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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제서야 문제가 되는가?

- 북한의 취재영상 검열에 관한 소고

 지난 11월 5일부터 10일까지 6일간 제12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금강산에서 열렸다. 12번을 거듭하면서 이산가족상봉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예전 같지 않았고 그래서 현장에 간 공동취재단 역시 일반적인 행사 스케치보다는 특이한 이력의 주인공에게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북으로 납북된 동진호 선원 정일남!

 이번 행사의 2차 상봉자 명단에 끼어있던 북으로 납북된 동진호 선원 정일남 씨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누구보다 남측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게 되었다.

 저녁 7시 위성 송출 현장.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단체만남 장면을 송출하고 취재기자의 기사 오디오를 송출하던 순간. 북측 요원들이 납북자 정일남 씨를 묘사하는 기사 오디오 부분에서 테이프를 빼내고는 소리치기 시작했다. 기사 내용 중 ‘납북’이라는 표현을 문제로 삼았다. 북측에 납북자가 존재하냐고, 왜 이 좋은 행사에 와서 북측을 자극하는 기사를 쓰냐고…

 결국 예정된 시간에 오디오를 위성으로 송출하지 못한 SBS는 서울에 있는 다른 기자가 기사를 대독을 하는 것으로, KBS는 납북이라는 단어를 다른 용어로 대체하여 오디오를 다시 읽는 방법으로 납북자 뉴스가 방송되었다.

 이후 기사의 사전 검열에 대해 우리는 남측 적십자사 단장을 통해 연락관에게 항의했으나 검열에 의해 걸러졌던 테이프의 송출이 허용되기는커녕 오히려 다음날 오전 SBS 취재기자의 취재가 제한되었다. 급기야 이렇게 악화된 취재 분위기는 스탠드업을 하는 취재기자가 마이크를 빼앗기고 싱크를 따던 기자가 취재수첩을 압수당하는 등의 사태로 이어졌다. 그야말로 거센 검열 및 취재방해가 행해진 것이다.

 공동 취재단은 이러한 일련의 사건에 대한 대책 회의를 거듭했다. 대다수의 기자들은 일단 상황이 어떻든 간에 취재진으로 인해 이산 가족 행사에 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고 결국 남측 CIQ를 넘을 때까지는 취재 방해에 대한 보도를 엠바고로 정하였다. 이후 통일부 기자단에 공동 취재단이 작성한 성명서 초안을 전달하고 각 사가 다양한 방법으로 북에서 있었던 취재 방해를 보도하였다.

 당시 공동 취재단의 성명서 초안을 기초로 통일부 기자단이 발표한 성명서는 다음과 같다.

 금강산에서 8일부터 10일까지 열린 12차 남북이산가족 2진 상봉행사에서 북측이 일부 취재내용을 문제 삼아 남측 통일부 공동취재단 소속 방송기자의 현지취재와 위성송출이 불발되는 불미스런 사태가 발생했다. 이는 언론자유를 심각히 침해한 중대사태로 간주하고 강력한 유감의 뜻을 밝힌다

 북측 ‘보장성원’이 남측 기자의 취재수첩을 강제로 빼앗는 등 상식이하의 취재방해활동이 이뤄졌다. 특히 고령이산가족을 볼모로 상봉행사의 중단까지 위협하며 북측의 일방적인 지침대로 따를 것을 요구한데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북한 당국이 이번 사태와 관련해 철저히 진상을 조사해 이산상봉 행사를 파탄에 이르게 할 뻔한 과잉행위를 벌인 책임자를 문책하고 사과해야 한다.

 이번 사건을 바라보며 느낀 것은 과연 왜 이제서야 북한에서의 위성 송출 검열 문제가 불거졌는가 였다. 이미 영상취재 기자들 사이에서는 북한에서의 영상 검열이 당연시 되어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선배들은 북한에서 영상취재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출장 전에 알려줬고 실수로 담지 말아야 할 영상을 담은 기자는 자체적으로 그 영상을 삭제하는 모범(?)을 보이기도 했다. 왜 일까?

 언제나 그렇듯이 모든 일에는 처음이 있다. 북한에서 이렇게 영상취재가 검열을 받은 것도 그 처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처음에 우리는 항거하지 않았다. 문제를 공식적으로 과감하게 제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서야… 취재기자의 오디오 송출이 문제가 된 이제서야 위성송출 검열 문제가 공론화되고, 기사화되고 언론 자유의 영역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처음 영상 검열이 있을 당시에는 북한에서의 취재가 지금보다 훨씬 녹록치 않았을 것이다. 모든 기자가 북에 들어가 취재하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고 감사했을 것이며 제한된 영역이라도 취재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과연 영상취재기자 스스로가 언론의 자유에 대한 어떤 확고한 원칙과 기준을 가지고 있었느냐 하는 것이다. 수많이 기자들이 북한에서 취재해 왔고 그만큼 수많은 기자들이 남한에서는 더 이상 이뤄지지 않는 취재 검열을 경험하면서도 너무 쉽게 순종한 것은 아니냐는 반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남북 관계는 여러 방면에서 호전되고 있다. 북에서의 취재는 앞으로 더 활발해질 것이며 이번 사건이 어떤 형태로든 북에서의 취재 관행에 변화를 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 노력을 사전에 기울이지 않는다면 결코 통일부 기자단의 항의 성명서 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위성 송출 포인트의 기자실화를 제안한다. 금강산 호텔이나 온정각 휴게소 등에 마련된 기자실에서 사용하는 팩스와 위성전화 그리고 사진기자들의 사진 전송이 아무런 사전 검열 없이 이뤄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위성 송출 포인트 역시 확장된 개념의 기자실로 만들어야 한다. 북측 요원의 출입이 금지되어야 하고 자유로운 영상과 오디오의 송출 분위기가 자리잡아야 한다.

 이를 위해선 통일부와 한국TV카메라기자협회와의 사전 조율이 필요하다. 텐트나 임시 펜스를 설치하여 송출 포인트 공간의 치외법성을 확보할 수 있는 물리적 근거가 마련되어야 하며 통일부 직원이 상주하여 행여 있을 수 있는 분쟁을 조절하게끔 하여야 한다. 또한 협회 차원의 북한 취재 원칙을 제정하여 이를 현장을 취재하는 영상취재기자 뿐 아니라 송출 담당자와 통일부 직원에게도 주지시켜야 한다.

 언젠간 불거질 문제였다. 어찌 보면 우리 스스로 저널리스트로서의 책무를 게을리한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문제는 터졌고 우리는 부끄럽다. 하지만 늦지 않았다. 이제라도 검열을 당당히 거부하고 독립된 영상취재를 할 수 있는 준비를 철저히 한다면  앞으로 북에 취재 가는 영상 취재 기자들의 자유로운 영상 취재와 송출은 가능할 것이다. 물론 행사 중에 문제를 제기하여 행사 자체에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 반드시 사전에 충분히 협의하고 구체적인 방법을 결정한 후에 이를 근거로 현장에서 대처해야 할 것이다.

 남북교류가 상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시대다. 상호간 고유의 영역을 인정하는 것은 서로를 이해하고 교류를 넓혀가는 중요한 요건이라고 믿는다.

SBS뉴스텍 영상취재팀 정상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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