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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의 본질을 고민하게 한 좋은 경험
너무도 소중한 시간이었다. 10년 정도 경력의 방송 기자들은 사실 방송국에서 가장 활발하게 일하고 있는 연조의 기자들이다. 그렇게 때문에 바쁜 일상에 묻혀 매너리즘에 빠지고 저널의 본질에 대해 망각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번 연수는 바로 그러한 현업의 중견 기자들에게 저널리즘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특히 미국 연수의 경우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 1주일 동안은 선진 저널리즘을 학문적으로 접하고, 또 워싱턴에서는 1주일 동안 세계 정치의 중심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를 직접 경험할 수 있게 함으로써 한국 방송기자들에게 더 큰 세상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미국의 미디어가 뉴미디어 시대에 생존하는 방식
전반적으로 매우 훌륭한 강의들이 많았다. 특히 온라인 미디어의 등장 이후 미국의 신문, 방송이 어떠한 전략적 선택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였는가에 관한 강의는 무척 흥미로웠다. 워싱턴포스트 온라인팀장이나 WRAL 방송국 매니저의 강의가 그것이었는데 조간 신문은 아침에, 방송 뉴스는 저녁 메인 뉴스에 모든 뉴스를 쏟아 붇는 형식의 파괴가 필요하다는 부분은 매우 공감 가는 내용이었다. 또한 UNC-TV, WRAL 등의 방송국 견학도 미국의 방송 현장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하지만 일부 강의들은 정치라는 주제에 너무 맞추다 보니 미디어와의 관계가 약해 흥미를 떨어트리기도 했고 또 일부 강의는 지나치게 노스캐롤라이나 지역에 한정된 얘기를 함으로써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워싱턴포스트가 2008년과 2010년 선거에서 선보인 뉴미디어를 활용한 보도 사례 강의의 경우 뉴스 소스의 확보와 또 확보된 뉴스 소스의 활용에 있어 아주 훌륭한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카메라를 통해 지리적 정보가 확인된다거나, 몇 개의 언론사가 사진 등의 멀티미디어 소스를 공유한다는 것, 또한 이렇게 취합된 정보를 C-dragon 등의 소프트웨어를 통해 일반인들이 보기 좋게 만드는 이미지 디자인까지, 뉴미디어 활용의 현장성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예였다. 뿐만 아니라 온라인은 지역민들의 관심사, 모바일은 교통과 날씨 같은 생활정보, 아이패드는 깊이 있는 탐사보도 등과 같이 미디어에 따라 콘텐츠를 각각 다르게 제작 노출시킨다는 내용도 매우 흥미로웠다.        
지역 방송사인 WRAL은 처음에 인터넷 사이트를 구축하면서 WRAL.com을 TV방송국의 홍보용으로 사용하려 했다고 한다. 하지만 온라인 매체가 발전하면서 사람들이 즉각적인 정보를 얻기 바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날씨 등의 정보를 온라인에 빨리 올려 호응을 이끌기 시작했다. 이후 사람들이 TV는 아침, 저녁에 보지만 그 외 낮 시간은 온라인으로 뉴스를 접한다는 생각에 낮 뉴스의 온라인 서비스 강화를 추진하게 되었다. 결국 TV쪽 종사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취재한 내용을 TV에 방송하기 전에 온라인에 먼저 올리기로 했고 그 일을 담당하기 위해 무려 7명의 웹에디터를 풀타임으로 고용하여 온라인 서비스를 시작했다. 리포터가 현장에서 전화로 웹에디터에게 상황을 알려주면 웹에디터가 단신 형식으로 일단 뉴스를 온라인에 게재하고, 이후 계속된 내용이 들어올 때마다 그 온라인 뉴스를 좀 더 깊이 있게 만들어가는 형식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핵심은 웹에디터가 현장 기자에게 전화를 해 자료를 제공하거나 편집회의에서 각 부서에게 온라인용으로 필요한 내용을 요구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TV뉴스용과는 다른 온라인 뉴스용 뉴스 콘텐츠를 따로 제작하여 온라인 유저들에게 서비스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WRAL은 신문 매체의 온라인 서비스보다 훨씬 영향력 있는 방송국 웹사이트로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

세계 정치의 중심을 몸으로 느끼다
노스캐롤라이나 연수가 저널리즘의 변화에 대한 학문적 경험의 기회였다면 워싱턴 연수는 몸으로 현장을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국무부, 국방부 등 정말 접하기 어려운 곳을 직접 방문하여 세계 정치의 중심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뉴지움, VOA, NPR 등에서는 미국 뉴스의 역사와, 변화하는 트랜드를 읽을 수 있었다.

국무부, 국방부, 상원의원 보좌관 면담
저널리즘 스쿨이 워싱턴에 관광을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 준 프로그램이었다. 각 기관이 자체의 투어코스를 가지고 있지만, 이번 연수생들은 각 기관에서 직접 극동아시아와 한반도 관련 전문가들을 만나 대화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국제 질서의 심장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는 그들과 직접 대면하고 얘기하면서 그들의 입장을 전해들을 수 있었고 멀게만 느껴졌던 그들의 의사결정 과정을 조금은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상원외교위원회 보좌관과의 면담에서 성 킴 주한 미국 대사의 인준이 늦어진 이유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때는 살아있는 미국 정치가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어려운 곳을 섭외하여 우리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해 준 에이 제이, 전상우 공보관 등 주한 미대사관 직원들의 노력에 너무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뉴지움, VOA, NPR 방문
뉴스박물관인 뉴지움을 방문하고 나니 다시금 언론인으로서 현장에서 뉴스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고 소중한 일인가를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늘 그런 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가 가기를 꺼려하는 곳에서 목숨을 걸고 진실을 세상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해온 언론인들의 이야기는 스스로를 재무장하기에 충분했다. VOA를 방문했을 때는 사실 좀 놀랐다. 세계 40개국 이상에, 그것도 누가 듣는 지 확인도 잘 안 되는 상황에서 ‘미국의 소리’라는 이름으로 뉴스를 보내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이를 위해 엄청나 사람을 고용하고 비용을 지출하는 것을 보면서, 미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힘과 영향력에 조금 무서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한 고립된 북한의 주민들을 위해 한국의 언론과 방송도 무언가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NPR의 경우는 UNC-TV를 방문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방송의 계도성과 교육적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시장 경쟁 하에서 방송이 무한경쟁으로 간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점점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프로그램만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 방송국들을 보니 어쩌면 그런 지나친 자극이 사람들을 지치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특히 자녀를 가진 부모들은 무방비로 자극에 노출되는 TV보다 신뢰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뉴스를 내보내는 방송에 더 호감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UNC-TV에서 살인, 강간 등의 뉴스를 다루지 않고, 엠뷸런스나 고속도로 범죄 차량 추적 등의 뉴스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느 정도 시사점이 있다고 본다.      

fCPI, Pew Research Center을 방문
이번 워싱턴 연수에게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바로 미국 언론의 힘이다. 그 힘은 단순히 언론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이 아니라, 언론이 제대로 취재하고 보도할 수 있게끔 하는 기관과 재단의 힘을 말한다. 주로 엄청난 기부금이나 지원을 통해 객관, 중립 보도의 재정 여건을 만들어 주는 이러한 구도는 결국 언론 종사자뿐 아니라 미국의 시민들이 객관적인 보도를 언론에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CPI는 100% 기부금으로 유지되며 1년 예산이 800만 달러 이상이라고 한다. 책임성과 독창성을 강조하고 자신들이 취재한 내용을 어느 언론사든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곳이다. 세계 곳곳의 탐사보도를 지원하기도 한다. 결국 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진실을 보도하기 위해 일만하면 되는 것이다. Pew Research Center은 비당파, 비영리 연구 기관이다. 자칭 Fack Tank라고 자신들을 부르며 언론을 비롯한 여론, 인터넷, 인구 통계, 종교, 세계 시민 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다. 수많은 사회학적 현상들을 전문가들이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그 내용을 공개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진실에 다가가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미국을 자본주의의 천국이라 하지만 이러한 비영리 기관들의 역할이 가능한 구조가 어쩌면 미국의 더 큰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마치면서
연수가 끝났다. 입사 후 가장 긴 기간 동안 카메라를 손에 잡지 않았다. 인원부족으로 허덕이나 회사 상황에서 더 바쁜 시간을 보낸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참 많다. 하지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교육이었다. 올해 두 기수가 참여하지만 내년, 내후년에도 계속 진행되어 많은 방송기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교육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 이유는 우리가 너무 많은 걸 잊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기자라는 것, 그래서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라는 것을 잊고 자꾸 직장인, 월급쟁이로 스스로의 삶을 규정하려는 나태함의 유혹에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방송기자연합회의 연수는 본질을 일깨워 줬다. 역사 속의 수많은 저널리스트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우리가 모르는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세상을 감시하기 위해 저널리스트들이 뛰고 있는지를 조석으로 급변하는 미디어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진실’을 지키기 위해 더욱 노력하고 민첩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좋은 교육이었다.
조금 아쉬웠던 것은 카메라기자의 입장에서 포토저널리즘과 방송 영상에 관한 학문적 연구에 대한 강의와 최첨단방송 장비의 활용에 대한 소개가 있었으면 더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정상보 SBS뉴스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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