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회 한국영상기자상 수상소감
땜질 처방만 반복된 항만 구조물 붕괴···‘기준’은 없었다
정부가 새만금에 새로운 항만을 짓는 사업, 새만금 신항만 공사는 2040년까지 3조 7천억 원을 쓰는 대규모 국가사업입니다. 인접한 바다에 기초구조물인 호안을 쌓고 이제 서서히 부지를 메워가는 중인데,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국가사업의 뼈대인 기초구조물이 계속 무너지고 땜질 처방만 반복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관계자들이 기초구조물의 안전을 담보하던 토목섬유, 이른바 ‘필터매트’는 서해의 극심한 조수간만 수압에 못 이겨 손상돼있었고, 더 나아가 이러한 문제의 근본적 원인으로 설계단계부터 국가건설기준 자체가 일본식의 인용으로 국내실정을 반영하지 못한 부실과 한계를 보도했습니다.
필터매트의 문제를 포착했지만, 사실 취재의 시작은 ‘천’이 아닌 ‘돌’이었습니다. 지난해 아직은 겨울바람이 시릴 무렵 찾아온 업자는 국가항만 건설에 불량석재가 쓰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바다에 이미 쌓아 올린 수십만 톤을 싹 갈아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사뭇 구미가 당겼으나 의도가 빤해 경계를 풀지 못했습니다.
경계심은 곧 들어맞았습니다. 항만 구조물에 쓰인 돌, ‘사석’은 적법한 절차를 거쳤습니다. 품질 검사 성적서를 떼봤고, 그것도 못 미더워 시료를 떠와 대학 연구팀에 보냈습니다. 이 작업에 쓰인 시간과 수고가 헛되이 매몰될 무렵, 정보 공개 청구 자료들이 뒤늦게 날아들었습니다. ‘사석이 쓰인 낱낱의 공사를 공개하라’ 요청했더니, 시공사가 작성한 <하자발생 조치 보고서>를 끼워 보냈습니다. 내용이 흥미로운데 “새만금 신항만 현장 내 호안 단면 하자 발생으로 조치하였으나, 추가 변위 발생"이라고 적혔습니다. '추가'란 표현으로 보아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궁금했습니다. 사고는 거듭된 듯했고, 피해 규모가 상당한데도 원인은 따로 밝히고 있지 않았습니다. 처음 정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의 정보들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막 지어 올린 항만 구조물이 1년 새 최소 11군데 무너진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취재진은 정부가 그간 같은 방식으로 바다를 메워 만든, 또 다른 시설물을 더 점검하기로 하고 전국 현장 취감에 나섰습니다. 평택항과 영종도 등 앞선 현장들을 돌아보고 학계와 업계, 정부가 작성해둔 과거 보고서와 논문 등 자료를 뒤져 뽑아낸 객관적 데이터를 근거 삼았습니다. 항만 구조물의 붕괴 현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반복돼오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리던 바람이 포근해질 즈음, <‘와르르’ 국가항만, 총체적 부실 보고서>라는 3편의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번 연속보도는 대중의 체감 영역 밖 어려운 주제를 다루는 탓에 제대로 된 전달을 통한 인식 형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해양토목공학 분야의 내용을 전하면서 일반 수용자의 이해를 해칠 수 있는 부분은 과감히 단순화했습니다. 보도 영상 가운데 스튜디오 촬영물도 이런 맥락에서 기획됐습니다. 가장 효율적인 방식을 고민했고, 모든 과정에서 현장 전달과 시청자 이해를 우선으로 제작하려 했습니다.
3편을 합쳐도 불과 10분이 채 되지 않지만, 이를 위해 수많은 시간을 녹여내며 현장과 편집실에서 함께 고민한 오정현 기자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이 보도가 조금이나마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보탬이 되었길 바랍니다.
한문현 / KBS전주