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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VIEW> 김세희 변호사 (민주노총법률원)

당신 옆의 소외된 노동
우리가 외면한 취재차 운전기사의 삶과 죽음

김세희 변호사.jpg

 한 방송사의 취재차량을 운전하는 기사분이 국회 취재이동 지원을 나갔다가 한강둔치의 국회 주차장 차량 안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그는 20여 년 가까이 한 방송사의 취재 차량 기사로 일했는데 용역회사 소속으로 하는 일은 똑같은데 업체만 매번 바뀌었다. 방송차량 기사들은 대기가 곧 일인데, 방송사, 신문사 기자들이 취재하는 여러 출입처들에는 기자실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지만, 이들의 취재를 돕고 다음 취재를 위해 하루 종일 대기해야 하는 취재차 운전기사들이 쉴 공간은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몇 년 전 크고 멋진 소통관 건물을 새로 지어 기자실과 브리핑룸, 각 당의 공보담당실이 이전한 국회도 마찬가지다. 이번 취재차 운전기사의 죽음은 국민의 인권과 노동권을 가장 앞에서 보살피고 지켜야 할 국회와 정당들은 이들의 존재와 처한 상황에 대해 아예 관심이 없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근본적으로 방송사는 직원이 아니니 이들의 노동환경에 무관심했고, 근로계약을 맺은 하청업체 역시 정해진 도급액 안에서 최대한의 이윤을 추구할 뿐 이들의 근로환경에는 관심이 없었다.

취재차 운전기사들, 최저입찰 용역업체 바뀔 때 마다 고용불안 반복
 필자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쯤 언론노조에서 일한 적이 있다. 그때 처음 알았다. 각 언론사에 취재진들의 이동을 지원하기 위한 취재차량 운전기사들이 있고, 한 때는 정규직들이었던 운전기사들은 97년 IMF 때 모두 외주화되어 용역회사 소속의 비정규직들이 되었다는 것을. 같은 방송사에서 똑같이 차량 운전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용역업체가 바뀔 때마다 고용불안에 시달려야 하고, 최저입찰 경쟁 속에서 임금은 늘 제자리걸음을 유지하기도 어려운 게 그들의 현실이었다. 이들만이 아니었다. 방송작가, VJ, FD 등 프리랜서라는 이름하에 근로기준법조차 적용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방송사에는 수도 없이 많았다.  

 그 이후로 10여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 방송작가 노조가 만들어지고, 방송사의 뉴스제작 프로그램의 작가들이 근로자성을 인정받았다는 반가운 이야기를 듣기도 하였으나, 취재차량을 운전하던 그 분들에 대한 소식을 접할 일은 없었다. 이런 일이 있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서야 비로소, 검색창에 그분들의 소식을 검색해 보았다. 관련 기사 자체가 많지도 않았지만 제일 먼저 검색된 기사가 방송사의 차량 운전 노동자들이 용역업체가 바뀌면서 해고에 직면했다는 기사였다. 방송사에서 도급업체를 변경하면서 고용문제는 도급업체 소관이라며 발을 뗐고, 새롭게 들어온 도급업체는 기존 보다 인원을 줄여, 입찰 참여 업체 가운데 가장 낮은 단가를 제시해 도급계약이 체결됐다는 것이었다. 계약대로라면 최소 2명의 근로자가 해고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기사의 주요 내용이었다.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아니 더 나빠졌다고 봐야 옳다. 청소, 운전업무 등 대부분의 외주 도급 계약에서 도급업체 변경 시 고용승계는 이미 일반적이 일인데, 방송사 차량운전 기사들의 경우 고용승계의 최소한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고 있었다. 

비정규직 문제 자주 다루는 방송사, 정작 내부의 노동인권, 차별은 외면
 방송에서 연일 우리 사회 비정규직의 문제와 소외된 노동에 대한 뉴스를 접한다. 그런데 정작 그 뉴스를 전하고 있는 방송사의 사정은 어떠한가. 방송사 내에는 방송사에 소속되어 일하는 정규인력 이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기간제, 도급, 파견, 프리랜서 등 다양한 형태의 계약을 맺고 일하고 있다. 계약의 종류는 모두 다르지만, 모두 방송제작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 인력임에 틀림없는 사람들이다. 

 2020년에 공공부문 방송사들을 대상으로 조사된 한 연구논문을 보면, 방송사 내 불안정노동자의 비율은 42%로 방송 제작에 필요한 전체 인력의 거의 절반가량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방송에서 방송사 내부의 비정규직의 문제, 소외된 노동의 문제를 다룬 기사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우리 사회의 감시자로, 우리 사회 곳곳의 소외된 노동의 문제들에 대해 따가운 일침을 놓던 그 취재의 순간 바로 내 옆에 소외된 노동자는 두 번 허탈했을 것이다.

 최근 연이어 방송사에 다양한 영역의 비정규직들과 프리랜서 근로자들에 대해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오고, 이들도 스스로 단체를 만들어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법원은  프리랜서 방송작가, 프리랜서 PD, 프리랜서 편집감독이 방송국 소속의 근로자라고 판단했다. 외주용역, 파견계약하에 일해 왔던 MD, 방송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근로자들에 대해서도 해당 방송사 소속의 근로자임을 인정하는 판결도 이어지고 있다. 

 연이은 법원의 판결은 그동안 얼마나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를 방송사들이 외면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방송사들은 인건비 절감을 위해 정규직이 담당해왔던 상시적이고 필수적인 업무들을 계속 비정규직화하는 방향으로 해결해왔고, 그동안의 고질적 문제들이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노동인권이 준수되지 않고, 차별이 만연한 방송 제작현장에서 공정한 방송, 좋은 방송이 만들어질리 없다. 당신 옆의 소외된 노동자들.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일은 좋은 방송을 만드는 일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좋은 방송, 공정한 방송은 인권을 우선하는 노동위에서 만들어진다.

김세희 / 민주노총법률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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