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11일 강릉 경포동 산불 취재기]
강풍은 곧 대형 산불로…반복되는 재난 보도 대비 절실
▲강릉 경포동 산불 당일 차 안에서 촬영한 첫 컷
▲강릉 경포동 산불
▲강릉 경포동 산불 당일 KBS강릉방송국 취재진
밤사이 강한 바람이 불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는 출근길이었다. 아파트 상가 유리창이 깨져있고 전신주를 고치는 한전 직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동해안 강풍으로 인한 피해를 종합하는 리포트를 제작할 줄 알았다. 회사에 다다를 무렵 멀리서 검은 연기가 보였다.
섣부르지만 짐작했다. 일반적인(?) 화재가 아니라는걸.
아니나 다를까 보도부는 매우 분주했고 출근과 동시에 출동이다.
점차 가까워지는 뿌연 연기... 강릉 경포동 산불이다.
4월 11일 9시 8분 차 안에서 첫 컷을 눌렀다. ENG가 아닌 핸드폰으로 촬영을 하고 카카오톡 보도부 단톡방으로 전송했다. 화재의 심각성과 1보를 위한 신속성이 더해진 판단이다.
취재진의 안전을 지키지 못한 후회와 반성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영상기자의 심정은 말하지 않아도 영상기자들은 공감할 것이다. 막중한 책임감으로부터 나오는 발생 초기의 현장감 있는 영상을 확보하는 것. 이것 때문에 재난보도준칙을 망각하고 안전은 잠시 뒷전이다. 불길이 눈앞에 보일 때까지 더욱더 깊숙이 들어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두려움은 없었다. 경포동 낮은 산의 구릉 사잇길은 차가 한 대밖에 다닐 수 없는 비좁은 외길이었다. 그 덕분인지 어렵지 않게 불길을 찾을 수 있었다. 산불을 진화하고 있는 산림청 고성능 진화차가 보이고 대피하는 주민들이 보였다. 급히 재난용품(안전모, 고글, 방진 마스크)을 착용하고 차에서 내려 촬영을 시작했다. 얼마나 찍었을까. 붉은 연기가 주변을 뒤덮고 뜨겁고 매캐한 연기가 숨을 조여오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 뷰파인더에서 눈을 떼고 주변을 둘러보니 머리 위에선 불붙은 솔잎이 떨어지고 있고 시야 정면에서만 타고 있던 숲이 강한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사방을 태우고 있었다. 급히 촬영을 접고 서둘러 취재차에 탑승했다. 설상가상. 불붙은 솔잎이 취재차 엔진룸으로 들어가고 있어 자칫 차에 이상이 생길 수 있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형님(방송사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취재차 기사를 칭한다.)이 부랴부랴 차에서 내려 엔진룸을 열고 솔잎을 걷어내고 어렵사리 현장에서 빠져나왔다.
근접한 영상 몇 컷만 찍고 나와야겠다는 나의 짧은 생각이 함께한 취재진을 위험으로 내몰았다. 짧은 순간이지만 나를 포함한 취재진이 불미스러운 일을 당할까 두려웠다. 재난보도준칙을 망각하고 안전을 뒤로 한 채 위험한 취재를 감행한 나에게 주는 뼈아픈 교훈을 다시금 마음에 새겼다.
다시 떠오른 산불의 악몽...그리고 강원도 영동권 영상기자
잠시 개인사를 이야기해볼까 한다. 2019년 고성 산불 당시에도 강한 바람을 타고 삽시간에 속초 시내까지 불 이 번져나갔다. 그때 당시에도 나는 현장에 있었다. 취재진이 아닌 피해자 가족으로. 부모님 댁도 화마를 피하지 못하고 주택 일부가 소실되었고 당시 충격으로 아버지는 우울증을 심하게 앓으셨다. 나 또한 산불만 나면 당시 상황이 생각이 난다.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강하고 따뜻한 바람. 그 바람이 강릉 경포동 산불에서 느껴졌다. 봄철에 강원도 양양과 간성 사이에 부는 국지성 강풍으로 동시에 고온 건조하고 속도가 빠른 특성이 있다. 일명 ‘양간지풍’이라 부르는 바람이다. 이번 산불 또한 양간지풍으로 인해 진화를 위해 하늘에 떴던 헬기도 다시 착륙했다. 산불 진화의 핵심인 헬기가 바람으로 인해 무용지물이 됐으니 급속도로 번지는 불을 눈뜨고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피해는 삽시간에 눈덩이만큼 불어나 1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26명이 다쳤다. 그리고 5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주택과 상가 등 건축물 266동과 해수욕장과 공원 등에서 공공 시설물 182곳이 불에 탔고 해안가 송림을 포함해, 경포 일대 산림 179만 제곱미터도 산불 피해를 입었다.
8시간 동안 불이 난 것에 비해 엄청난 피해를 준 것이다.
이렇게 강원도 동해안은 봄철이 되면 강한 바람이 불어 어김없이 산불로 큰 피해를 주기 때문에 영동권 영상기자들은 봄철에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영동권 영상기자들을 재난전문기자라 표현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로 재난 상황을 많이 접했고 안타깝게도 매우 익숙해져 있다. 이런 우리들 사이에선 금기어가 있다. ‘바람이 심상치 않다’, ‘불안한데’와 같은 산불을 암시하는 말들이다. 그런 말들이 오가면 어김없이 산불이 발생한다고 해서 금기어가 생긴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저런 말들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는 건 이미 상당 기간 건조주의보나 경보가 지속됐거나 강한 바람이 불 때다.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진 않지만 영동권 영상기자들은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재난 상황을 대비해 다시 한번 자신의 장비를 점검하고 무언의 작심을 조심스럽게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불냄새 가득한 사무실에서 익숙하게.
KBS강릉 박영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