 힘들었습니다. CNN이 우크라이나 개전 초기 키이우(Kyiv)의 현장에서 급하게 최신형 방탄조끼를 날렵하게 입던 영상은 정말 남의 나라 이야기였습니다.
김영미PD(아래 김PD) : 외신들은 해외 취재를 나갈 때 현지 병원과 변호사를 사전에 계약해 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외신기자생활을 한 저는 이런 경험 때문에 해외 취재시 사전에 숙소 가까운 곳에 지정 병원을 미리 계약하고, 현지 변호사와도 계약을 해놓습니다,
이번에 우크라이나 전쟁취재를 온 많은 한국기자들이 코로나에 걸려 호텔 방안에서 힘들게 투병했다는 얘기를 듣고 안타까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현지 병원과 계약되어 있었다면 어땠을 까요. 2010년 아랍의 봄 당시, 이집트 혁명을 취재갔을 때 저와 카메라감독이 경찰에 연행되었던 적이 있는데, 사전에 계약한 현지 변호사에게 연락해 금방 풀려나기도 했습니다.
전쟁취재 시 많은 외신사들은 저처럼 이런 조치들을 해 주는 행정팀이 따로 있습니다. 얼마 전 만난 BBC취재팀은 전체 열 팀이 출장을 왔는데, 그 가운데 두 팀이 행정팀이라고 했습니다.
현: 한국의 영상기자들은 전쟁 취재를 가는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경우도 거의 없고, 오로지 선배들이 전하는 경험이나 취재팀이 확보한 현지정보와 현지 가이드들의 자원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한국 언론이 정말 전쟁 보도를 제대로 하고 싶다면 평소에 이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여러 번 얘기했었는데, 결국 진짜 전쟁이 터지자, 아무 준비도 없이 기자들을 취재하라고 보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질적인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는 취재팀을 몇 팀씩 보낼 게 아니라, 제대로 교육시키고 안전을 위한 대책을 바탕으로 제대로 기획하고 준비된 취재를 하는 게 나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조: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통해 우리가 원전 취재 매뉴얼을 만든 것처럼 전쟁이나 분쟁 지역 취재에 대해서도 매뉴얼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개별방송사의 대응이 미흡하고 준비절차가 복잡하니, 협회 차원에서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분쟁 지역 취재 경험자들의 경험과 지식을 모아 국제 분쟁이나 재난 상황이 발생하면 유사시에 바로 참고할 수 있는 매뉴얼과,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전쟁보도용 키트를 목록화해 각 회원사에 권고해 주면 좋겠습니다.
나 : 2010년 즈음 언론방송진흥단체들의 주최로 호주와 영국 등지에서 전쟁 보도 연수를 실시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교육을 받은 기자들 중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 취재를 다녀온 이들은 얼마나 될까요.
김PD: 전쟁이나 분쟁 지역을 한 번 다녀오면 좋은 경험이 쌓여야 하는데, 이번에 폴란드 국경지대서 만난 한국기자들은 모두 제대로 된 전쟁취재 경험이 없거나 처음이었습니다. 기존에 전쟁취재를 경험했던 사람들은 안 오고, 어린 기자나 경험이 전혀 없는 기자들만이 전쟁·분쟁·험지 취재를 하는 방식으로는 이들 취재의 노하우가 쌓일 수 없습니다. 국제적인 전쟁, 분쟁, 사건, 사고가 있을 때마다 경험이 없는 취재진들만이 취재를 나오는 구조로는 국제취재의 노하우와 인맥을 만들기 어렵습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대한민국의 지금도 열악한 국제취재 인프라가 사라질 것입니다.
현 : 이번 폴란드 국경취재를 하면서 우리 언론이 국제적 취재방식과 인프라가 너무나 뒤처져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제도적 부분, 취재하는 방식, 고민들이 너무나 옛날 방식입니다.
외신들은 현지 취재, 특히 전쟁이나 분쟁지역 취재를 가면 가이드를 반드시 현지인을 고용할 것을 매뉴얼로 제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언론은 현지에 사는 우리 교민을 가이드로 우선 섭외하다 보니, 위기상황에서는 똑같은 외국인이 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취재현장에서 착용하는 프레스완장도 국제 기준이 파란색이라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국내에서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았기에 MBC는 보라색, SBS는 주황색을 차고 다녔습니다. 사전에 알았다면 협회에서 국제기준에 맞춰 제작한 파란색 프레스완장을 챙겨 취재를 갔을 겁니다,
또, 외신들은 자기들끼리 현지에서 단톡방을 만들어 정보를 공유하는데 여기에 끼지 못한 우리 언론인들은 특파원을 비롯해서 외신이 공유하는 중요한 현지 정보를 제대로 확보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국제보도 분야에서 우리 언론의 취재 방식은 너무나 뒤쳐져 있다는 생각이 취재 내내 들었습니다.
나 : 앞에서도 많은 말씀들을 하셨지만, 우크라이나 현지는 취재하지 못하고, 접경지역만을 취재하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김 : 저는 전쟁 발발하고 20일 좀 넘었을 때 들어갔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댓글이 항상 ‘너네는 왜 안 들어가냐. 우리나라 취재진은 왜 안 들어가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어렵게 외교부의 2박3일 취재허가를 받아 우크라이나의 체르니우치(Czernowitz)에 들어가니 ‘안전한 데만 골라다닌다.’는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서울의 데스크들은 안전 문제가 있으니 ‘우크라이나 현지에 들어갔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분위기였습니다. 혹시라도 사고가 나면 문제가 더 커질 수 있으니. 전쟁의 현장을 보여주는 영상은 외신들이 찍어주는 걸 쓰고 우린 안전하게 취재하자는 생각들이 보도책임자들에게 있는 것 같습니다.
김PD : 분쟁 취재건 전쟁 취재건 전쟁의 핵심지역을 취재해야 하는데, 전장의 주변만을 도니까 한국언론의 전쟁취재가 우리 국민들의 관심을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언론이 들어간 체르니우치는 우크라이나를 취재하는 외신과 그것을 보는 국제사회와 시민들에게는 뉴스 가치가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크라이나 수도인 키이우에 들어가 있는 외신들은 단톡방을 만들고 얼라이언스(전략적 연합체)를 만들어 같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러시아의 공격으로부터 더 안전하고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외신들은 이런 연대와 정보공유, 소통을 통해 전쟁의 한복판에서 생생하게 취재하는데,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외곽에서만 취재하면 시청자와 독자의 알권리가 충족되는 수준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은 양국 모두의 선전전이 강하게 펼쳐지고 있는 전쟁입니다. 현장에선 진위 판별이 안 되고, 외곽에서 전언을 통해 생산되는 기사는 전쟁의 진실을 전하기보다는 취재할 수 있는 난민들에 대한 온정적 기사들만을 양산할 뿐입니다. 한국 국민들이 우리 언론을 통해 보는 것은 난민들의 불쌍함 외엔 선전전이 만든 굴곡을 통해 전쟁의 모습을 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외교부가 우리 언론인들을 문제의 핵심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한 지금의 ‘취재제한시스템’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임 : 현장 취재 중·후반으로 가면서 외신을 모니터해 보도했습니다. 우크라이나 부차(Bucha)에서 민간인 학살이 일어났을 때 외신이 취재한 사진이나 영상을 보니, 많은 외신기자들이 부차에 들어가서 라인을 치고 취재를 하고 있더군요. 전 세계 외신들과 로컬 언론들은 다들 들어가서 취재하고 있는데 왜 우리는 끼지 못하나 하는 생각에 기자로서 민망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그들처럼 우리나라의 언론인들도 안전을 확보하면서 취재하는 방식이 있을 텐데, 우린 왜 여기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제한철폐를 위해 노력한 언론사나 언론인들이 없었는지 아쉬웠습니다.
나 : 외교부가 전쟁지역의 취재를 제한하고 있는 데 대해 언론자유 침해라는 비판도 나옵니다.
김PD : 대한민국헌법은 언론인의 취재자유, 거주이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우리 헌법의 가치를 수호해야 할 외교부가 취재를 ‘허가한다’는 말 자체가 문제입니다. 또, 취재를 허가받기 위해 취재의 내용, 이동 경로를 다 적으라는 것은 취재진을 다 통제하겠다는 의미로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여행금지국가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이동을 금지하는 현행 여권법은 언론인 취재에 대해 예외를 둘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실제 그 예외조항을 적용받아 여행금지국가를 취재하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입니다.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자유를 침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언론인에 한해서는 여행금지국가에 대한 취재입국을 사전허가가 아니라 사후 신고제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전쟁이 발발한 우크라이나의 경우 ‘고려인’이라는 우리 사회와 밀접한 이슈도 있습니다. 취재를 하며 연락하고 있는 고려인 출신 우크라이나 고위 관료가 있는데, 한국 정부에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데 한국 기자가 없다면서 ‘왜 우크라이나에 한국취재진은 취재오지 않느냐’고 물어왔습니다. 우리 여권법을 얘기하며 상황을 이야기 하니, ‘이것은 우크라이나 사람의 입장에서는 주권 침해에 해당되는 문제’라며 이해를 못 했습니다. 우크라이나에 들어올 수 있는지 없는지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결정할 문제이지, 한국 정부가 결정할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국언론의 국제이슈 취재를 가로 막는 여권법은 빨리 개정되어야 합니다.
임 : 외교부에선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호가 목적이고, 기자도 국민 중 하나니 어쩔 수 없다는 논리인데, 기자는 국민이기도 하지만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취재활동을 하고 보도를 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라는 특수성과 역할을 인정해야 합니다.
김PD : 우크라이나 현지 취재를 추진하며 외교부 허가를 받으려 했더니, NSC가 소집돼야 하고 그럼 한 달 이상 걸릴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또 현지 취재계획, 만날 사람들, 숙소에 대한 모든 정보를 제공하라는 요구를 받았습니다, 한때 폴란드 국경지역에서 ‘나 체르니우치 갈 거야.’라는 한국기자들의 말이 외신기자들 사이에서 ‘취재는 안하고 안전한 곳에서 취재하는 척 하려고 한다.’는 조롱의 대명사가 되기도 했습니다.
나 : 우크라이나 전쟁의 가능성이 한창 예견되는 상황에서도 우크라이나의 키이우나 기타도시에 먼저 들어가 취재하는 언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현 : 맞습니다. 일본은 TBS가 미리 기획해서 전쟁이 나기 전에 우크라이나에 들어갔다가 전쟁이 일어나고 난 뒤 현지인들이 빠져나올 때 같이 나왔습니다. 우리 언론에게도 그런 사전취재 기획과 역량이 필요합니다.
김: 우리 국민들은 국제뉴스와 글로벌 이슈에 대해 굉장히 관심도 많고 우리 언론이 전하지 않은 국제뉴스를 자발적으로 검색하고 찾아보는 일에도 열심입니다. 하지만 정작 정부와 언론은 관심이 없습니다. 만약 한국 언론이 이 전쟁의 발발 전부터 키이우에 들어가 있었다면 생생한 증언과 화면으로 국제적으로 주요 이슈가 되는 뉴스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나 : 국제뉴스에서 현장 취재를 하는 건 우리 시각으로 이슈를 전달하자는 건데, KBS와 뉴스전문채널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방송사엔 국제뉴스나 문제들을 심층적으로 다루는 프로그램이 아예 없습니다.
조 : 우리나라는 정치 뉴스에 너무 편중되어 있는 게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학교 다닐 때 정치 뉴스 편중에서 벗어나 글로벌하게 보도해야 한다고 배웠는데, 20년이 지난 지금 변한 게 하나도 없습니다.
현 : 우리 방송사들이 국제문제를 취재한다면 할 수 있는 게 많을 것 같습니다. 장기적으로 국제뉴스를 다룰 때 국제 정세, 지정학적인 관계 등 여러 고민들 속에서 우리의 시각을 담은 뉴스를 보도해야 합니다.
김 : 우크라이나 현지 취재가 막히면서 우리나라의 여러 취재팀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좀 더 가까이서 취재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인근의 또 다른 국가인 트란스니스트리아(Transnistria)에 들어가려고 했다 거절당했습니다. 우리는 관광객으로 들어가 보자고 해서 트란스니스트리아가 위치한 몰도바(Moldova)에 갔습니다. 그리고, 택시기사를 섭외해 이 지역에 들어가 우크라이나인들을 인터뷰를 했습니다. 이런 보도가 가능했던 건 데스크가 현지 취재팀을 믿고 충분한 시간을 줬기 때문입니다. 심층취재를 하려면 데스크가 그만큼 시간을 줘야 합니다. 그런데 미디어환경이 바뀌다 보니 매일 뭘 하라는 요구는 많아지고 그러다보니 뉴스의 깊이는 낮아집니다. 이런 방식의 취재가 국내는 물론 국제 취재를 망라하여 많아지고 있습니다. 기사의 양은 적더라도 가치가 있는 제대로 된 뉴스가 취재되어 보도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전쟁터는 가보지도 못하고 매일 전쟁의 상황을 전하는 라이브를 요구하면 기자들은 제대로 된 능력을 보여줄 수 없고, 그런 보도는 서울에서 하나, 폴란드에서 하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임: 오늘 이야기한 우크라이나 전쟁 취재의 경험을 통해 공감대가 생겼으니, 이번 기회를 통해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개선을 위한 목소리들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나 :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4월 4일 열린 한국보도사진전에 참석해 “(우리 언론인들이) 국내문제만이 아니라 세계보도현장에 뛰어들어서 종군기자로서 또, 해외의 많은 사회·경제·인권현장에 가서 우리 국민들에게 좋은 철학이 담긴 작품을 선사해주시길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진정으로 우리 시각과 역량을 갖춘 우리만의 국제뉴스 보도를 접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국제이슈의 취재·보도 관행들이 개선되고, 빠른 시간 안에 여권법이 막고 있는 전쟁·위험지역 취재 제한 조치를 개선해야 할 것입니다.
대담=나준영 영상기자협회장
정리=안경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