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은 과연 누구 땅인가?
2002년 5월 온 국민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월드컵에 열광하고 있을 때 중국은 ‘동북공정’이라는 거대한 역사왜곡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 사실에 대해 알지도 못하였고 2004년에서야 동북공정 사무처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공정내용을 공개하면서 한국에 처음 보도되었다. 이에 격분한 한국정부는 고구려사 문제등과 관련하여 앞으로 역사왜곡은 없을 것이라는 5개항의 합의를 이끌어냈으나, 이는 외교적으로는 아무 구속력이 없는 구두약속에 불과하였고 2006년 중국의 역사왜곡 작업은 거의 완료되었다. 동북공정의 5년간의 계획은 비록 2007년 1월에 끝이 났지만, 중국 창춘에서 열린 동계 아시안게임은 동북공정은 아직 끝나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준 대회였다.
2007년 1월 28일 후진타오 주석의 개막선언을 시작으로 중국의 공업도시 창춘에서 동계 아시안게임이 성대하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번 창춘동계 아시안게임은 2008년 하계 올림픽을 앞둔 나라답지 않게 여러 면에서 문제점을 노출하였다. 특히 순수한 스포츠행사를 동북공정에 이용했다는 점은 결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중국정부는 개막식 식후행사부터 백두산을 창바이산이라 칭하며 중국의 땅임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였고, 각종 관광안내서마다 창바이산의 관광코스를 실어놓았다. 또 한 가지 문제점은 자국 심판진들에 의한 편파판정이었다. 어느 정도의 홈텃세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쇼트트랙에서의 편파판정은 그 정도가 심했고, 결정적으로 안현수의 금메달 실격은 우리 국민들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했다.
2007년 1월 31일 우후안경기장. 어젯밤 안현수선수 경기의 오심판정 때문인지 빙상장은 일찍부터 중국과 한국응원단으로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오늘은 제발 오심 없이 한국선수들이 무사히 금메달을 따기를 바라며 관중석 중간에(이곳엔 따로 ENG존이 없다) 자리를 잡은 나는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경기를 보면서 다시 한번 허탈함을 느꼈다. 분명히 중국선수들이 우리나라 선수들을 계속해서 밀고, 잡고, 막았는데도 중국인 심판들은 침묵했고 결국 금메달은 중국에게 돌아갔다. 한국의 여자 계주팀은 한동안 경기장 밖으로 나가지도 못한 채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행히 연이어 벌어진 남자 5000M 계주경기에서 깨끗하게 금메달을 딴 남자 계주팀 덕분에 빙상장은 온통 태극기 물결이 되었고 한국선수단은 축제분위기로 돌아올 수 있었다. 허겁지겁 선수들의 인터뷰를 마치고 시상식장으로 향하던 나는 문득 여자선수들의 손에 종이 한 장씩이 들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게 뭐예요?” “저희 세레모니 할거예요.” 뭔가 특별한 세레모니가 있을 것 같은 예감에 시상식 입장순간부터 나의 카메라는 그녀들을 쫓았고, 그녀들이 들어올린 것은 바로 ‘백두산은 우리 땅’이었다. 그녀들의 백두산 세레모니에 한국관중석에서는 환호성이 터졌고, 중국인 대회 관계자들은 어리둥절해 하였다. 스포츠행사에서의 정치적 세레모니에 대한 외교적 심각성은 뒤로한 채 나 역시 가슴 시원함을 느꼈고, 내가 취재한 뉴스를 접한 한국에 있는 국민들 또한 비슷한 감정을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백두산 세레모니는 연일 계속된 편파판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그녀들의 의사표시임과 동시에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대한민국 국민들의 의사표시였던 것이다.
2007년 2월 1일. 사태의 심각성은 다음날이 되어서야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중국정부는 문제의 ‘백두산 세레모니’에 대해 보도금지 명령을 내렸고 일체의 TV와 신문을 통제하였다. 다음날 출국하던 대한 체육회장에게 중국 측 대회관계자가 공항에서 고성이 오고 갈 정도로 크게 항의를 했다하고, 한국 선수단측은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시하기도 하였다. 우리 취재단도 뭔가가 달라졌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후속취재를 위해 찾아간 중국의 CCTV부스에서는 트라이포드를 세우기가 무섭게 모두들 달려 나와 취재를 거부하였고(첫날 환영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날 저녁에 있던 한국과 중국의 남자 아이스 하키장에서는 아예 취재를 통제하였다. 인터넷 송출을 위해 급하게 호텔로 향하던 나에게 중국의 사복 공안은 여권제시를 요구하며 동행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허술하게만 보였던 취재시스템이 한번 통제하기 시작하니까 정말이지 무섭게 통제가 되었다.
2007년 2월 4일 원자바오 총리의 폐회선언으로 대회는 끝이 났다. 하지만 중국의 동북공정이 끝났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의 연개소문 드라마에 발맞추어 중국에서는 설인귀 장군의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고 한다. ( 설인귀 장군 드라마는 고구려 말기 연개소문과 맞대결했던 당의 장수 설인귀를 영웅으로 묘사한 대형사극이다) 이 모든 것이 그 연장선상임을 우리는 이제 알고 있다. 스포츠선수들의 정치적 세레모니가 결코 옳은 일은 아닐뿐더러 외교적으로 충분히 분쟁을 일으킬 만한 사안이지만, 저마다의 마음속에 이제는 우리도 준비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게 했다면 세레모니를 한 선수들도 보도를 한 취재진들도 만족할 것이라 생각한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중국의 끝없는 지평선이 부럽지 않았던 것은 그네들 가슴으론 결코 품을 수 없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재영 / SBS뉴스텍 영상취재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