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의 밥그릇 싸움은 공익이다
최근 비엔지니어 분야에서 일하는 어떤 선배를 만났더니 “디지털TV 전송방식 논쟁 때 왜 엔지니어들의 문제로만 여겼는지 참 후회스럽다”며 방송사에 몸담은 모든 사람들이 지금의 방송기술 변화를 학습하고 이해하며 자신의 직종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서 대비책을 세우지 않으면 반드시 더 큰 후회를 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한다.
방송공학을 전공한 한 교수는 “기술 개발만 열심히 하면 모든 것이 다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결국은 기술보다는 그 기술을 적용할 것인지 말 것인지, 어느 정도 적용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정책이더라”며 정책의 중요성을 강변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른 기술발전을 보였던 20C. 20C가 보여준 기술의 진보 중심에는 교통기술과 방송통신기술이 핵심이었다. 특히 방송통신기술은 20C 100년 동안 보였던 기술발전의 속도보다 더 빠른 진보를 보이고 있는 21C의 5년도 중반을 넘어서고 있다.
이런 방송통신기술발전은 한국의 방송지형도 변형시키고 있다. 당장 지상파의 보완재로 여겼던 케이블TV가 이제는 지상파의 대체제로서 급성장, 지역민방을 비롯한 지역방송사보다 훨씬 많은 매출과 순이익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미디어환경의 가장 뚜렷한 특징인 쌍방향성 커뮤니케이션도 지상파보다는 이들이 보다 빠른 디지털화로 인해 주도권을 장악할 태세다.
또한 방송이냐 통신이냐의 논란으로부터 조기에 방송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낸 지상파DMB와 위성DMB. 5월에는 위성DMB 그리고 7월에는 지상파DMB가 본격적인 서비스를 실시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런 DMB 기술이 이미 3년 전의 ‘고물’이라는 것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전화와 방송 2가지만 서비스하는 매체인 DMB보다는 전화와 방송 그리고 인터넷 등 3가지를 서비스하는 WiBro나 HSDPA라는 초강력 신무기가 DMB를 ‘시티폰의 아픈 추억’을 상기시키고 있으며, 또한 기존의 지상파를 위협하고 있다.
특히 전혀 다른 개념의 신무기로서 회자되던 WiBro, 불과 1년 전 최강의 방송통신매체로 각광받았고 방송통신의 지형을 바꿀 것이라는 예상이 심심치 않게 회자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불과 2개월 전 HSDPA라는 신무기가 예상과 달리 올 하반기에서 내년 상반기에 상용화된다는 분석이 나오자 WiBro 사업자들이 꽁무니를 내빼고 있다. 이미 하나로통신은 이 사업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고, KT도 갈까 말까 고민에 휩싸여 있다. 오로지 정보통신부만 강력하게 밀고 가는 형국이다. 그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방송통신업계의 ‘쓰나미’로 불리는 HSDPA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다.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위의 WiBro나 HSDPA가 이동식 신무기라면 IPTV는 고정식 신무기다. 케이블TV 견제를 명분으로 IPTV가 곧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케이블TV가 이미 지상파의 대체제 즉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하고 있는 시점에서 IPTV 또한 지상파에게 유리한 매체환경만을 가져다줄리 만무하다.
지금까지 언급한 것이 최근에 드러난 대표적인 방송통신매체들이며, 끊임없이 논의되고 있는 DVB-H, MediaFLO 등도 호시탐탐 한국시장을 넘보고 있다. 이들은 올 해 또는 내년에 방송통신시장을 두고 치열한 각축전을 벌일 태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변화에서 어느 누가 자유로울 수 있는가이다. 특히 방송가에서 먹고 사는 사람들은 새로운 방송통신매체의 등장이 곧 현재의 밥그릇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어찌 외면할 수 있겠는가.
새로운 매체의 등장은 당연히 기존 매체의 종사자들에게 엄청난 위협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안정적인 직업군으로 분류되던 방송사 종사자들 특히 정규직이 한 번도 상상하지 않은 대규모 구조조정도 결코 비현실적인 예측이 될 수 없는 이유다.
그렇기에 엔지니어들뿐만 아니라 전 영역의 방송종사자들은 방송통신매체의 새로운 등장이 자신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또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방송통신 구조개편이 어떤 방향으로 정리되는 것이 자신의 이해관계에서 유리한 것인지를 면밀히 따지고 대비해야 한다.
적어도 지상파방송은 현재 다른 방송통신매체보다 훨씬 ‘善’이라는 믿음으로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켜야 한다. 케이블TV나 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를 통해서 경험한 바, 공적 규제의 그물망 밖에서 노는 방송은 민주주의 발전에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시민들의 정서적 측면 유아청소년의 교육적 측면에서도 그다지 좋은 환경을 제공하지 못했다.
여전히 문제투성이지만 그나마 지상파 방송이기에 공공성 공익성을 이해하고 실현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지상파 종사자들이 있기에 그나마 방송의 정의를 이야기할 수 있고 방송의 본래 기능을 원론적인 잣대로 논의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지금부터 방송종사자들이 지켜야 하는 밥그릇싸움은 곧 공익이다. 그래서 카메라기자 또한 밥그릇 싸움에 당당히 나서야 한다.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 양문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