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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광주민주포럼 발표문 요약3]



박수칠 때 떠나자: 한국 언론의 국제뉴스의 자립 선언



김성해.jpg

김성해 (대구대학교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



국제뉴스를 향한 타는 목마름과 분열의 자화상:

,영의 언론들을 통해 세계를 보아 온 한국 언론의 관성과 학습된 무기력



 국제뉴스에서 국내언론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언론사는 대부분 미국과 영국계다(김춘식 외 2022). 앵글로색슨계로 개신교와 백인이라는 공통점을 갖는 국가다.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과 냉전을 비롯해 항상 특수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2001년의 이라크 전쟁, 2011년의 리비아 침공, 최근의 우크라이나 사태, 파이브아이즈로 알려진 정보동맹에서도 항상 같이 있다. 영국은 이미 1900년대에 세계의 1/4을 식민지로 거느린 국가다. 지금도 코먼웰스(Commonwealth) 모임을 주도한다. 미국이 외교전을 펼 때 든든한 방패막이 되어주는 국가들이다. 미국과 영국 등은 또 일찍부터 국제뉴스에 투자했고, 덕분에 지금도 국제여론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남미 국가도, 중미도, 아프리카도 이들 언론을 통해 세상을 보고, 이들 언론에 내포된 관점으로 세상을 이해할 때가 많다. 덕분에 약소국의 침략이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은 미국의 아리크 침공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개입이 국제사회에서는 전혀 다르게 인식된다. 미국의 보호를 받았던 덕분에 한국은 그간 무임승차를 해 왔다. 한동안은 불편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성장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한국이 알아야 할 것과 미국이 알려주고 싶은 것에 대한 괴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미국의 관점이 한국과 충돌하는 때도 많아졌다. 앞으로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 북한, 중국, 러시아와 관련한 보도에서 두드러진다. 미디어를 통한 국가 간 심리전을 너무 모른다는 문제와 연결된다.

 

 우크라이나 위기를 통해 표면으로 드러났지만 뿌리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과 관련이 깊다. 적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아군의 충성심은 키워야 한다. 적을 악마로 만들어야 죄책감도 줄고, 다수 국민의 협력도 얻어낼 수 있다. 냉전은 이 전선이 국제사회로 확대하는 계기였다. 미국에서는 1950년대 트루먼 대통령이 주장한 진실 캠페인이 대표적이다. 한국 언론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인용하는 <미국의소리>(Voice of America)나 자유아시아방송 (Radio Free Asia) 등이 이 목표로 등장했다. 언론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기준은 지키지만,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아, 정부의 목소리를, 언론을 빌어 전달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대외정책과 같은 핵심 국가이익에 관한 보도에서 민간 언론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329일에 일려진 노드스트롬 2’ 가스관 폭파와 관련한 보도다. 탐사보도 전문가면서 풀리처상을 여러 번 받았던 세이모어 허쉬 기자가 폭로했다. 미국과 노르웨이가 공동으로 민간시설을 파괴한 테러 행위다. 한편으로는 독일과 러시아의 협력을 막고, 다른 한편으로는 독일이 우크라이나를 계속 지원하게 하는 게 목표였다. 미국 정보기관에서 일하는 내부 고발자가 정보원이었다. 정황으로 봐서 가짜뉴스로 볼 이유가 없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 유럽의 주요 언론은 지금도 침묵한다.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는 유투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에서도 관련 정보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국내언론도 다르지 않다. 관심도 없고 굳이 다른 시각을 찾으려는 노력도 안 한다. 국제정보질서의 구조적 모순에는 눈을 감은 채 익숙한 정보원만 찾는다.


 덕분에 한국은 강대국이 전개하는 심리전의 놀이터가 된 상태다. 북한과 중국을 악마로 만드는 뉴스는 이런 환경에서 일상 풍경이다(김성해 외, 2021; 김희교, 2022). 분단국가로 살아오면서 굳어진 냉전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또 다른 관심 대상이다.

 

 냉전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한반도에서 전쟁은 왜 일어났을까? 한국에서 지배적인 생각은 모든 게 북한과 공산주의 탓이다. 미국은 한국을 도와준 착한 천사다. 미국에 대한 보은론, 혈맹, 민주주의 동맹 강화 등의 논리로 연결된다. 진실은 복잡하다. 그렇지만 정반대의 관점이 충돌하고 있다는 건 명확하다. 전 세계를 공산화하려고 했던 적색 제국주의에 대항해 미국이 동맹을 규합해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했다는 얘기가 다수의 생각이다. 과거에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미국과 영국에 책임을 묻는 시각은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독일이라는 악마가 없어진 자리에 소련이 들어서고, 냉전이 끝난 자리에 다시 불량국가와 중국이 들어서는 것을 지적한다. 악마가 원래 있었던 게 아니라 특정한 정치적 목적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국제사회에서 누가 악마가 되고, 누가 불량국가로, 또 테러리스트라는 낙인을 받는지 살펴봐도 틀린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량살상무기 때문에 이라크를 침공했다는 것 역시 거짓말로 확인됐다. 중국, 북한, 시리아의 인권을 문제삼고 있는 미국이지만 정작 자신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증거도 많다. 쿠바의 관타나모 기지와 이라크의 아부그레이브 교도소에서 벌어진 인권유린과 고문이 그 증거다. 20234, SNS를 통해 공개된 전 세계를 상대로 한 미국의 광범위한 불법 도청도 흑백논리로 세상을 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보여준다. 그러나 한국 언론은 이런 문제의식이 없다. 국내에서 중국이나 러시아는 여전히 악마다. 전쟁 범죄자고, 최악의 인권 국가면서, 평화로운 국제질서를 파괴하려는 잠재적 범죄자다.

 

국제뉴스에서 한국언론이 자립하기 위한 다섯 가지 조건

 국제뉴스에서 한국 언론은 무엇을 해야 할까? 최소 다섯 가지 정도의 개입 지점이 있다. 미국의 품을 떠나 자립하기 위한 조건으로 보면 된다.

 

국제보도의 소홀했던 영역에 대한 투자

 그중의 하나는 국가이익 차원에서 그간 소홀하게 다뤄진 영역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일이다. 참여를 희망하는 언론사와 언론인으로 협의체를 구성할 수 있다. 냉전을 시작하면서 미국이 많은 투자를 했던 지역학연구에서 경험치를 얻으면 된다. 당시 미국은 러시아, 중국, 동남아시아, 중동, 남미 등 전략적 우선 지역에 대한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등의 다양한 자식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바 있다. 국제이슈에 대한 집단지성이 실현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각계 전문가, 해당 주제에 관심을 가진 시민, 프리랜스, 이해관계자 등이 모이는 공론장으로 생각하면 된다.

 

백화점이 아닌 전문매장이 되어야

 두 번째는 백화점이 아닌 전문매장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국제보도는 지역도, 영역도, 주제도 너무 많다. 영어만 잘한다고 전후좌우 맥락을 제대로 읽어낼 수 없다. 전문기자를 키워야 하는 이유다. 전쟁, 기후, 과학, 외교 등으로 분야를 세분화하거나, 지역과 국가별로 특화하는 것도 방법이다. 해당 지역의 언어를 아는 기자 중에서 전문가를 길러내는 방식이다.

 

국제보도를 담당하는 기자들의 정체성 바뀌어야

 국제보도를 담당하는 기자들의 정체성을 바꾸는 게 세 번째다. 민주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한 공론장관리자라는 자의식을 강화하는 방안이다. 미국과 영국 등 영어권 아젠다, 프레임을 벗어나 국제적인 현안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관점공정하고, 균형감 있게, 맥락에 담아전달하기 위해서다. 중국과 러시아 보도에 적용해 보면 이해가 쉽다.

우선 러시아 동원령 보도에서 국민은 러시아 관점을 전혀 모른다. 러시아 말을 몰라도 <Russia Today>를 비롯해 대안시각을 접할 수 있는 통로는 많다. 러시아 문제에 대한 전문가 그룹이 없는 것도 아니다. 교황조차도 러시아를 일방적으로 비판하지 않는 이유, 이번 전쟁으로 유럽의 지정학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경제봉쇄의 부작용이 유럽 정치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등에 대한 많은 얘기를 찾아낼 수 있다.

 

외신에 대한 비판적 거리유지

 외신에 대한 비판적인 거리를 유지하는 게 네 번째다. 특히 앵글로색슨권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미국과 중국, 유럽과 러시아 등 신냉전의 주역은 미국과 영국이다. 전쟁이 끝난 직후 다시 냉전의 불씨를 지핀 것도 이들이다.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를 겨냥해 프로파간다를 공개적으로 진행해 왔다. 지금도 한다. SNS도 예외가 아니다. “국방부, 가짜 SNS 계정으로 여론 선동.. 감사 착수”(연합뉴스, 22/9/20) 뉴스에 잘 나온다. 미국정보국(NSA) 직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Edward Snowden)과 위키리크스의 줄리안 어산지가 이미 경고한 내용이다. 한편으로는 전 세계 통신망을 통해 불법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외정책에 유리한 여론을 만들기 위해 대규모 심리전을 벌여왔다. 국내 현안을 다룰 때 당연히 던져야 하는 누가, , 하필 이 시점에, 무엇을 위해라는 질문을 던지면 된다. 해당 매체가 인용한 정보원이 누구인지, 믿을만한지, 독립적인지 등을 확인하는 것도 필요하다.

 

국제보도, ‘민족국가이익을 가치판단의 기준에 놓는 철학 필요

 다섯 번째로 국제뉴스에 대한 세계관을 다시 정리해야 한다. 최소한 민족이익과 동맹이익의 차이가 뭔지 정도는 알아야 한다. 한국 사회는 중국, 러시아, 북한을 악마로 본다. 냉전 사고방식 때문이다. 낡은 세계관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는 게 국제사회다. 게다가, 신냉전을 맞아, 영미권에서 쏟아지는 많은 뉴스는 현상 유지 전략과 관계가 깊다. 북한은 여기서 악마가 되어야 한다. 불법 돈세탁을 하고, 유엔 제재를 지키지 않고, 주변국을 위협하는 악당이다. 그러나 북한의 관점에서 보면 다르게 볼 수 있는 게 많다. 2002년 제네바 합의가 깨진 것도, 위조지폐 사건도, 북한이 핵개발에 나설 수밖에 없는 것도 미국의 적대 정책또는 미국의 신냉전구도와 무관하지 않다. 북한 인권 문제도 미국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악용되는 게 현실이다. 미국이나 서방의 관점이 아닌 민족국가이익을 가치판단의 기준에 놓는 철학이 필요한 이유다. 뜬금없는 얘기가 아니다. 언론이 당연히 복종해야 하는 헌법에 나온다.


 헌법 제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한다는 내용이다. 언론이 공개적으로 한 약속에도 반영되어 있다. “평화통일·민족화합·민족의 동질성회복에 기여해야 할 시대적 소명을 다한다” (기자협회)민족의 자주성을 존중하며 통일을 지향하는 국민적 합의의 창출한다“ (Jtbc) 등이다.

 

민주화경험에 바탕 한 국제사회의 성숙한 동반자라는 집단정체성 만들 때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한 발신 전략이 마지막이다. 교만할 필요는 없지만, 한국의 성취는 놀랍다. 국제사회에 나눠줄 것도 많고 함께 풀어갈 과제도 많다. 그중의 하나가 민주화 경험이다. 미국이 선물로 준 게 아니었다. 미국은 한국을 반공 전초기지로 만들려고 했고, 민주주의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두 번에 걸친 군사쿠데타에 합법성과 정통성을 부여한 게 미국 정부다. 민주당의 케네디 행정부와 공화당의 레이건 행정부가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한국은 민주화라는 꽃을 피워냈다. 냉전의 최전선에서 평화를 위해 노력했던 경험치도 값진 자산이다. 동족 간 죽고 죽이는 통곡의 시절을 보냈지만 진실과 화해 위원회등을 통해 남남갈등을 차분하게 치유하는 중이다. 국내법과 국제협약을 존중하는 가운데 공동선을 위해 발언하는 것 역시 중요한 역할이다. 불평등한 국제정보질서를 고려할 때 특히 주의할 부분은 주권을 훼손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존중과 역량을 가진 사람이 약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한편으로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모습이다. 헌법 전문에 나와 있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하는 것에 해당한다. 평화, 인권, 포용, 다양성, 공정, 평등과 같은 시대정신을 확장하는 데 국내언론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다. 국제사회의 성숙한 동반자라는 집단정체성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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