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취재하면 형사처벌?
우크라이나 취재한 프리랜서 사진작가 장진영씨, 벌금형에 불복
언론사회단체와 함께 취재자유 제한하는 ‘여권법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
외교부의 허가 없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취재·보도했다는 이유로 형사처벌을 받은 프리랜서 사진작가 장진영씨가 언론시민사회단체와 함께 여권법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한국영상기자협회 등 27개 언론시민사회단체와 장 작가는 지난 2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언론인의 전쟁 취재를 사전 금지하고 허가제로 운영하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며 여권법 위헌법률심판제청의 배경을 설명했다. 국제기자연맹, 국제언론인협회 등 국제적인 언론인 단체도 국제 분쟁 지역에서 언론인의 활동을 제한해선 안 된다는 지지 성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장 작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난해 3월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이우와 르비우 등을 취재하고 돌아와 시사주간지 ‘시사IN’, 월간 ‘워커스’ 등에 관련 사진을 보도했다. 경찰은 같은 해 4월 장 작가가 여행금지국가로 지정된 우크라이나를 외교부 장관의 허가 없이 방문해 여권법 제17조를 위반했다며 입건했다. 장 작가는 지난 3월 법원으로부터 벌금 500만원을 납부하라는 약식명령을 받았지만, 법원의 결정에 불복해 4월 정식 재판을 청구한 상태다.
여권법 제17조는 ‘외교부장관은 천재지변·전쟁·내란·폭동·테러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국외 위난상황으로 인하여 국민의 생명·신체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국민이 특정 국가나 지역을 방문하거나 체류하는 것을 중지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기간을 정하여 해당 국가나 지역에서의 여권의 사용을 제한하거나 방문·체류를 금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권법은 ‘다만, 영주, 취재·보도, 긴급한 인도적 사유, 공무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목적의 여행으로서 외교부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여권의 사용과 방문·체류를 허가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을 두었다.
이들 단체는 “(여권법 17조는)언론의 전쟁 취재·보도를 외교부의 허가권 아래에 두고 있다”며 “해외 주요 나라는 언론인이 전쟁 지역에서 안전하게 취재할 수 있도록 지원·보호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 취재 자체를 허가제로 운영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취재·보도 목적의 입국을 외교부가 허가하는 것도 문제지만, 장 작가처럼 프리랜서 언론인은 아예 외교부의 허가를 받을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외교부의 허가 요건이 ‘외교부 출입 언론사’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장 작가의 법률대리인인 김보라미 변호사는 △여권법이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금지’를 명시한 헌법 제21조 2항에 위배되고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며 △거대 미디어 회사 소속이 아닌 프리랜서 기자의 경우 취재 기회가 봉쇄되는 것은 과도하게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전쟁을 취재한 영상기자들, 여권법의 취재자유제한 토로
한국영상기자협회(회장 나준영)는 지난 해 우크라이나전쟁 취재를 다녀온 기자들의 간담회를 열어 현재의 여권법이 국내 언론인들의 국제뉴스취재를 막고 있는 상황에 대해 문제 제기했다. 당시 간담회에 참여한 영상기자들은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여권법에 의해, 우크라이나 입국이 막혀 한국 취재진만이 현지 취재를 하지 못했다고 토로했고, 이후 외교부가 제한적인 우크라이나 취재를 허가하는 과정에서 취재계획서를 요구하는 등 헌법이 보장한 취재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들이 공공연히 일어났다며 현행 여권법의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들을 밝혔다.
나준영 한국영상기자협회 회장은 “현재 우리나라의 해외분쟁지역 취재·보도는 2000년대 초반, 이라크 전쟁 당시의 수준에 멈춰 섰다. 당시에는 오히려 독자적으로 국제뉴스를 바라보려고 하던 우리 언론인들의 다양한 노력에 시청자들이 격려하고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2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 언론의 국제보도, 특히, 분쟁보도는 오히려 퇴행해, 우리의 시각이 아닌 외신이 전하는 뉴스와 시각에 의존하고 있다는 시청자들의 비판에 직면해 있는 상황이다. ”고 말했다.
나 회장은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언론 자유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방송사, 언론사, 또, 소속 언론인들이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지지부진하고, 평소에 여권법 같은 국내언론인들의 자유로운 해외취재를 제한하는 장벽들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보다는 그에 대해 침묵하고 묵인해온 것이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며,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과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해외지역의 취재·보도를 활성화하고, 그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여권법 개정활동’에 적극 동참하고, 협회차원의 활동들도 벌여 나가겠다고 밝혔다.
안경숙 기자 (cat10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