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기자들 까짓것...”
입사하기 전에 보았던 뉴스 한 꼭지가 기억난다. 모 방송사의 고발성 리포트였는데 지방 어느 도시의 건축비리 현장을 폭로하는 기사였던 것 같다. 기사가 어느 정도 나가고 있을 즈음, 그 건축현장에서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취재를 하고 있는 카메라기자의 모습이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서 너 명의 깍두기들이 달려들어 그를 마구 구타하는 장면을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 선배 그 때 심정은 어땠을까, 많이 다치진 않았을까 하는 걱정을 했었다. 그리고 몇 년이 흐른 지금, 나도 그와 비슷한 카메라기자가 되어서 여기저기 현장을 돌아다니고 있다. 그리고 그 때 그 꼭지만큼 위험한 상황은 아니더라도 자신들에 대한 취재를 꺼려하는 사람들로부터 여러 가지 방법의 취재 방해를 받곤 한다. 욕설을 하면서 협박을 하거나 손바닥으로 렌즈를 가리거나 레코드중인 카메라를 뒤에서 흔들거나 또는 여러 사람이 나를 막아서거나... 특히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많은 언론 매체가 몰리는 경우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지난 4월 20일 검찰의 현대-기아자동차 비자금 수사와 관련해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대검찰청에 소환되었다. 현대차 직원들은 자신들의 사장이 찍히는 걸 막아야 하는 사람들이고 우리는 찍어야하는 사람들이다. 아!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결국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정사장의 모습을 담기 위해 이동하는 나를 막기 위해 그들은 달려들었다. 뒤따라오던 오디오맨의 상의가 찢어질 정도로 거칠게 우리를 잡아 끌자 이에 흥분한 오디오맨이 그 중 누군가의 얼굴을 때렸고 나도 십여명의 용역직원들에게 끌려 화단쪽으로 넘어져서 내 팔과 다리를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제압을 당했다. 그 사이 정의선 사장은 수많은 사진기자와 카메라기자의 플래쉬 세례를 받으며 대검찰청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내 카메라엔 단 1초도 정의선 사장의 모습을 담지 못했다. 명색이 카메라기자로써 이처럼 수치스러운 모습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분하고 억울했다. 중요한 그림을 놓친것도 그렇지만 내가 먼저 포토라인을 어겼다는 일부의 주장은 동의 할 수 가 없다. 당시 현장에는 사진기자와 방송카메라기자 그리고 현대차측이 협의한 포토라인이 건물 현관에서 계단 아래쪽까지 쳐져 있었다. 포토라인의 범위를 보다 넓게 잡아서 가상의 포토라인을 도로 아래쪽까지 생각한다고 해도 분명 대검찰청 정문쪽은 포토라인 외곽지역이었고 나와 오디오맨이 급하게 뛰어서 이동한 곳도 분명 포토라인 바깥 쪽이었기 때문이다. 수백명의 취재진이 모두 질서정연하게 포토라인을 지키고 있는데 어떤 강심장이 그걸 어길 생각을 한단 말인가?
재계 서열 2위의 현대차그룹의 입장에서 이번처럼 안 좋은 일로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일 인줄 이해한다. 또 그것을 적절히 콘트롤하는 것도 그룹 홍보실의 임무라는 것, 이 바닥에서 일하는 카메라기자라면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 건은 분명 현대차가 ‘오버’한 과잉대응이고 취재방해다. 앞으로 걱정되는 것 한 가지는 다시 이런 일이 발생했을때 “카메라기자들 까짓것... 용역들 불러다 막아버리면 되지 뭐...”라는 인식이 생길까 두렵다. 아니 어쩌면 이번 사건도 그러한 생각의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숨고자 하는 사람들이 불러 모을수 있는 용역직원의 수는 카메라기자의 수보다 훨씬 많을테니 말이다.
MBN 영상취재부 기자 노동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